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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un 07. 2021

아이를 키우며 삶에서 폐기된 언어

나도 욕하고 싶다

 30년 이상 가지고 있던 사소한 습관들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며 없애버린 언어습관이 있다. ‘아이씨’라는 언어(?)가 아무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삶에서 폐기되었다.


 주변 아이들에 비해 발달이 조금씩 늦던 아이는 말하는 것도 늦었다. 통통한 아이를 보며 시어머니께서는 덩치에 안 맞게 왜 이렇게 늦냐고 늘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이에게 고마웠다. 평균 속도대로 성장하면, 육아에 취약한 엄마가 자신을 못 감당할 것을 알고 일부러 늦게 크는 것 같았다. 특히 말 못 하고 옹알이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너무 귀여웠는데, 말할 줄 알면서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부러진 모습이었다. 하루 종일 말대꾸하는 요즈음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니, 옹알이로도 나에게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었다.


 본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했는지, 엄마란 단어를 처음 말하는 모습도 TV 속 광고와는 너무 달랐다. 그동안 맺힌 것이 많은 것처럼 “어엄!!!마!!!!” 하고 외쳤다. 친정엄마는 조그맣고 귀여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에 경악하며 엄마는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셨다. 평범하게 아빠란 단어를 말한 후 몇 달을 옹알이만 하던 아이의 기다리던 다음 말은 ‘아이씨’였다. 그동안 내가 들은 ‘아이씨’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감탄사와 욕의 중간에 있는 단어였다. 한국어대사전에도 기분이 불쾌하거나 못마땅할 때 내는 말로 감탄사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는 정말 정확하게 욕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또박또박 귀엽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이~띠~” 누가 봐도 욕이었다.


 부모님 앞에서도 나의 직장 상사 앞에서도 몇 달을 계속했다. 이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주변을 살펴보니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의 어른들이 대부분 이 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일상 속에서 지나가듯 작은 짜증의 표현으로 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때부터 그 말을 뚝 끊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쓸 때마다 눈치를 주고 못 쓰게 했다. 온 세상 사람이 모두 그 단어를 수시로 외치는 것 같았고 아이가 그 말을 들을까 봐, 그 말을 영원히 쓸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아이참”으로 교정해 주었고 아이는 몇 달 후 “아이~띠” 대신 “아이~땀”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아이는 커 갈수록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특히 요즘은 아이가 예쁘다고 표현하시는 친정아버지의 언어를 시도 때도 없이 말한다. 귀엽다는 호칭과 욕의 중간쯤에 있는 “새끼”라는 단어다. 이제 9살이 된 아이는 할아버지는 해도 되는데 본인은 왜 안 되냐고 말한다. 아이 교육 차원에서 친정아버지께 그 말을 한 번 하실 때마다 천 원씩 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불로 5만 원을 지불하셨으니 앞으로 최소한 50번은 더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욕 잘 하는 집안에서 욕 안 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없는 걸까?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본의 아니게 욕을 적어보니 은근히 힐링이 되는 것을 느낀다. 아이는 욕 아닌 다른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의 편안함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오늘도 홀로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으며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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