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파킨슨 법칙

88%가 도입했지만 6%만 성과를 내는 구조적 이유

by PODO

1. 88%의 착각: AI는 도입되었지만, 조직은 변하지 않았다


2025년 11월, 맥킨지는 105개국 약 2,000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례 AI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 세계 조직의 88%가 최소 하나 이상의 사업 기능에서 AI를 정기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 수치는 1년 전 78%, 2년 전 55%에서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도입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같은 보고서의 다른 숫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업 수준에서 유의미한 EBIT 영향을 만들어내는 "고성과 조직"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조직은 AI를 조직 전반으로 확산하는 단계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격차는 맥킨지만의 발견이 아니다. 같은 시기 발표된 주요 기관들의 조사를 종합하면, AI 도입과 성과 사이의 구조적 단절은 산업과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현상이었다. BCG가 59개국 1,000명 이상의 CxO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10월 조사에서는 74%의 기업이 AI에서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개념 증명 단계를 넘어 역량을 확보한 기업은 26%에 그쳤다. BCG는 이 문제를 "10-20-70 법칙"으로 요약했다. 전환 노력의 10%만 알고리즘에, 20%를 기술과 데이터에, 나머지 70%를 사람과 프로세스에 투입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조직이 이 비율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9월 후속 보고서에서 BCG는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래 대비" 수준에 도달한 조직은 약 5%에 불과했고, 이들은 나머지 기업 대비 1.7배의 매출 성장률과 1.6배의 EBIT 마진을 기록하며 격차를 더 벌리고 있었다.


미국 RAND 연구소의 결과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65명의 데이터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인터뷰한 2024년 8월 연구에서, AI 프로젝트의 80% 이상이 실패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는 일반 IT 프로젝트 실패율의 2배에 해당한다. RAND가 식별한 다섯 가지 근본 원인은 모두 기술이 아닌 조직의 문제였다. 문제 자체에 대한 오해, 필요한 데이터의 부재, 기술 우선 사고방식, 부적절한 인프라, 그리고 AI로 해결하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에 AI를 적용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MIT NANDA 이니셔티브의 2025년 보고서는 아마 가장 충격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생성형 AI 파일럿 프로그램 중 신속한 매출 가속을 달성한 비율은 약 5%에 불과했으며, 95%가 측정 가능한 손익 영향 없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는 2025년에 42%의 기업이 대부분의 AI 이니셔티브를 포기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전년의 17%에서 급증한 수치였다. 가트너는 2025년 말까지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최소 30%가 개념 증명 이후 중단될 것으로 예측했다.


딜로이트의 2026년 기업 내 AI 현황 보고서는 3,235명의 리더를 대상으로 조사하여, 37%가 프로세스 변화 없이 표면적 수준에서만 AI를 활용하고, 30%가 핵심 프로세스를 재설계 중이며, 34%만이 사업 자체를 재구상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확인했다. AI에서 실제 매출 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기업은 20%에 그쳤다.


이 수치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거의 모든 조직이 AI를 "쓰고" 있지만, AI로 인해 "변한" 조직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88%라는 도입률은 성과가 아니라 착각의 지표다. 문제는 AI의 성능이 아니다. 맥킨지는 이 격차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결정적 발견 하나를 내놓았다. 25개 속성을 테스트한 결과, AI 가치 창출의 가장 강력한 단일 예측 변수는 워크플로 재설계였다. 그러나 실제로 워크플로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한 조직은 21%에 불과했고, 생성형 AI 솔루션의 KPI를 추적하는 조직은 5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기술은 준비되었는데 조직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70년 전 영국의 한 역사학자가 발견한 법칙이, 지금 이 순간 AI 전환의 실패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프레임워크가 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파킨슨 법칙의 귀환: 왜 AI가 오히려 일을 늘리는가


