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모태펀드, 2조 원 시대

지역성장과 K-콘텐츠에 거는 대한민국 벤처투자의 새 판

by PODO

1. 역대 최대 규모, 모태펀드 2조 원 시대의 개막

2026년 1월 23일, 한국벤처투자가 공고한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 계획은 벤처캐피탈 업계에 강력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총 출자 규모 2조 1,440억 원. 이 숫자는 단순한 예산 증가가 아니라, 대한민국 벤처투자 생태계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1차 정시 출자사업 규모가 1조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확히 두 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모태펀드, 정식 명칭으로 '중소기업투자모태조합'은 2005년 7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근거하여 탄생했다. 당시 벤처붐이 꺼지면서 벤처펀드 조성 규모가 2000년 1조 4,341억 원에서 2004년 6,450억 원으로 절반 이하로 급감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매년 예산 배정에 따라 투자금액이 결정되는 공급자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회수재원의 재순환 방식으로 안정적인 벤처투자 재원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렇게 1조 원 규모로 시작해 30년간 운용될 계획으로 출범한 모태펀드는, 20년이 지난 지금 단일 출자사업에서만 2조 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성장했다.

모태펀드의 작동 방식은 재간접펀드, 이른바 'Fund of Funds' 구조를 따른다.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영화진흥위원회, 해양수산부 등 13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출자한 자금을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며, 이 자금은 민간 벤처캐피탈이 결성하는 자펀드에 출자된다. 자펀드는 다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다. 정부가 투자 재원을 공급하되, 실제 투자 의사결정은 전문기관과 민간 운용사가 담당함으로써 정책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설계다.

이번 2026년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계정에만 1조 6,300억 원이 편성됐다. 창업초기, 재도전,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세컨더리, 기업승계 M&A, 지역성장펀드 등 21개 분야에 걸쳐 자금이 배정됐다. 1천억 원 이상의 예산을 배정받은 분야만 6개에 달한다. 루키리그 1,000억 원, 재도전 1,200억 원,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스케일업 딥테크 1,500억 원,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유니콘 1,000억 원, 지역성장펀드 2,300억 원, LP플랫폼 1,700억 원이다. 문화, 영화, 해양 계정까지 포함하면 총 10개 계정에서 31개 분야가 동시에 문을 열었다.

규모의 확대만이 이번 출자사업의 특징은 아니다. 2024년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총 11조 9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대비 47.5% 증가한 수치이며, 2021년 이후 지속됐던 감소 추세에서 벗어나 첫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펀드 결성액 역시 10조 6천억 원을 기록하며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같은 기간 세계 벤처펀드 결성 규모가 52.6%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이러한 회복세를 가속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마중물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태펀드의 출자는 단순히 정부 자금이 시장에 풀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05년 출범 이후 2024년까지 모태펀드의 누적 조성 규모는 약 9조 9천억 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결성된 자펀드는 1,327개, 총 43조 9천억 원 규모다. 약 34조 원은 금융기관이나 기업 등 민간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정부가 투입한 자금보다 약 4.5배 많은 민간 투자금이 시장에 공급된 셈이다. 모태펀드가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모태펀드 출범 이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자펀드 투자기업의 비중은 36.5%에 달한다. 자펀드 투자기업의 상장 가치는 투자받지 않은 기업 대비 34% 높고, 설립 후 상장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3.8년이나 짧다. 투자받은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72%로 비투자기업의 두 배를 넘으며, 투자 후 고용증가율은 32.5%에 이른다. 이러한 성과는 모태펀드가 단순한 자금 공급 창구를 넘어, 잠재력 있는 초기 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태펀드의 앞날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2005년 설립된 모태펀드의 존속 기간은 2035년까지 30년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르면 2026년 하반기부터 모태펀드를 기반으로 10년짜리 신규 벤처펀드를 만들 경우, 자펀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모태펀드가 사라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영구화나 민간 중심 전환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논의와 별개로, 2026년 현재 모태펀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출자를 통해 벤처투자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2조 원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벤처 생태계에 거는 기대의 크기를 상징한다. 동시에 이 자금을 운용할 벤처캐피탈과 투자받을 스타트업 모두에게 막중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모태펀드 출자사업이 공고된 2026년, 대한민국 벤처투자 시장은 새로운 2조 원 시대의 문을 열었다.



