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g Jun 02. 2021

개인적인 삶에서 중심이 흔들릴 때.

나는 육아맘도 아니고, 직장맘도 아니었다.

 2013년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쳐 2015년 복직을 했다. 복직 이틀 전 인사발령이 났다. 마침 기관을 두 개나 신축하여 이사와 새로운 운영을 준비해야 하는 부서에 배정되었다. 이사 후에도 커진 조직에 맞추어 예산과 사업이 계속 늘어나는 과도기에 있었다. 보통 복직자는 기피하는 부서에 배치된다. 쉬고 왔으니 그만큼 열심히 일하라는 뜻은 받아들였고, 업무 분장은 계속 추가되었다. 업무가 늘어나는 것보다 속상했던 것은 업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해 보는 업무와 바뀐 전산시스템은 해보기도 전부터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바뀌지 않은 전산시스템의 기능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랜만에 업무와 관련된 글자를 보니 편람과 법령은 읽어 보려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꼼꼼히 문서를 읽고 여러 번 검토 후 결재를 올려야 하지만 아이를 데리러 가야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일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아이는 아프면서 큰다고 모두가 말했듯이 매일 크는 대신 매일 아팠다. 열심히 며칠 야근해서 밀린 일 좀 클리어했다 싶으면, 아이가 전염병에 걸려 하루 또는 반나절이라도 휴가를 내야 했다. 일하다 벌떡 일어나 갑자기 캐비닛에 서류들을 쑤셔 박고 응급실에 가거나 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갑자기 올리는 휴가 결제는 늘 어깨를 움츠려들게 하고 목소리가 작아지게 했다. 휴가를 다녀오면 일은 다시 쌓여 있었다.


 매일 야근하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해서 집에 일을 싸가지고 갔다. 보안상 재택근무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한글 파일에 작성해서 개인 메일로 보내고, 출근하면 휴대전화로 업무 메일로 옮기고, 업무 메일을 열어서 업무 시스템에 다시 작업하는 방식이었다. 집은 늘 지저분했고, 아이는 자고 싶지 않아도 엄마가 업어서 강제로 재우니 밤인 줄 알고 잠을 청했다. 아이가 잠들면 밖에 있는 남편을 집에 달려오게 하고 다시 일하러 나갔다. 남편은 나에게 효율적인 업무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직장 생활을 안 해보신 친정엄마께서는 나에게 열경련하는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매정한 엄마라고 말씀하셨다.


 직장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 자신을 위한 휴가를 써 본 적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상사보다도 휴가를 많이 쓰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땡퇴근을 자주 하는 밉상이었다. 집에 일을 가져가서 하니, 초과근무내역이 많지 않다면서 업무를 더 주시는 팀장님도 계셨다. 업무가 많아질수록 일의 실수는 늘어나 툭하면 과장님 방에 불려갔다.

“이래서 여직원한테 중요한 업무를 맡기면 안 돼. 여자들은 머릿속에 아이 생각이 가득 들어있어서 일에 집중을 못 하거든. 내가 여자라서 아는 거야. 내가 아이들 어릴 때 늘 그랬어. ” 억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혼나고 있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다음 주에 아이 대학병원 진료라서 휴가를 내야 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결혼한 여성이 나처럼 업무에 구멍을 만드는 것은 아닌데, 과장님께서는 아이를 낳은 여직원을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지적을 받은 날은 여자 후배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일이 힘이 들까. 흔하디흔한 직장맘인데 별나게도 둘 다 엉망진창이었다.

 윤홍균정신의학과의원 원장님은 <자존감수업>에서 직장이나 가정 모든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에 대한 해답으로 과정에 대한 몰입을 제시한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상처가 적고, 만족감이 남는다고 한다. 그때 그 과장님 말씀처럼 사무실로 집에서의 감정을 가져가고, 사무실에서의 감정은 집으로 가져가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늘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그날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쁜 결과에 절망하고 상처를 받았다. 지금에 집중한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도 그만두는 일이라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일단 직장에 있는 동안은 아이와 집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집에서는 사무실 일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하려 한다. 삶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너무 애쓰는 일도 이제는 집어치우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