1955년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이코노미스트지에 기고한 법칙의 핵심은 단순하다. "업무는 그것을 완료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만큼 팽창한다." 그는 영국 해군성의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다. 주력함이 62척에서 20척으로 줄고 장병이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는데, 해군성 관료는 오히려 78% 증가했다. 식민성은 더 극적이었다. 대영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관리할 식민지는 사라져갔지만 직원 수는 4배 이상 늘어났다. 파킨슨은 이 현상의 원동력을 두 가지 공리로 설명했다. 첫째, 관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부하를 늘리고자 한다. 둘째, 관료는 서로에게 일을 만들어낸다. 이 법칙은 시간뿐 아니라 자원, 인력, 조직 복잡성 전반으로 확장된다.


이 70년 된 관찰이 AI 시대에 정확히 재현되고 있다. 학술적으로 이를 가장 정밀하게 분석한 것은 밀스(Mills)와 스펜서(Spencer)가 2025년 《Journal of Business Research》에 발표한 논문 "Efficient Inefficiency: Organisational challenges of realising economic gains from AI"다. 이들의 핵심 논지는 이렇다. AI가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투입된다면, 그 업무를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더라도 효율성의 이득은 감소한다. 해당 업무 자체가 애초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싯 잡(bullshit jobs)" 이론과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을 결합하여, 관리자가 통제, 모니터링, 개인적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업무를 만들고 유지하는 유인이 AI 도입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효율적 비효율"의 정체다. 조직이 AI를 사용하여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면 매우 직관적이다. AI로 이메일을 5분 만에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이메일의 총량이 줄었는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AI로 보고서를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보고서 요청이 줄었는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보고서가 요청되고, 더 많은 버전이 생산되며, 더 많은 사람이 리뷰에 참여한다. 데이터 엔지니어링 분야의 저명한 저술가 조 레이스(Joe Reis)는 2026년 1월 서브스택에서 이 현상을 직설적으로 기술했다. "AI를 많이 쓸수록 나는 더 바빠진다. 하나의 작업을 빠르게 끝내면, 할 일 목록이 어떻게든 10개씩 늘어난다."


레이스는 이 현상을 경제학의 제본스 역설(Jevons Paradox)과 연결했다.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가 발견한 이 원리는, 자원 사용의 효율성이 향상되면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다는 것이다. 석탄 엔진의 효율이 올라가면 석탄 소비가 줄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석탄 수요가 폭증했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사람들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면, 그들(과 그들의 조직)은 단순히 시도하는 것의 범위를 확대한다. 생산성의 이득이 여유가 아니라 확장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2025년 PubMed Central에 발표된 AI 방사선학 연구는 파킨슨 법칙과 제본스 역설을 동시에 인용하며, AI가 영상 판독 효율을 높이면 더 많은 검사가 처방되어 방사선과 전문의의 업무량이 오히려 증가하거나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름에서 디지털 영상으로의 전환이 건당 효율을 높였지만, 총 영상 건수의 폭발적 증가를 동반했던 역사적 선례가 이미 존재한다.


이 메커니즘은 조직 수준에서 더 체계적으로 작동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카림 라카니(Karim Lakhani) 교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레드 스파타로(Jared Spataro), 하버드의 젠 스테이브(Jen Stave)가 2026년 3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은 AI 전환을 가로막는 7가지 구조적 마찰을 식별했다. 그중 핵심은 "프로세스 부채(process debt)"와 "효율성 함정(efficiency trap)"이다. 프로세스 부채란 수년간 축적된 레거시 워크플로의 층위를 말하고, 효율성 함정이란 AI가 하위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면서 정작 그 프로세스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와튼 스쿨의 연구는 이를 네 단계로 정리했다. 효율성 발견, 기대 확장, 항시적 압박, 그리고 주체성 약화의 순환이다. 각 기업의 AI 기반 효율성 이득이 새로운 경쟁 기준선이 되면서, 모두가 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더 빠르게 달려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거시 데이터는 이 분석을 뒷받침한다. 2026년 2월 《포춘》은 NBER의 6,000명 경영진 대상 연구를 보도하며, 거의 90%의 기업이 지난 3년간 AI가 고용이나 생산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AI는 모든 곳에 있다. 거시경제 지표를 제외하고는." 1987년 로버트 솔로가 "컴퓨터 시대가 모든 곳에서 보이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만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역설이 거의 40년 만에 AI 버전으로 부활한 것이다.