2. 중기부 계정 1조 6천억의 해부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계정에 편성된 예산은 1조 6,300억 원이다. 전체 출자 규모 2조 1,440억 원의 76%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비중이다. 이 자금은 21개 분야에 걸쳐 배정됐으며, 최소 7,000억 원에서 최대 3조 6,000억 원 이상의 자펀드 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숫자만으로도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각 분야별 배정 내역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창업초기 분야는 벤처투자의 근간이 되는 영역이다. 이번 출자사업에서 창업초기 분야는 소형, 루키, 일반의 세 가지 세부 분야로 나뉘어 총 2,000억 원이 배정됐다. 소형 분야에는 300억 원이 편성되어 500억 원 규모의 자펀드 결성을 목표로 하며, 최대 출자 비율은 60%다. 루키 분야는 1,000억 원을 출자해 1,667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일반 분야에는 700억 원이 배정되어 1,167억 원 규모의 자펀드가 만들어진다. 창업초기 분야 전체적으로 벤처투자조합과 개인투자조합 형태로 결성되며, 신생 벤처캐피탈과 소형 운용사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

재도전 분야는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정책 의지가 담긴 영역이다. 1,200억 원이 배정되어 2,000억 원 규모의 자펀드 결성을 목표로 하며, 최대 출자 비율은 60%다. 청년창업 분야에는 400억 원이 편성되어 667억 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된다. 여성기업 분야는 100억 원을 출자해 167억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든다. 임팩트 분야에는 200억 원이 배정되어 334억 원 규모의 사회적 가치 창출 기업 투자 펀드가 결성된다. 이들 분야는 모두 벤처투자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는 이번 출자사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다. 스타트업 분야는 AI융합과 딥테크로 나뉘어 각각 875억 원씩 총 1,750억 원이 배정됐다. 결성 목표액은 각각 1,459억 원으로 합계 2,918억 원에 달한다. 스케일업 분야 역시 AI융합과 딥테크로 구분되어 AI융합에 1,500억 원, 딥테크에 1,500억 원이 배정됐다. 스케일업 딥테크 분야의 결성 목표액은 3,000억 원으로, 21개 분야 중 단일 분야로는 가장 큰 규모다. 최대 출자 비율은 50%로, 민간 자금의 매칭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유니콘 분야에는 1,000억 원이 배정됐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 육성을 목표로 하며, 최대 출자 비율은 40%로 설정됐다. 해외진출 분야에도 1,000억 원이 편성되어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이 두 분야는 역외펀드 형태로 결성되어 해외 투자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세컨더리 분야는 벤처투자의 회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영역이다. 소형과 일반으로 나뉘어 각각 200억 원, 600억 원이 배정됐다. 소형 분야는 400억 원, 일반 분야는 1,500억 원 규모의 자펀드 결성을 목표로 한다. 최대 출자 비율은 50%다. 세컨더리 펀드는 기존 벤처펀드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거나 LP 지분을 유동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투자에서 회수,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촉진한다.

기업승계 M&A 분야는 400억 원이 배정되어 1,000억 원 규모의 자펀드 결성을 목표로 한다. 최대 출자 비율은 40%이며, 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 기관전용 사모집합투자기구 등 다양한 조합 형태로 결성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세대교체와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는 이 분야는 고령화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역성장펀드는 2,300억 원이라는 21개 분야 중 최대 규모의 예산이 배정된 분야다. 결성 목표액은 7,000억 원 이상이며, 최대 출자 비율은 70%로 21개 분야 중 가장 높다. 나머지 분야의 출자 비율이 40%에서 60%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지역성장펀드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상세히 분석한다.

LP플랫폼 분야에는 1,700억 원이 배정됐다. 출자 비율 정보는 별도로 명시되지 않았으나, 대기업, 금융권, 연기금, 공제회 등과 모태펀드가 공동 출자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와 LP 첫걸음 펀드가 이 범주에 해당하며, 출자자 참여 의향 조사를 거쳐 별도로 운용사 선정 공고가 진행된다.

오픈이노베이션 분야에는 150억 원이 배정되어 150억 원 규모의 펀드가 결성된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협력 투자를 촉진하는 분야다. 스케일업TIPS 분야에는 250억 원이 편성됐다. 글로벌펀드에는 1,300억 원이 배정되어 역외펀드 형태로 40%의 출자 비율로 운용된다. 글로벌펀드는 국내 벤처캐피탈이 단독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 확충을 지원한다.

