평범해도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안녕하세요. 개평론가입니다. 앞으로 이 브런치에는 흙수저에 매우 평범한 지적수준의 사람도 일상에서 클래식을 즐길 수 있음을 확인하는 글들이 올라올 것입니다. '흙수저에 매우 평범한 지적수준의 사람'은 바로 접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중 가장 아이큐가 낮은 사람은 저일 것입니다.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안 다녀본 사람도 저일 것입니다. 후후후..
'어린시절 해외여행을 얼마나 많이 다녀왔는가'가 부의 척도라면서요?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저는 불가촉 천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남8학군 노른자위 땅에서 가장 허름한 집에 살았던 10대 시절,
저는 두자리 수의 아이큐 덕(?)에 수준높은 반항이나 고민을 하지 않고
아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다 대학에 왔는데요.
지금이야 쉽게 '가난했다'고 한 줄로 적지만,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정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던 것 맞고요.
그럼에도 몇가지 감사한 조건들이 있었는데
1. 엄마가 (망한) 부잣집 막내딸이어서 클래식을 집에 맨날 틀어놨고, 음반도 책도 많았다
2. 어렸을때부터 교회성가대였어서 듣는 귀가 좀 좋았다(노래를 많이 불러야 듣는 귀가 좋아짐)
3. 지금은 없어진 할리스 학동역 점에서 알바를 했다
3번은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은 없어진 할리스 학동역점은
부잣집 마나님이 소일거리로 만든 까페로서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알바에게 많은 자율권을 준 매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사에서 틀라는 음악대신 알바생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 있었는데
그때 저랑 같이 알바했던 언니가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첼로파트를 맡았던 언니였거든요.
그 언니가 제게
예술의 전당에서 '대학오케스트라 축제'라는 것을 매년 연다,
거기에서 내가 연주를 한다,
하며 Wojciech Kilar보이체크 킬라르의 orawa오라와를 틀어줬는데요.
그 순간 저는 다시금 클래식과 현대음악에 제대로 덕통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zcEKMUtnaU
이 곡을 매장에 틀어놓으면 손님들이 그렇게 곡 제목이 뭐냐고들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보이체크 킬라르의 오라와라는 곡이예요.
킬라르는 폴란드 출신의 현대 음악가죠. 2013년에 돌아가셨고요.
영화음악(주로 호러영화) 작업도 많이 하셨는데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도 협업을 하셨어요. "
그러면 손님들은
이 평범하게 생긴 알바생이 어떻게 이런 고급정보를? @.@
하는 눈으로 쳐다봤고 저는 그걸 즐겼습니다....
그때 개평론가의 씨가 뿌려졌던 것입니다.
개 라는 접두사에서 알 수 있듯 이 글들은 정식 평론이 아녜요. (그러니까 까지 말아요ㅜ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사는 처지다보니
엄청 비싼 콘서트(가령 빈 새해 콘서트 같은) 관련해서는 글을 못 씁니다.
그치만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에서 중계해주는
빈 새해콘서트에 대한 리뷰는 쓸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하는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공연 리뷰같은 건 못 씁니다.
그치만 3년 연속 통영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열었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부흐빈더 할배에 대한 덕심레터는 쓸 수 있습니다.
5년에 한 번씩 오는 80세 넘은 펜데레츠키 할아버지에 대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패드립이 섞인 타령 정도는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삼각김밥 참치마요네즈 맛을 먹으며
지아친토 셸시의 현대음악을 듣고 있는데요.
누가 제게 '뭘 알면서 듣는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들어야 알게 된다'고 답해줄 겁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셔요.
씨유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