사이버뉴스는 이 현상을 더 날카롭게 표현했다. AI가 기존의 "불싯 잡"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불필요한 업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명명한 "워크슬롭(workslop)"이 대표적이다. AI가 생성한 저품질 콘텐츠가 조직 내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회신하는 데 새로운 노동이 발생한다. 미국 직장인의 40%가 이러한 워크슬롭을 수신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AI가 만든 초안을 사람이 검토하고, 그 검토 결과를 다시 AI에 입력하고, AI가 수정한 결과를 다시 사람이 확인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파킨슨이 "아무도 놀지 않았다,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묘사한 바로 그 상황이, 70년 후 AI를 매개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CloudX는 이 문제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파킨슨 법칙은 효율성만으로는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규율이 필요하다." 조직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AI로 더 많은 일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AI 덕분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식별하고 실제로 하지 않는 규율이다. 이 규율의 유무가 88%와 6%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3. AI를 쓰는 조직 vs. AI로 일하는 조직: 6%의 구조적 차이


맥킨지가 식별한 상위 6%의 고성과 조직은 나머지 94%와 무엇이 달랐는가. 이들은 단순한 효율 추구 대신 변혁적 사업 변화를 목표로 설정할 가능성이 3배 높았고, 워크플로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한 비율이 3배(약 55% 대 20%) 높았으며, 경영진이 AI를 직접 주도하는 비율 역시 3배 높았다. 이들은 디지털 예산의 20% 이상을 AI에 투입했고, 비용 절감이 아닌 성장과 혁신을 동시 목표로 설정했다. 이 프로필이 시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가치 격차의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 설계다.


"AI를 쓰는 조직"과 "AI로 일하는 조직"의 차이는 세 가지 구조적 조건으로 압축된다.


첫 번째 조건은 워크플로 재설계다. 대부분의 조직은 기존 프로세스를 그대로 둔 채 AI를 "도우미"로 추가한다. 결재 7단계를 거치던 문서가 AI 초안 작성 후에도 여전히 7단계를 거친다. 회의 안건을 사람이 정리하던 것을 AI가 정리하게 되었지만, 회의 자체는 여전히 열리고, 회의록을 AI가 작성하게 되었지만 회의록을 검토하는 회의가 새로 생긴다. 이것이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얹는" 방식이다. 2025년 《Inc.》지는 AI 성공을 위해서는 워크플로의 의도적 재설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고성과 조직은 질문의 방향 자체가 다르다. "이 프로세스를 AI로 어떻게 빠르게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프로세스가 왜 존재하는가, AI 시대에도 존재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다.

쇼피파이(Shopify)의 토비 뤼트케(Tobi Lütke) CEO는 2025년 4월 전사 메모를 통해 팀들에게 "AI로 할 수 없는 일임을 증명한 후에만 인력 충원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이 정책은 파킨슨 법칙의 제1공리, "관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부하를 늘리고자 한다"를 정면으로 차단하는 구조적 장치다. 새로운 업무가 발생했을 때 사람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AI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입증 책임이 "왜 AI를 쓰나"에서 "왜 AI를 쓰지 않나"로 뒤집힌 것이다.

