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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Oct 16. 2021

불효녀에게서 효자가 태어났어

넌 뱃속부터 효자

엄마가 전화하셨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받으면 걱정하실까 봐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너 백신 2차 언제라고 했지?? 지금쯤 아니니?"



부모님 몰래 2차 백신을 맞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말라고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걱정하셔서 잠도 못 주무실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 정말 효녀라고? 노놉! 사실은 날 위함이 크다고 고백한다. 이미 백신 1차 때 부모님의 전화와 톡을 번갈아 받은 경험이 있다.


- 백신 맞자마자 : 괜찮니? 몇 분 지났니?

- 1시간 후 : 이제 약이 온몸에 다 퍼졌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니?

- 다음날 아침: 잠은 잤니? 출근 안 하면 안 되니?

- 그다음 날 : 괜찮니? 괜찮다고 야근하지 말고 쉬어! 일주일 있다가 아픈 사람도 있대.

- 그다음 날 : 자꾸 괜찮다고 하지 말고 좀 쉬어! 한 달 있다 죽은 사람도 있어(소곤소곤)"

  "쉬어! 좀 쉬라고!"


하.... 전화 때문에 쉴 수가 없어 ㅜㅜ


아프다 한들, 부모님께 "네, 아파요, 아파 죽겠어요."라고 할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혼자 아프던 걸 부모님과 같이 아파야 하니까.


그리하여, 2차 백신은 살며시 맞고 살며시 아팠다. 심지어 친한 친구가 언제 맞냐고 물어봐도, 비밀이라고 대답하니 나도 성격 참 이상하다.


엄마도 이미 백신을 맞았다는 딸이 목소리도 밝은 걸 확인하시고는 안도하고 끊으셨다.

"그래, 잘 지나갔으니 됐다. 잘 맞았다. "

이러니 부모님을 위한 거짓말이든, 날 위한 거짓말이든 윈윈 아닌가?




성공적인 백신 2차 슬그머니 맞기를 마무리하자, 2013년 아이를 출산하던 때가 떠오른다.

 다른 직원들은 출산휴가가 아깝다고 아이 낳기 전날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출산휴가를 핑계로 백수가 되어보고 싶었다. 10월 말쯤이 출산 예정일이라 10월 1일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운 좋게 후임자도 한 달 미리 발령받았다.)


"아가야, 엄마 딱! 한 달만 놀아보자, 알았지?"


하루 종일 태동 없던 아기는 10월 1일부터 격동적인 태동을 시작했다. '와, 너 그동안 태동할 줄 몰라서 안 한 거 아니었구나. 예민한 엄마 때문에 사무실에서 꼼짝 않고 있던 거였구나.ㅜㅜ'



2013년 10월 1일. 백수축하파티


8년 만에 백수가 된 기념으로 파티를 하며 우유를 원샷했다. 만삭의 몸으로 매일 돌아다니며 즐겼다. 오랜만에 출근을 안 하니 몸이 참 가벼웠다.(지금 몸무게와 비슷 ㅠㅠ지금은 홀몸입니다만.)

병원에서는 아이가 2킬로밖에 되지 않았고 조금도 내려오지 않았다 했다. 보는 사람들마다 아직도 아이를 낳지 않았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 말고 다른 것이 걱정이었다.


엄마는 늘 '엄친딸'들과 비교하며, 넌 왜 엄마와 안 놀아주냐고 하며 늘 불만이셨다. (엄친딸들은 나보다 돈도 많이 벌면서, 나보다 많이 한가해서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효녀들뿐이다.)

그러다 드디어 출산휴가가 시작되자 엄마는 우리 집에 출근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고, 쇼핑을 했다.


그렇게 엄마와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이렇게 엄마와 함께 있다가 진통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엄마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엄마는 여자가 남편의 아이를 낳아준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내가 내 자식 낳느라 아픈 건데, 그걸 보며 힘들어하고 그 기억을 꺼내어 두고두고 본인을 스스로 괴롭히실 것이 뻔했다.

실제로 내 진통을 보는 게 무섭다고, 사위를 미워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오늘도 애 나올 기미가 없니?"


'아가야, 어떡하지? 매일 날 찾아오시는데, 진통하는 걸 안 보여 드릴 재간이 있을까?'




아기는 나의 한 달 백수 기간의 소망을 채우기 위해 딱 11월 1일에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외할머니에게 진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새벽 4시 1분을 선택해 태어났다.

2킬로그램이라던 아기는, 출산휴가 한 달 동안 태동과 먹방을 자랑하더니 3.5킬로그램의 우량아에 참새 같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우리 아기는, 뱃속부터 효자였다.철없는 엄마가 천방지축 놀러 다닐 생각만 하고, 잘 챙겨 먹지도 않고 뱃속의 너에게 늘 부탁만 했는데 그 모든 걸 다 들어준 것이다.



그런 천사에게 만 8년째 매일 후회할 행동을 하고 사과를 한다.

"아, 나 또 엄마한테 꾸중 들었어. 흐흑. 나 또 엄마한테 잔소리 먹었어. 오늘 잔소리 파티야!" 이런 말을 하는 아이는 어떤 날은 다시 내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엄마한테 혼나도 엄마 말을 잘 들을 수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나?

괜찮아. 지금은 너, 그냥 존재만으로도 효자야.


오늘도 아들은 말한다.

"엄마, 나한테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지 1분도 안 지났는데, 또 화내?"

"야! 넌 내가 화낸 지 1분도 안 지났는데 또 까부냐?"




백신을 이미 맞았다는 말에 편안해진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나 역시 백신 후유증도 날아가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아들에게 잔소리 폭탄을 쏘러 출동해야겠다.


"아들! 넌 이다음에 커서도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해줘야 해! 엄마가 대신 아파줄게!! "

라고 말하면 내 말을 절대 듣지 않을 아들이니, 거꾸로 말해줘야겠다.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해주지 마!"                            


오늘은 아들에게 축하받았다. " 엄마, 검은띠 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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