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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Oct 03. 2021

한때 원더우먼을 꿈꾸었던  실수 부자

실수의 효용가치


 안 읽던 자기 계발서를 몇 권 좀 읽었다고 티 내고 싶어서 그런 건지, 글감을 찾아 헤매는 작가 흉내 놀이를 하느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답지 않은 질문을 하는 요즈음이다.

"내가 남들보다 가진 경험이나 노하우는 무엇인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랜 기간 답을 못 하다가 방금 편성준 작가의 <실수담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라는 글을 읽다 어깨에 뽕이 한 움큼 올라갔다. 작가님이 말하는 건망증과 부주의함을 바탕으로 깔은 실수라면 나도 매일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업무적 실수는 유난히 부끄럽지만 누구보다 자신 있다. 그 덕에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해서 스트레스도 받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쿵쿵 박기도 한다. 업무 외 일상에서의 실수도 다양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보단,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나의 몫인 경우가 많다. 얼마나 다행인지. 쏟고 엎고 깨고 넘어지는 일상이라 학창시절엔 친구들에게 시트콤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unsplash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늘 실수를 달고 사는 신민아처럼 예쁘지 않아서일까. 사람들은 날 꼼꼼하고 차분한, 실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처음 회계부서에 발을 넣게 해 준 분도 그러셨다. 침착하고 꼼꼼한 너는 잘할 거라고. 심지어 부모님도 날 잘 모르셔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시면 너 왜 그러냐고 당황해하신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더 당혹스럽다.


 나이가 들 수록 역할이 다양해져서일까, 실수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미지를 잘못 보고 결혼한 남편은 나의 허물을 볼 때마다 짜증을 낸다.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억울하다. 난 정신을 놓은 적이 없는데. 평소에 정신을 붙들고 있은 적도 없지만 말이다. 실수는 나의 일부인데 이것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내가 어린이집가방의 존재를 부정하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번갈아가며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각자 야근을 하거나, 약속을 잡거나, 본인 할 일을 해야겠기에 세 가족 함께 있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실수 부자라는 걸 인정기까지 십 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출근길에 아이와 어린이집 가방을 둘 다 챙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늘 가방을 현관 앞에 두고 집을 나섰다.(아이 아빠가 등원시키는 날만 가방을 메고 갔다.) 여러 번 반복되자, 하원을 맡은 친정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이 가방 좀 신경 써서 챙겨라."라고 말씀하셨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학생이 어린이집 가는데 가방을 안 가져가고, 군인이 전쟁 나가는데 총을 내버려두고,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부끄럽고 블라블라 블라... 밤새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게 해서 그 다음 날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기 위해, 현관문을 닫지 못한 것이다.(어린이집 가방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하필 그날은 저녁 약속이 두 개나 있는 날이라, 남편이 일찍 귀가하다가 활짝 열린 현관문을 보고 만 것이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하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집에 들렀다 갔어? 안 들렸다고? 그럼 아침부터 하루 종일 현관문을 열어놓은 거야?"

 "나... 술 그만 먹고 들어갈까?"

 "그냥 먹어!"


 그날은 어쩐지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진짜로 그냥 술을 먹으러 갔다.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잔소리 피하려다 남편 잔소리를 듣게 생겼다니. 같이 술 먹던 직원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요청했다. 남편에게 잔소리 안 듣게 좀 도와줘! 나좀 살려줘!


조언자 1: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도둑이 안 들어간다고 해. 티브이에 아침마당 그런 데 나왔다 그래. 그래서 일부러 열어놨다고 해.

조언자 2: 오빠 엉엉엉 하며 가자마자 울어. 나 치매인가 봐. 엉엉엉. 하고 계속 울어.

조언자 3: 가자 마자 현관문 말굽을 떼어 버려! 그럼 문이 쾅 닫히니까, 앞으로 걱정 없다고 말해.

조언자 4: 그건 안돼! 문이 매번 쾅쾅 닫히면 결국 고장이 나. 내가 경험 있어.


 그렇게 실수는 잠시 잊고 큭큭거리며 술을 먹고 현관문 앞에서부터 근엄한 표정으로 바꾸어 집에 들어가서 기죽은 척했다. 남편은 도둑 안 든 거면 됐다며 넘어갔다. 오히려 나 자신이 더 나에게 가혹하게 굴었다. 아침마다 현관문을 닫았는지 스스로를 의심했고, 점심시간마다 집에 와야 했다. 물론 단 한 번도, 문이 열려 있은 적은 없었다.


 후폭풍은 오래갔지만,  세상의 모든 일엔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나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완벽한 존재인 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더 심한 실수를 하면 남편은 말한다.


하다 하다 이젠 진짜!



 업무적인 실수는 해결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오랜 불안함 속에 고민하다 해결된 것들은 성취감마저 준다. 내가 쏟은 물 내가 닦아 놓고 이런 느낌 받아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여전히 실수하고 살고 있으며, 실수하면 금세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진다. 그러나 예전의 경험들을 떠올리면 콩닥거리던 심장은 금방 잠잠해진다. 실수는 줄지 않지만 실수해결시간도 꽤 줄어들고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실수의 효용 가치가 되겠다. 후배들에게도 당당히 말한다. "걱정하지 마. 일단 실수는 인정하고 사과하면 돼. 그리고 어떻게 되돌릴지 알아보면 돼."


 하지만 유난히 집에서의 실수는 인정과 사과를 어려워하는 진상이 된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것 같은데 나보고 머 어쩌라고." 그저 어깃장을 놓고 마는 것이다.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른으로서의 경력이 쌓이면 자동으로 달라지는지 알았다. <헬로카봇>의 주인공 차탄 엄마처럼 엄청 많은 자격증 부자까진 아니어도 뭐라도 기술이 늘고 재주가 많아져,  늘어나는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하는 깜냥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임무가 늘어나고 바빠질수록 넉넉해지는 건, 실수뿐이다. 그렇게 난 실수 부자에서 실수 재벌이 되어가고 있다. 어쩔땐 이런 나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길 바라는 욕심쟁이가 될 때도 있다.



 다만, 아직 아들은 엄마가 완벽한 지 알고 있다. 엄마는 공부도, 영어도 잘하는 걸로 깜박 속고 있다. 심지어 농구도 평생 농구가 취미인 아빠한테 배우지 않고, 평생 농구공 못 만져본 엄마에게 배운다.  때로는 엄마는 '트림 안 하지? 엄마는 방귀 안 뀌지?'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가 커서 이 다음에 <어벤져스>의 '스칼렛 위치'가 되길 바란다. 일단 커야 할텐데.


 아들에게만은 아직 환상 속의 그대이고 싶다. 고학년이 되어, 아무래도 엄마가 초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하기 전에 뭐라도 되고 싶다. 조금이라도 아들의 의심을 늦출 수 있도록 드라마 정주행 좀 줄이고 책이라도 읽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다.


P.S. 아들 몰래 <갯마을 차차차> 정주행 중인데 행복하다. 신민아의 실수를 김선호가 감싸줄 때마다 내 심장 어찌할지. 물론 둘이 연애 시작하면 그만 볼 수도 있다. 연애 전이 제일 재미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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