21개 분야의 예산 배정을 종합하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지역성장에 대한 강조다. 지역성장펀드에 최대 규모인 2,300억 원이 배정됐고, 최대 출자 비율도 70%로 가장 높다. 둘째, AI와 딥테크에 대한 집중이다.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의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분야에서 AI융합과 딥테크가 별도로 구분되어 총 4,750억 원이 배정됐다. 셋째, 글로벌 진출 지원 강화다. 유니콘, 해외진출, 글로벌펀드 분야에 총 3,300억 원이 편성됐다. 넷째, 투자 사각지대 해소다. 창업초기 소형, 루키, 여성기업, 청년창업, 재도전, 임팩트 등 민간 자금이 쉽게 흐르지 않는 영역에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1조 6,300억 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진정한 가치는 이 자금이 어떤 기업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되느냐에 달려 있다. 21개 분야에 걸친 정교한 배정은 정부가 벤처투자 생태계의 구석구석까지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시에 이 설계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위탁운용사인 벤처캐피탈과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몫으로 남는다.



3. 지역성장펀드, 왜 최대 배정인가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2,300억 원이다. 지역성장펀드에 배정된 이 금액은 21개 분야 중 단연 최대 규모다.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스케일업 딥테크 분야의 1,500억 원, LP플랫폼의 1,700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더 주목할 점은 최대 출자 비율이다. 70%라는 수치는 나머지 분야가 40%에서 60% 사이인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정부가 지역성장펀드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이 두 가지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읽힌다.

지역성장펀드의 결성 목표액은 7,000억 원 이상이다. 2,300억 원을 출자해 7,000억 원의 펀드를 만든다는 것은 민간 자금 4,700억 원 이상이 함께 유입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70%라는 높은 출자 비율은 이 논리와 맞지 않아 보인다. 출자 비율이 높으면 민간 자금의 매칭 부담은 줄어들지만, 결성되는 펀드 규모도 함께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설계에는 정부의 명확한 의도가 담겨 있다.

지방 기업에 대한 벤처투자는 오랫동안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한국모태펀드의 지역별 신규 투자 실적을 보면 수도권 집중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유망한 스타트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벤처캐피탈 역시 서울과 경기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지방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성장펀드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70%라는 높은 출자 비율은 위탁운용사인 GP의 펀드레이징 부담을 대폭 낮추고, 빠른 펀드 결성과 집행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출자 비율만 높인 것이 아니다. 이번 출자사업에서는 모든 분야의 GP가 펀드 약정액의 20% 이상을 지방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신설됐다. 지역성장펀드뿐 아니라 창업초기,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세컨더리 등 21개 전 분야에 적용되는 의무사항이다. 이는 벤처투자의 지역 편중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지방 기업 투자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의무만 부과한 것은 아니다. 당근도 함께 제시됐다. 지방 기업 투자 비율이 약정 총액 대비 20% 이상일 경우 추가 성과보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구체적으로, 지방 기업 투자 실적이 30% 이상이면 모태펀드가 수령할 초과수익의 10% 이내에서 추가 성과보수가 지급된다. 40%를 넘으면 15%까지 적용된다. 벤처캐피탈 입장에서 지방 기업 투자는 정보 비대칭, 관리 비용 증가, 엑시트 불확실성 등 여러 리스크를 수반한다. 정부는 이러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지방 투자에 나서는 운용사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지방 전용 펀드가 아닌 일반 펀드에도 지방 투자 인센티브가 적용된다. 일반 펀드의 지방 투자분은 주목적 투자를 120%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지방 기업에 100억 원을 투자하면 주목적 투자 실적으로 120억 원을 인정받는 구조다. 이는 지방 투자를 단순히 의무로 강제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유인하겠다는 정책 설계다. 지방 펀드의 경우 지방에 본점이 소재하고 지방 투자 실적이 풍부한 운용사를 우대 선정해 지방 특화 운용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지역성장펀드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벤처투자 정책을 넘어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는 벤처투자 영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왔다. 유망한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지방에는 투자 기회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정부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모태펀드라는 정책 수단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2,300억 원의 출자, 70%의 출자 비율, 20% 지방 투자 의무화, 성과보수 인센티브까지 동원된 이유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방 기업 투자 의무화가 실제로 양질의 투자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투자 가능한 지방 기업의 풀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의무 비율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지방에 기반을 둔 운용사의 역량이 충분한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방 투자 실적이 풍부한 운용사를 우대 선정하고, 지방 특화 운용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역성장펀드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자금이 지방으로 흘러가느냐로 판단할 수 없다. 그 자금이 지방의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느냐가 핵심이다. 2,3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역성장펀드 출자는 그 가능성을 열어둔 첫 번째 단추다. 이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느냐는 앞으로 GP와 스타트업, 그리고 지방 경제 생태계 전체의 몫으로 남는다.



