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작가님의 <전달력 수업>에 2회 참여해 보았다. 매 기수당 3주간, 카톡으로 이루어진다. 월, 수, 금 총 9회의 과제를 제출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월요일은 문학작품을, 수요일은 기사나 칼럼을 낭독하고 녹음본을 제출한다. 낭독 문구는 작가님께서 올려주신다.
처음에 신청하고는 2회 녹음 후 참여하지 않았다. 회식을 하고 나면 며칠 체력 바닥으로 다 내려놓곤 하는데 하필 목감기가 심하게 걸리고 말았다. 3주 내내 아예 녹음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주 후 다시 신청했다. 저녁 약속이 별로 없다거나, 뭔가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3주 내 컨디션을 관찰해 본 후여서 좀 더 수월했달까. 월, 수, 금 과제 제출에 포커스를 맞추고 3주 일상을 운영했다. 매일 밤 도라지청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약속이 있는 날은 아이를 재우고 녹음을 했다. 아이가 깰까 봐 목소리는 스스로 주눅이 든다. 그런 날은 특히 성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술 약속이 갑자기 생긴 날은 점심시간에 차에서 녹음을 미리 한다. 그런 식으로 신경 쓰니 과제를 빠트리지는 않고 제출할 수 있었다.
원래는 녹음->청취->재녹음의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내 녹음파일을 듣다 보면 잠이 솔솔 온다. 재녹음하기 귀찮아져, 기존 녹음파일을 업로드하고 누워버린다.(불면증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제 목소리 녹음파일 보내드려요 ㅎ)
금요일은 정해진 주제에 대한 자유 스피치를 녹음 또는 영상으로 제출한다. 대본을 보지 않고 해야 하며, 영상 제출을 더 권장하신다. 참여자 8명 중 나를 포함하여 두 명을 제외하고는 녹음으로 제출하였다. 영상 속 내 얼굴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차피 참여한 거 더 많은 걸 얻고 싶어서 영상으로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퇴근해서,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나도 씻고 머리를 틀어 묶고 카메라를 보면 가관도 아니다. 처음 찍는 날은 비명이 절로 나왔다. 으악, 아이에게 엄마가 정말 이렇게 뚱뚱한지, 이 정도로 못생겼는지 물어보고야 만다. 아이는 그래도 실제 모습이 더 낫다며 다시 찍으라고 권한다. 그건 또 귀찮으므로, 아이를 빨리 재워야 한다는 핑계로 대충 찍어서 제출한다. 어차피 누가 날 보고 기억할 것인가. 온라인 모임은 보통 나 혼자 강원도 사람이라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다. 어차피 난 뭔가 배우려고 참여하는 것이니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문을 외운다. 2~3분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세 번 다 1분 50초짜리 영상을 제출했다. 다음 주에 덜 피곤하면, 그땐 좀 제대로 된 몰골로 2분 넘는 영상을 찍어보자 하고 미루었다.
작가님께서 바쁘셔서 피드백을 제때제때 못 해주시는 것이 이 수업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3회부터 9회 과제까지의 피드백을 한꺼번에 받았다. 다음 기수에도 참여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건 단점이 아니었다.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음 기수에 참여하면 되니 말이다. 보통은 무슨 수업이든 한 번 참여하면 최소한 6회는 해 보려 한다. 처음부터 잘 할 필요는 없다. 그래야 다음 기수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고, 발전하기 쉬우니까.
마지막에 내가 받은 피드백들은 의외로 칭찬이 많이 보였다. 물론 모든 피드백의 기본은 칭찬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야 학생이 단념하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을테니까. 알면서도 칭찬은 기분 좋은 것.
아이에게 작가님께 받은 피드백 중 다른 거 다 빼고 긍적적인 피드백만 전했다. 엄마가 낭독 녹음한 것에 대해서 칭찬을 받았다, 심지어 영상 촬영에 대해서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건 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너도 엄마가 영상 찍을 때 옆에 있었으니,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지 않느냐. 작가님께서 괜히 좋은 말만 해주시는 것 같지 않느냐.
나의 말에 아들은 엄마가 발표는 못 한 게 맞는데, 엄마 얼굴이 잘 해서 칭찬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분 좋은 칭찬은 또 무엇인가 말인가. 아들에게 혹시 '얼굴이 잘 했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기분 좋은 칭찬인지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잘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기분이 날아올라, 다시 묻는다. 엄마가 발표를 못했다고? 뭘 잘 했다고?
"얼굴이 잘했어."
다시 들어도 기분 좋다. 진실은 필요 없다.
p.s.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글의 장르는 코미디일 것이고,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글의 장르는 호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