듀오링고(Duolingo)의 루이스 폰 안(Luis von Ahn) CEO는 더 구체적인 방식을 택했다. 계약직을 줄이되, 기존 직원에게는 자동화를 우선 적용하도록 의무화하여 같은 직원 수로 4~5배의 생산성 배수를 달성했다. 여기서 핵심은 해고가 아니라 "자동화 우선(automation-first)" 원칙의 제도화다.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할 때, 사람이 만들고 AI가 돕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들고 사람이 감독하는 것이 기본값이 된다. 업무의 주어가 바뀐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조직 팽창의 구조적 차단이다. 파킨슨이 발견한 관료제 팽창의 메커니즘은 AI 시대에도 정확히 반복된다. AI 도입 후 "AI 거버넌스 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팀", "AI 윤리 위원회", "AI 성과 측정 TF"가 차례로 만들어지고, 이들이 서로에게 보고서를 요청하고 회의를 소집한다. 파킨슨의 제2공리 그대로다. 고성과 조직은 이 팽창 경로를 사전에 차단한다.

리벨리오 랩스(Revelio Labs)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중간관리직 채용 공고가 40% 감소했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20%의 기업이 AI를 활용하여 조직 계층을 평탄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은 해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 설계의 이야기다. 중간관리직이 수행하던 정보 취합, 보고서 작성, 일정 조율, 의사결정 보조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 가능해지면서, 조직의 층위 자체가 줄어들 수 있는 구조적 기회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이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간관리자가 하던 업무를 AI가 하게 되었는데, 중간관리자는 그대로 있고, 대신 "AI 관리" 업무가 추가된다.


세 번째 조건은 투입이 아닌 산출의 측정이다. 파킨슨 법칙이 작동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조직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를 "얼마나 잘 일했는가"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이 관행은 특히 치명적이다. AI가 2시간짜리 작업을 20분 만에 끝내게 해주었을 때, 조직이 나머지 1시간 40분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결정적이다. 고성과 조직은 그 시간을 새로운 가치 창출에 할당하거나 아예 근무 시간을 단축한다. 저성과 조직은 그 시간을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위한 무한 반복에 투입하거나, 새로운 보고 체계를 만들어 채운다.

한 분석가는 맥킨지 보고서를 평하며 "모든 사람이 AI를 쓰는 것에서 소수만이 AI를 잘 쓰는 것으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AI를 쓰는 것"에서 "소수만이 AI에 맞게 조직을 바꾼 것"으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AI를 잘 쓰는 것은 개인의 역량 문제다. 조직을 바꾸는 것은 설계의 문제다. 6%는 기술을 잘 쓰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 자체를 다시 설계한 곳이다.



4. 11명이 250개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조직의 비밀


앞서 살펴본 6%의 조건, 워크플로 재설계, 조직 팽창 차단, 산출 중심 측정을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사례가 있다. 한국의 한 AI 네이티브 기업은 정규직 약 11명의 조직으로 25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운영하며, 일반적으로 수십 명에서 백 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업무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 조직의 사례는 "AI를 쓰는 것"과 "AI로 일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조직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기존 업무를 AI에 맡긴 것이 아니라, 업무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한 것이다. 콘텐츠 기획을 예로 들면, 일반적인 조직에서 블로그 하나를 발행하려면 기획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리서처가 자료를 수집하고, 작성자가 초안을 쓰고, 편집자가 교정하고, 디자이너가 커버 이미지를 만들고, 마케터가 배포 채널을 설정하는 6단계 이상의 인간 릴레이가 작동한다. 이 조직에서는 리서치 에이전트가 웹 전반의 최신 자료를 수집하고, 구조화 에이전트가 목차를 제안하며, 작성 에이전트가 한국어 장문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미지 생성 에이전트가 커버를 만든다. 사람은 처음의 방향 설정과 최종 품질 판단만 담당한다. 6명이 하던 일을 1명과 복수의 에이전트가 수행하되, 결과물의 깊이와 범위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주간 AI 트렌드 브리핑도 마찬가지다. 산업별 동향을 추적하고, 경쟁사 제품과의 비교 분석을 수행하며, 내부 팀별로 맞춤화된 보고서를 생성하는 작업이 에이전트 파이프라인으로 구축되어 있다. 기존 조직이었다면 전략기획팀의 주니어 애널리스트 2~3명이 일주일을 투입해야 할 작업이, 에이전트 체계에서는 수 시간 내에 팀별 맞춤 브리핑으로 산출된다. 고객 대응, 제안서 초안 작성, 데이터 분석, 문서 번역, 회의록 정리에 이르기까지, 250개 이상의 에이전트 각각이 특정 업무 영역에 특화되어 있고, 이들의 조합이 하나의 가상 조직처럼 작동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이 조직이 "사람 하나를 에이전트 하나로 대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 업무의 단위 자체를 재정의했다. 기존 조직에서 "리서치"는 하나의 직무였다. 이 조직에서 리서치는 웹 크롤링, 정보 구조화, 관련도 평가, 요약 생성, 출처 검증이라는 다섯 개의 세분화된 태스크로 분해되고, 각 태스크에 특화된 에이전트가 배치된다. 사람이 수행하던 하나의 "역할"이 AI가 수행하는 여러 개의 "기능"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전환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업무 아키텍처의 재설계다.