4. K-콘텐츠 육성의 청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계정에 1조 6,300억 원이 편성됐다면, 나머지 5,140억 원은 어디로 향하는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문화 계정, 영화진흥위원회 소관 영화 계정, 해양수산부 소관 해양 계정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와 영화 계정에만 4,990억 원이 배정됐고, 해양 계정 150억 원을 더하면 총 5,140억 원이다. K-콘텐츠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정부는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문화 계정은 총 6개 분야에서 출자사업을 진행한다. IP, 수출, CT, 콘텐츠신성장, M&A·세컨더리, 글로벌리그펀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배정된 분야는 IP와 수출이다. 각각 1,200억 원씩, 합계 2,400억 원이 편성됐다. IP 분야에서는 2곳의 GP가 선발되고, 수출 분야에서는 4곳의 GP가 선발된다. 단순 계산으로 IP 분야의 GP는 모태펀드로부터 6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는 2026년 1차 정시 출자사업 전체 분야 중 GP당 가장 많은 자금이 걸린 영역이다.

IP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는 콘텐츠 산업의 본질적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 콘텐츠 산업이 개별 작품의 흥행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원천 IP를 확보하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는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웹툰이 드라마로, 드라마가 게임으로, 게임이 굿즈와 테마파크로 이어지는 OSMU 전략이 보편화되면서 IP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정부가 IP 분야에 GP당 최대 규모의 자금을 배정한 것은 이러한 산업 트렌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다.

수출 분야 역시 1,200억 원이라는 동일한 규모가 배정됐다. 다만 선발되는 GP 수는 4곳으로 IP 분야의 두 배다. GP당 평균 300억 원의 자금이 배정되는 셈이다. K-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더 이상 일부 대형 제작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은 운용사에게 기회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에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중소 콘텐츠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창구를 넓힌 것이다.

CT, 즉 문화기술 분야는 콘텐츠와 기술의 융합 영역이다. 버추얼 프로덕션, AI 기반 콘텐츠 제작, 실감형 콘텐츠 등 기술 집약적인 콘텐츠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이 분야에서 결성된다. 콘텐츠신성장 분야는 새롭게 부상하는 콘텐츠 영역, 예를 들어 숏폼 콘텐츠, 인터랙티브 콘텐츠, 메타버스 기반 콘텐츠 등에 투자한다. M&A·세컨더리 분야는 콘텐츠 기업 간의 인수합병과 기존 펀드 지분의 유동화를 지원한다. 글로벌리그펀드는 해외 콘텐츠 시장에 직접 투자하거나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활용된다.

영화 계정은 3개 분야로 구성됐다. 한국영화메인투자, 중저예산 한국영화, 애니메이션 전문이다. 한국 영화 산업은 OTT 플랫폼의 부상과 관객 취향의 다변화로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한편, 중저예산 영화와 장르 영화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영화 계정이 한국영화메인투자와 별도로 중저예산 한국영화 분야를 신설한 것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분야는 K-애니메이션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해양 계정은 바다생활권특화 분야에 150억 원을 배정했다. 문화·영화 계정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해양 레저, 해양 관광, 연안 지역 특화 산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가 결성된다. 해양수산부가 2019년부터 모태펀드 출자를 시작한 비교적 새로운 계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확대 가능성을 열어둔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영화·해양 계정을 종합하면 총 10개 분야에서 19개 GP가 선발된다. 자펀드 결성 목표액은 7,533억 원이다. 5,140억 원을 출자해 7,533억 원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것은 민간 자금 2,393억 원 이상이 유입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평균 출자 비율로 환산하면 약 68%에 해당하며, 이는 중기부 소관 계정의 평균 출자 비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투자 회수 불확실성이 크고, 민간 자금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설계다.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글로벌 OTT 플랫폼의 상위권을 휩쓸고, K-팝 아티스트들이 세계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은 새로운 글로벌 콘텐츠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성공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콘텐츠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고, 글로벌 OTT 플랫폼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K-콘텐츠가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확대하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인재 육성, 새로운 IP 개발이 필수적이다.

