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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Dec 05. 2021

줄임말, 뭐 하러 쓰냐고?

40살에도 줄임말 써도 되나요

 적은 나이는 아니기에, 요즘 애들이 쓴다 하는 줄임말은 모른다. 하지만 눈치와 센스는 나쁘지 않기에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는 정도? 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2021 나의 인싸력 테스트 중 2021 신조어 테스트에서 0개를 맞추어 인싸등급 '어르신'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2021 신조어 테스트>
스불재. 룸곡. 당모치. 임포. 비담. 완내스. 군싹.

 흠.. 인싸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죽기 전에 인플루언서 한 번 돼보고 싶은 사람이다.  빵점을 받다니 썩 기분 좋은 결과는 아니다.


저 줄임말의 뜻을 보니, 뭐야~ 별다줄!(별걸 다 줄여!) 이란 생각이 들지 않고,

오! 유용한 단어들인데?라는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하지만 저 단어들을 기억 해내지 못해 앞으로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내 머릿속 줄임말은 오래전에 멈추어 있다.

존버, 얼죽아, 얼죽코, 존예, 존맛탱, 티엠아이, 제곧내 -> 요 수준이 되겠다.



아이를 낳고 첫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 보통 나와 10살 이상 차이가 났다.

' 언니! 요즘은 그렇게 말 안 해요!'라며 줄임말을  알려줄 때마다 하나씩 배우는 재미도 있었다.

안 배우면, 언니라고 안 불러줄까 봐. (주사님이란 호칭이 그렇게 싫은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딱히 우리말을 곱게 쓰는데 크게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조어 쓸 때 세종대왕님께 죄송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신조어에 외래어가 조합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내가 쓰는 말들은 보통 훈민정음을 기본으로 응용하고 있다.


상황에 맞게 알아들을 그룹에서는 쓰고, 알아듣지 못하는 그룹에서는 쓰지 않으면 된다.

줄임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줄임말을 쓰면 못 알아들어 답답하듯,  줄임말을 쓰는 그룹에서 길게 늘여 쓰면 호흡이 느려져 텐션이 떨어질 수 있다. 뭔가 뒤처지는 기분도 사실이다.


드라마 이야기를 할 때도 '어제 멜체 봤어?'라고 물어 본 직원에게, ' 응, <멜로가 체질> 너무 재밌어.'라고 대답하면 어색하고 쓸데없이 힘을 준 기분이 들지 않은가.

실제로 <갯마을 차차차> 대본집도 '갯차대본집'으로 인터넷에서 판매 중이며, 나의 인생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도 네이버 검색창에 '로필'이라고 검색하면 된다.


인터넷 1인 미디어에서 통용되는 줄임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모임에서 만들어진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끼리 알아듣는 재미도 있다.

예를 들면 술모임의 '날선노','장선노', '정산노'가.그러하다.

#날선노:모임날짜 선정 노예
#장선노: 모임장소 선정 노예
#정산노: 결제한 후 정산하는 노예


 보통은 나보다 나이 많은 여직원들은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같은 SNS를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교육과 책 관련 유튜브를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뒤처진다. 예능을 보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남편을 비롯한 나보다 나이 많은 남성분들은 줄임말을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장난삼아 한 가지씩 살려보는 재미가 있다.


며칠 전 팀장님께도 일부러 크게 또박또박 말했다.

"팀장님! 저 오늘 야근 못해요! 오늘 결!기!에요."


예상 시나리오는,

"결기가 뭐야?"

"결혼기념일이요~"

"하하! 결기라고 하는구나! 하나 배웠네."

"호호! 다음에 또 하나 알려드릴게요~"

이것이었다.


웬걸, 같이 있던 50대 팀장님, 40대 남자 직원, 20대 남자 직원, 20대 여직원들 모두 이 밤중에 무슨 궐기대회를 나가냐는 듯 쳐다본다.


"결혼기념일이라고요......."


아니 우리 좋은 말을 두고 왜 그런 이상한 말을 쓰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젊은 직원들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너무 오래 된 철 지난 줄임말을 쓰면 도리어 꼰대취급 받을 수 있는 나이였다.



그 어떤 업무와 민원에도 목소리를 높인 적 없어 천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40대 남자 주무관님'은 목청 높여 반복했다.

"야! 그런 말 좀 쓰지 마! 얘들아! 너네 결기 들어봤니? 결기? 도대체 왜 줄임말을 써??"


직원들은 그 일을 <결기사건>이라 부른다.

#결기사건: 2021년 11월 17일. 천사같은 남자 주사님이 목청을 높인 사건.

그날 이후로 팀장님은 나를 "결기! " 라고 부르신다.

40대 남자 주무관님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런 줄임말 있는 거 맞아? 네가 방금 만든 거 아냐?" 하며 의심한다.


 그래, 아이에게도 줄임말과 외래어를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쓰지 말기로 결심한다. 원래도 줄임말 잘 안 쓰고, 사실 잘 알지도 못하잖아.


그럼에도 삶 속 구석구석 줄임말이 스며들어있음을 깨닫는다.


며칠 전에는 출근하자마자,

"아, 출근하면서 음쓰(음식물 쓰레기) 버렸더니 온몸에 냄새가 배어버렸어요. 자꾸 나한테 냄새나요!" 했더니 또 옆에 그 40대 남성 주무관님 (역시 너무 길어 불편하다. 이하 '4남주'라고 부르겠다.)이 물어보신다.

"음쓰가 뭐야?"


그 4남주는 이제 젊은 직원들만 마주치면 물어보신다.

"너네 결기 들어봤니? 너네 음쓰 아니?"


내가 뭐 엄청난 줄임말을 쓴 것도 아니고,

하...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왓챠플레이'도 사람들이 '왓챠왓챠'하니까 왓챠로 명칭을 바꾸었듯 짧은 호흡으로 박자를 맞추는 시대다.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줄임말도 있다

경로장애인과->경장과

생활자원과->생자과

농업기술센터->농기센

이렇게 우리 조직의 실 과와 기관명을 줄여 부르는 것이 그러하다.


법원에서도' 쌍방 불출석으로 소 취하한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하지 않고 '쌍불취하'라고 한다.

많이 배우신 분들도 줄임말 쓰시는데 난 왜 안되는데?


왠지 젊은이들은 써도 그러려니 하고, 내 나이엔 줄임말 쓰면 너무 품위 없어 보이고 그런 건 아닐까?

어느 정도 써야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교양을 지키며, 옛날 사람이라는 말을 덜 들을 수 있을까?(옛날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옛날 사람 맞지만 그 말을 덜 듣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다.)


금요일, 야근하는 사람들의 저녁 메뉴를 고르는데,

그 '4남주'는 '오삼'을 시키더라. 그때를 놓치지 않고 옆에서 한마디 했다.

"주사님! '오징어삼겹살불고기' 드신다고 말씀하셔야죠!"


그렇게 난 또 뒤끝 있는 사람으로 품위를 한 번 더 잃었다.



40대에 줄임말, 어디까지 써도 될지

'알잘딱깔센' 알려줄 사람?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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