이러한 모델은 글로벌 AI 네이티브 기업들에서도 관찰된다. 미드저니(Midjourney)는 약 40~60명의 직원으로 2025년 기준 연 매출 약 5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외부 벤처 캐피탈 없이 전액 자체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직원 1인당 매출이 500만~1,200만 달러에 달하는데, 일반 SaaS 기업의 1인당 매출 20~30만 달러와 비교하면 20~40배의 레버리지다. 커서(Cursor)를 만든 애니스피어(Anysphere)는 MIT 출신 네 명이 창업하여, 60명 미만의 직원으로 역사상 가장 빠르게 ARR 1억 달러를 돌파했고, 2025년 6월에 ARR 5억 달러를 넘어섰다. 기업 가치는 1년 만에 26억 달러에서 293억 달러로 10배 이상 상승했다.


카르타(Carta)의 데이터에 따르면, 솔로 파운더 스타트업의 비중이 2019년 23.7%에서 2025년 중반 36.3%로 급증했다. CB인사이츠는 AI 유니콘이 평균 약 200명의 직원으로 2년 만에 10억 달러 기업가치에 도달한다고 분석했는데, 비AI 유니콘의 평균 9년과 비교하면 시간은 4분의 1로, 인력은 수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이들 조직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수렴한다. 첫째, 극도로 작은 팀 규모(3~60명)가 관료적 층위의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파킨슨의 "부하배증 법칙"이 작동할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시간 기반이 아닌 성과 기반의 업무 문화가 "시간을 채우는" 행동을 구조적으로 제거한다. 셋째, 프로세스가 처음부터 AI를 전제로 설계되어 레거시 워크플로에 AI를 덧대는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는다. 11명으로 250개 이상의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한국의 이 조직은, 미드저니나 커서와 같은 구조적 원리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설계의 경쟁에서 승부하는 것이다.



5. 진정한 AX의 조건: 파킨슨 법칙을 깨는 세 가지 원칙


지금까지의 분석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AI 전환의 실패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 설계의 실패다. 88%의 조직이 AI를 도입했지만 6%만이 성과를 내는 이유는, 92%가 파킨슨 법칙이 그대로 작동하는 구조 위에 AI를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관료제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AI는 관료제의 도구가 된다. 더 많은 보고서, 더 많은 회의록, 더 많은 검토 사이클, 더 많은 거버넌스 레이어. 밀스와 스펜서가 명명한 "효율적 비효율"이 조직 전반에 확산된다.