문화·영화·해양 계정에 배정된 5,140억 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자금이 단순히 개별 작품의 제작비로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IP 확보와 육성, 해외 시장 개척, 기술 융합, 새로운 장르 개발 등 산업의 근본적인 역량을 키우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5,140억 원은 K-콘텐츠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며, 그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이 자금을 운용하는 GP와 투자받는 콘텐츠 기업의 역량에 달려 있다.



5. GP를 위한 새로운 게임의 규칙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은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위탁운용사, 즉 GP의 입장에서 보면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었다. 지방 투자 의무화, 인센티브 구조 개편, 투자기간 제한 폐지, 관리보수 기준 변경 등 굵직한 변화들이 동시에 적용됐다. 이 변화들은 GP가 펀드를 결성하고 운용하는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는 GP와 그렇지 못한 GP 사이에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방 기업 투자 의무화다. 이번 출자사업에서 모든 분야의 GP는 펀드 약정액의 20% 이상을 지방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지역성장펀드에만 적용되는 조건이 아니다. 창업초기,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 세컨더리, 글로벌펀드 등 21개 전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의무사항이다.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한 GP라면 최소 200억 원을 비수도권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에 수도권 중심으로 투자해온 GP에게는 상당한 전략 수정이 요구된다.

의무에는 보상이 따른다. 지방 기업 투자 비율이 약정 총액 대비 30% 이상이면 모태펀드가 수령할 초과수익의 10% 이내에서 추가 성과보수가 지급된다. 40%를 넘으면 15%까지 적용된다. 예를 들어 1,000억 원 펀드에서 100억 원의 초과수익이 발생했고, 지방 투자 비율이 35%라면 GP는 기존 성과보수에 더해 최대 10억 원의 추가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다. 40% 이상 투자했다면 최대 15억 원이다. 지방 투자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수익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방 전용 펀드가 아닌 일반 펀드에도 인센티브가 적용된다. 비수도권 투자분은 주목적 투자를 120% 인정받는다. 주목적 투자란 펀드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투자를 의미하며, 모태펀드 출자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의 주목적 투자가 요구된다. 지방 기업에 100억 원을 투자하면 주목적 투자 실적으로 120억 원을 인정받는 구조이므로, GP 입장에서는 지방 투자가 투자 의무를 채우는 데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이 인센티브는 지방 투자를 강제하는 동시에 유인하는 이중 장치로 작동한다.

