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개평론가입니다.
돌아보면 클래식은 제 영혼만 살찌워준 게 아니라
종종 겪는 난처한 상황에서도 저를 건져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딴 일 사부작 사부작 하다가
잡지 기자쪽으로 넘어온게 29살 때 일이었어요.
잡지 쪽에 근무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업계는 어지간해서는 절대 신입 기자를 뽑지 않습니다.
어시스턴트로 몇년을 초초초 박봉의 월급을 받고 버티다
빈 자리가 나면 거기를 꿰차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요.
어시스턴트는 인턴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정말 피라미드의 최하층입니다.
하지만 웬만한 정규직 기자들보다도
훨씬 센스있고 인품 좋고 능력있는 어시스턴트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콘텐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그렇게 기약없이 버티고들 있는 겁니다..
아씨.. 눈물 좀 닦고.ㅜㅜ
암튼 저는 원래 어시스턴트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건데
정말 하늘의 도우심으로 채용형 인턴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물론 채용형 인턴도 불안정하긴 한데,
어쨌든 6개월 동안 일을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
굉장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끝이 있는 기다림인 거잖아요.
근데 돌아보면
이 채용형 인턴을 결정지었던 면접의 마지막 질문
"누구와 어떤 인터뷰를 해보고 싶냐?"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이
합격의 당락을 결정짓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를 인터뷰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히힛.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입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이 분은 경제학자인 동시에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 지휘에 능한 음악인이기도 합니다.
아브레우는 당시 베네수엘라의 젊은 음악인들의 자립을 돕고
뒷골목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범죄와 마약 등 사회의 위험환경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재단을 만드는데요.
재단의 공식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 Fundación del Estado para el Sistema Nacional de las Orquestas Juveniles e Infantiles de Venezuela
미디어에 더 잘 알려진 이름은
바로 엘 시스테마 El Sistema입니다.
엘시스테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75년,
지하주차장에 모인 8명의 연주자가 첫 멤버들이었답니다.
8명의 연주자들이 후배들을 모아 가르치고
또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후배들을 모아 가르치는 식으로
엘 시스테마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이렇게 생기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ntr2QX-TU
때마침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국가 예산이 급등했고 (천우신조)
아브레우는 이 상황을 적극 활용해 정부에 자신의 계획을 홍보하며
예산을 확보하는데 힘씁니다. 아브레우 본인이 정부 요직에 몸담기도 했었고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베네수엘라 전역의 학교에
어린이/청소년 관현악단이 생겨나고
악단을 가르칠 교사와 악기와 교재 등이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세계 클래식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엘시스테마 열풍'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죠.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최연소, 남미출신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콘트라베이스 주자 에딕손 루이스 등이
엘 시스테마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힙니다.
두다멜과 엘 시스테마 후배들이 함께 하는 감동의 무대 보시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NYvEvP2cmdk
다시 채용형 인턴 면접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당시 저는 우연한 기회에
엘 시스테마에 대한 도서와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완전 꽂혀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지막 질문에 저렇게 답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회장님, 잡지 발행인, 인사팀장님은 모두
"그게 누구인고?"하셨고
저는 차분하게
엘 시스테마에 대한 설명부터 클래식에 대한 저의 애정까지
차근차근 풀어 답했거든요.
그리고 그 날 저녁 합격통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가 몸담게 된 잡지 발행인이
엄청난 클래식 매니아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됨)
종종 사무실에서 뵐 때마다
미소를 보내주셨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순전히 뇌피셜입니다..)
이 클래식 취미가 종종 나이 지긋한 분들과 인터뷰할 때도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