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론가 일기] 서른 셋이 됐고 인생에 마가 꼈다

by Anne

안녕. 개평론가입니다.

1월 1일 부로 서른 셋이 된 개평론가의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요.

남친이랑 이별에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은?

3박 호캉스를 떠났습니다.


인간은 참 강하고도 웃긴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내게 몰아닥쳤다고 생각한 당일에는

울고 불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술을 입에 대지는 않았단 말이지요.

프리랜서 원고를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눈물로 점철된 3일의 호캉스 뒤,

다소 마음이 진정된 저는 친한 사장님 댁에 놀러갔습니다.

제가 20대 후반에 잠깐 백수로 있을 때 바에서 알바를 했거든요.

참고로 이상한 착석바 그런 거 아닙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전한 웨스턴 스타일의 바였습니다.

(그게 뭔데...)


때로 큰언니 같고 때로 큰 이모 같고 때로 친구같기도 한

천진난만하고도 푸근한 사장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누구와도 그 상실감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다고,

인생 앞에서 참 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사장님의 뺨에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흘렀습니다.


아, 왜 울어욧!!!
니가 눈물을 참고 있으니 내가 대신 울어준다, 왜!
밥 차려줄테니 먹고 가.

누군가 지어준 따뜻한 쌀밥을 먹는다고 해서

제 인생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쿠쿠가 밥을 짓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쥐어뜯고 있던 시커먼 손가락들의 힘이 느슷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장님.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일은 죽는 거잖아요?
그치.

어제는 냅다 외쳤거든요. "아무리 재수가 나빠도 죽기밖에 더하겠냐!"라고요.
근데 나는 신을 믿잖아. 그러면 죽어봤자 천국가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두려워할 게 없다는 소리지.
...너가 천국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이 양반이...



집에 돌아온 저는 지금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이 곡이죠.

https://youtu.be/UnilUPXmipM

레퀴엠은 한 마디로 천국으로 떠나는 죽은 자를 위한 노래입니다.

레퀴엠하면 보통 모차르트를 많이 떠올리실텐데요.

모차르트가 레퀴엠 작곡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일화 때문에 뭔가 으스스한 이미지도 있고요. ㄷㄷ

하지만 레퀴엠은 음악 그 자체로만 놓고 들어도 아름다운 장르입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작곡했지만 특별한 목적을 위한 곡이다 보니 형식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보통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

찬미받으소서(Benedictus),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리베라 메(Libera me),

인 파라디숨(In paradisium)의 주제로 합창곡들이 연이어 나온답니다.


수많은 레퀴엠 중 제가 가브리엘 포레의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강남 K모교회 성가대원 시절, 이 곡을 직접 불러보았기 때문입니다.




곡을 귀로만 듣는 것과 직접 불러보는 것은 천지차이거든요.

천재가 만든 선율의 구조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서툴게나마 악기로 곡을 마스터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제 파트는 알토였어요.

흔히 합창 4성부(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의 꽃은 소프라노라고 여기기 때문에

교회 성가대 가보면 가끔 음역대도 안 올라가는 권사님들이 기를 쓰고

소프라노를 부르려고 하시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ㅠ


하지만 저는 기꺼이 알토를 선택했어요.

원래 합창할 때 파트를 나누는 가장 우선하는 기준은 음역대보다 음색이거든요.

저는 여자 4성부로 중창할 때 베이스를 맡을 정도로 목소리톤이 낮고 굵어서

알토 파트를 부르기 아주 적합했지요.


어찌보면 알토는 합창 4성부 중 가장 존재감이 작은 파트일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주역인 소프라노, 힘차게 뻗어 올라가는 테너와 든든하게 받쳐주는 베이스에 비하면

알토는 뭔가 특색이 없어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알토 음역을 직접 불러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요.

알토는 천상계의 음역대인 소프라노와

인간계 음역대인 테너와 바리톤을 부드럽게 연결시켜주는

연골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요!


화장할 때 '스머징'이라고 해서

얼굴에 바른 화장품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어요.

알토는 나머지 성부들의 경계를 '스머징'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물 세살에 레퀴엠을 직접 불러본다는 건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선율이 아름답고도 복잡한 이 곡을 익히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일하던 까페에서 레퀴엠을 틀었고

(점주님, 점장님, 손님들.. 죄송합니다. 영업장에서 장송곡을..)

교회에서 빌려온 악보를 밤늦게까지 보며 속으로 알토파트를 따라 불러보기도 했어요.


돌아보면

인생에 대한 패배감과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던 20대 중반의 제게

그 미사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응원곡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어.

누군가의 인생은 화려하고, 누군가의 인생은 초라해도

끝이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죽음이 있음을 늘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라'


쓰다보니 이것은 서른 세살 지금의 저에게도 필요한 메시지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평론가 일기] 아이엠 '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