초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됐다. 초기 투자 의무를 제안한 운용사는 선정 평가 시 가점을 부여받아 우대 선정된다. 2025년 1차 출자사업 결과를 보면, 인센티브 대상 펀드 중 절반 이상이 투자 의무를 설정해 지방 창업초기 전용 펀드가 아닌 일반 펀드도 지방 기업에 862억 원, 초기 창업기업에 523억 원 이상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인센티브 설계가 실제로 GP의 투자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다.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 구조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이루어졌다. 2025년부터 2026년까지 2년간 구주 매입을 주목적 투자로 최대 20%까지 한시 인정한다. 구주 매입이란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사들이는 것으로, 신주 발행을 통한 투자와 달리 기업에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다. 그동안 모태펀드 출자 펀드에서는 구주 매입이 주목적 투자로 인정되지 않아 활용이 제한적이었다. 이번 변화로 GP는 유망 기업의 기존 주주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의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초기 투자자의 회수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투자자가 성장 단계의 기업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관리보수 지급 기준도 시장 친화적으로 개편됐다. 기존에는 투자 기업의 재무제표가 악화되면 손상차손 가이드라인에 따라 관리보수가 삭감됐다. 그러나 초기 기업, 특히 업력 5년 이내 기업은 매출이 발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투자 이후 일시적으로 재무제표가 악화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번 개편으로 업력 5년 이내 기업은 투자 이후 재무제표가 악화되더라도 예외적으로 관리보수를 삭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외 기업도 경영 개선이 예상되는 경우 회계감사인 검토 하에 관리보수 삭감을 유보할 수 있다. 초기 투자에 나서는 GP의 부담을 줄이고, 도전적인 투자를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투자기간 제한도 폐지됐다. 기존에는 펀드 결성 후 4년 이내에 투자를 완료해야 하는 제한이 있었다. 이 제한은 신속한 투자 집행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특히 바이오, 딥테크 등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에서는 4년이라는 투자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번 출자사업부터는 투자기간 제한이 폐지되고, 창업초기와 바이오 등 일부 분야는 10년 이상 장기 운용하는 펀드를 우대 선정한다. 모태펀드의 인내자본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신생 및 소형 벤처캐피탈을 위한 루키리그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26년 출자사업에서는 모태펀드 출자 예산의 10%인 1,000억 원이 루키리그에 배정됐다. 루키리그는 신생 및 소형 VC 전용 분야로, 대형 VC와의 경쟁 없이 펀드를 결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5년 1차 출자사업에서는 루키리그에서 10개 펀드, 1,771억 원 규모가 선정됐다. 신생 VC가 첫 펀드를 결성하고, 소형 VC가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을 종합하면 몇 가지 방향성이 읽힌다. 첫째, 지방 투자와 초기 투자라는 정책 목표를 의무와 인센티브의 조합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강제만으로는 형식적 이행에 그칠 수 있고, 인센티브만으로는 정책 목표 달성이 불확실하다. 둘째, GP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되고 있다. 투자기간 제한 폐지, 구주 매입 허용, 관리보수 기준 완화 등이 그 예다. 셋째, 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강화됐다. 루키리그를 통한 신생 VC 지원, 지방 특화 운용사 육성 등이 해당된다.

새로운 규칙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지방 투자 역량을 갖춘 GP, 초기 기업 발굴에 강점이 있는 GP,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GP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반면 기존의 수도권 중심, 레이터 스테이지 중심 전략을 고수하는 GP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2조 원이 넘는 자금이 풀리는 2026년 모태펀드 출자사업에서 어떤 GP가 선택받고, 어떤 전략이 성과를 거둘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6. 2026년 벤처투자 생태계의 방향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은 대한민국 벤처투자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총 2조 1,44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출자, 21개 분야에 걸친 중기부 소관 계정 1조 6,300억 원 편성, K-콘텐츠 육성을 위한 문화·영화·해양 계정 5,140억 원 배정, 지역성장펀드에 대한 파격적인 2,300억 원 출자와 70%의 최대 출자 비율, 그리고 지방 투자 20% 의무화와 성과보수 인센티브까지. 이 모든 숫자와 제도 변화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정부는 벤처투자 생태계의 판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2005년 1조 원 규모로 출범한 모태펀드는 20년간 대한민국 벤처투자 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다. 닷컴버블 붕괴 이후 위축됐던 벤처투자 시장에 마중물을 공급하고, 민간 자금을 유인하며, 투자 사각지대에 자금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누적 출자 규모 약 9조 9천억 원, 결성된 자펀드 1,327개, 총 43조 9천억 원. 정부가 투입한 자금의 4.5배에 달하는 민간 자금이 시장에 공급됐다는 사실은 모태펀드의 마중물 효과가 실제로 작동했음을 증명한다. 모태펀드 투자기업의 코스닥 상장 비중 36.5%, 비투자기업 대비 34% 높은 상장 가치, 두 배를 넘는 5년 차 생존율은 이 펀드가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기업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태펀드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2024년 국내 벤처투자 규모가 11조 9천억 원을 기록하며 2021년 이후 감소 추세에서 첫 반등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의 위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같은 기간 세계 벤처펀드 결성 규모가 52.6% 감소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 시장이 견조한 흐름을 유지한 것은 긍정적이나,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또한 2035년으로 설정된 모태펀드의 존속 기한이 다가오면서 제도의 영속성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영구펀드로의 전환, 민간 중심 체제로의 연착륙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당장의 출자 규모를 역대 최대로 끌어올리며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2026년 출자사업이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지역 균형이다. 지역성장펀드에 최대 규모인 2,300억 원을 배정하고, 최대 출자 비율을 70%로 설정한 것은 전례 없는 조치다. 모든 분야의 GP에게 펀드 약정액의 20% 이상을 지방 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더욱 파격적이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벤처투자의 고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성과보수 인센티브와 주목적 투자 120% 인정이라는 당근까지 제시하며 의무와 유인의 균형을 맞췄다. 이 설계가 실제로 지방 기업에 대한 양질의 투자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정책 방향 자체는 명확하다.