진정한 AX(AI Transformation)는 이 구조를 깨는 것이다. AI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게 조직의 작동 원리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첫째, 기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지 말고 재설계하라. 맥킨지가 25개 속성 중 AI 가치 창출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로 워크플로 재설계를 꼽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 업무를 AI가 더 빨리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올바른 질문은 "이 업무가 AI 시대에도 존재해야 하는가"다. 7단계 결재 프로세스를 AI가 자동화하면, 7단계를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7단계 자체가 3단계가 될 수 있다면, 자동화의 대상은 7단계가 아니라 3단계여야 한다. 나머지 4단계는 제거해야 한다. 11명의 조직이 250개 에이전트를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업무를 에이전트에 맡겼기 때문이 아니라, 업무 자체를 해체하고 에이전트에 최적화된 형태로 재조립했기 때문이다. "리서치"라는 직무를 에이전트에 넘긴 것이 아니라, 리서치를 구성하는 5개의 세분화된 기능을 식별하고 각각에 특화된 에이전트를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자동화가 아니라 재설계다.


둘째, 조직 팽창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라. 파킨슨 법칙의 핵심 메커니즘은 업무량과 무관하게 인력이 증가하는 경향이다. AI 도입 이후에도 이 경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AI 관련 신규 직무(프롬프트 엔지니어, AI 트레이너, AI 거버넌스 담당자, AI 윤리 책임자)가 등장하면서 팽창의 새로운 경로가 열린다. 쇼피파이의 "AI로 못하는 일임을 증명하라" 정책은 이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듀오링고의 "자동화 우선" 원칙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업무가 발생했을 때의 기본 반응이 "사람을 뽑자"가 아니라 "에이전트를 만들자"가 되어야 한다. 미드저니가 40~60명으로 5억 달러 매출을 올리고, 커서가 60명 미만으로 ARR 1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인력을 의도적으로 적게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력 추가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11명의 조직도 마찬가지다. 250개 이상의 에이전트는 250명의 직원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250명의 직원이 필요했을 조직 구조가 처음부터 형성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셋째, 투입 시간이 아닌 산출물을 측정하라. 파킨슨 법칙이 작동하는 가장 근원적인 조건은 "바쁨"이 "성과"로 인정받는 문화다. AI가 2시간짜리 일을 20분 만에 끝내주었을 때, 조직이 "나머지 시간에 뭘 했느냐"를 묻는 순간 파킨슨 법칙이 다시 작동한다. 직원은 20분 만에 끝난 결과물을 2시간 동안 다듬거나, 요청받지 않은 부가 업무를 만들어 시간을 채운다. 고성과 조직은 이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만 묻는다. 11명의 조직에서 한 사람이 에이전트와 협업하여 반나절 만에 산출한 20페이지짜리 리서치 보고서는, 30명 조직에서 3명이 일주일에 걸쳐 만든 같은 분량의 보고서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된다. 투입된 시간은 평가 기준이 아니다. 산출물의 품질과 속도만이 기준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은 결국 하나의 명제로 귀결된다. AX의 본질은 AI의 도입이 아니라 파킨슨 법칙의 해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지적했듯, 발전의 주된 장애물은 모델의 품질이나 데이터의 가용성이 아니라 기술적 역량이 조직 설계와 만나는 "라스트 마일"에 있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그 기술에 맞게 조직을 다시 짜는 의지와 설계 역량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AI 네이티브 기업들이 "더 수평적인 구조, 전문성 중심의 운영 모델, 실시간 의사결정, 그리고 살아있는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특징으로 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것은 미래의 예측이 아니라 이미 현재 진행형인 현실이다. 미드저니, 커서, 그리고 11명으로 250개 이상의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조직은 이미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DX(디지털 전환)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었다면, AX는 사람 중심의 조직을 인간-AI 협업 중심의 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전환의 핵심은 새로운 도구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다. 파킨슨은 1955년에 관료제의 팽창 메커니즘을 해부했다. 70년이 지난 2025년, 같은 메커니즘이 AI 전환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88%의 조직이 AI를 도입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파킨슨 법칙을 깨지 않은 채 AI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6%가 성과를 내는 이유는, AI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AI에 맞게 조직을 다시 설계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AX란 결국 이것이다.


파킨슨 법칙이 작동할 수 없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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