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을 들켯을 때

무심코 페르소나를 벗엇을 때

우리는 각자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

나의 페르소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Part1.

사랑받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한 두 번의 우연에 이미지가 만들어져 어쩔수 없이 남이 정해준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다닌다.

그렇게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사랑할 땐 사랑을 얻기 위해 친절하고 배려깊게 행동한다. 남의 일에 관심없던 자신이지만 상대의 말에 반응하고 궁금한듯 계속 물어본다. 그렇게 상대의 눈에 비치는 나를 만들어간다. 아이를 키울 때는 바람직한 아빠의 모습을 따라 좋아 하지 않는 공놀이도 하고, 자상하고 친절하게 아이에게 대한다.


내 것이 아닌것은 어디에선가 어색한 법이다.

내 본성이 아니었다면 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관계를 시작할 때 써왔던 페르소나가 나도 모르게 벗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변했다고 한다. 사실 변한건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상대를 위한 마음과 자신을 위한 욕심에 써오던 가면이 벗겨져 본성이 드러났던 것 뿐이다.


사람이 변했다며 가슴아파하고, 사랑을 잃을 것 처럼 슬퍼한다. 변해버린 상대를 미워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잠시 가면이 벗겨졌을 뿐인데 다시 추스릴 시간을 주고 이해해줘야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진짜 사랑하고 이해한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관계가 만들어질 때는 모두 각자의 페르소나를 쓰고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그 혼신의 연기에 빠져들어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된다. 하지만 서로 익숙해지며 점점 공통의 관심사가 줄어들면 가면은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난다. 진짜 인연이라면 이때 서로의 날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줘야 한다. 그게 상대의 진짜 모습이니까. 가면을 쓴 모습이 좋았다면 다시 가면을 쓰도록 잘 다독여줘야 한다. 그렇게 권태를 이기지 못하면 헤어지거나 소원해지고, 원수가 되기도 하겠지만 받아주는 사람은 하나가 된다.


검사 같은 사이가 되지 말고 변호사 같은 사이가 되라 했다. 그러려니 이해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느 관계든 깊게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일 때만이 영원할 수 있다.


Part2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최소한 겉으로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은 그러려 부단히 애를 써오며 살았다. 학창시절 문득 거울을 보니 내 입술이 굳게 다문 과묵한 아저씨의 입술 같았다. 그때부터 억지로 입고리를 올리는 습관을 가졌다. 내가 만든 나의 페르소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냥그냥 욕심없이 지내던 나에게 안좋은 소식들은 그냥 별거 아닌 일들이었고, 그래서 별거 아니게 받아들였는데,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칭찬이 따라왔다.


내게도 우울함이 땅을 파고 나를 지하로 끌고 들어갈 때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벌어진 일이라면 맞서 이겨내야하고 피할수 있으면 어떻게든 피하면 될 일이다. 일어날 수 도 있는 가능성에 불과한걸로 힘들다면 괜찮겠지 하며 이겨내면 된다.


내게 긍정의 가면이 벗겨질 때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어질 때다. 다툼 끝에 서운하고 내 잘못만 남았을 때 특히 그렇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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