두 번째 메시지는 기술 심화다. 넥스트유니콘프로젝트의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분야에서 AI융합과 딥테크가 별도로 구분되어 총 4,750억 원이 배정됐다. 스케일업 딥테크 분야의 결성 목표액 3,000억 원은 21개 분야 중 단일 분야 최대 규모다. AI와 딥테크에 대한 집중 투자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투자기간 제한 폐지와 바이오·딥테크 분야 장기 펀드 우대 선정은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설계다.

세 번째 메시지는 글로벌 진출이다. 유니콘, 해외진출, 글로벌펀드 분야에 총 3,300억 원이 편성됐다. 국내 벤처캐피탈이 단독으로 글로벌펀드 출자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 확충을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K-콘텐츠 육성을 위한 문화·영화 계정 4,990억 원 배정, 특히 IP와 수출 분야에 각각 1,200억 원씩 편성한 것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투자다. 한국 스타트업과 콘텐츠 기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네 번째 메시지는 생태계 다양성이다. 신생 및 소형 VC 전용 루키리그에 출자 예산의 10%인 1,000억 원을 안정적으로 배정한 것, 창업초기 소형 분야를 신설해 액셀러레이터와 창조경제혁신센터, 대학기술지주회사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 지방 특화 운용사를 육성하겠다는 방침 등은 벤처투자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이다. 대형 VC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규모와 전문성을 가진 운용사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의 이면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모태펀드는 마중물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2조 원이 넘는 출자 규모도 결국 민간 자금과의 매칭을 통해 4조 원, 5조 원 이상의 자펀드로 확대되어야 의미가 있다. 정부 자금이 민간 투자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유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모태펀드의 출자 비율이 50%에서 70%까지 분야별로 다르게 설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 자금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분야는 출자 비율을 낮추고, 민간 투자가 부족한 분야는 출자 비율을 높여 펀드 결성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다.

GP의 역할도 재정의되고 있다. 지방 투자 의무화, 초기 투자 인센티브, 장기 운용 펀드 우대 등의 제도 변화는 GP에게 새로운 역량을 요구한다. 수도권 레이터 스테이지 기업 중심의 투자 전략만으로는 변화하는 게임의 규칙에 적응하기 어렵다. 지방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 초기 기업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심사 역량, 기술 기업과 함께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동시에 관리보수 기준 완화, 투자기간 제한 폐지, 구주 매입 허용 등은 GP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변화다. 더 많은 자유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타트업에게 2026년은 기회의 해다. 역대 최대 규모의 모태펀드 출자로 벤처펀드 결성이 활발해지면 투자 유치 기회도 늘어난다. 특히 지방 소재 스타트업, 초기 단계 기업, AI와 딥테크 분야 기업, 콘텐츠 기업에게는 이전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러나 자금이 풍부하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 가능한 기업의 풀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GP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 기업가치 버블이 형성될 우려도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밸류에이션보다 장기적인 성장 파트너를 찾는 안목이 필요하다.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의 성패는 몇 년 후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2조 1,440억 원의 출자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펀드 결성으로 이어지는지, 그 자금이 어떤 기업에 투자되는지, 투자받은 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지역성장펀드가 정말로 지방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지, K-콘텐츠 투자가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지는지, 딥테크 투자가 기술 주권 확보에 기여하는지도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벤처투자 생태계에 역대급 규모의 자원을 투입하며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역 균형, 기술 심화, 글로벌 진출, 생태계 다양성이라는 네 가지 축은 2026년을 넘어 향후 대한민국 벤처투자 정책의 기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조 원 시대를 연 모태펀드가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2035년 존속 기한 이후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영구펀드로 전환될지, 민간 중심 체제로 이행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지는 지금부터의 성과에 달려 있다. 2026년, 대한민국 벤처투자 생태계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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