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맞지 않는 리더라는 옷_(2)

by 아인

스물 하나, 나는 참 도발적인 선택을 했다.

ROTC에 지원했다. 가족도 모르게.

대학에 진학하고 병무청에서 1급 판정을 받자마자 신청을 넣어버렸다.


그때도 한참 어정쩡한 자신에 대해 한창 회의감을 느낄 때였고,

그 와중에 재수까지 해서 나이조차 다른 사람보다 어정쩡했다.

이대로 군대까지 남들 가듯이 가게 되면 정말 한층 더 어정쩡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붙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되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단 신청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합격했다. 지금까지도 어떻게 합격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이번엔 내가 알아서 리더의 옷을 입었다.

이 정도로 리더를 했는데, 어쩌면 정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한편엔 있었다.

그래도 어쩌면 겉도는 리더, 혼자 일하는 리더가 아닌 진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소위가 되었다.

아무리 물정 모르는 소위라 해도 명령으로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상급자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리더와는 좀 다른 위치인 만큼 나도 사회에서와는 다르게 아이들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닫힌 사회에도 사람은 살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중위를 달고 대대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도 내 소대를 100% 이끄는 건 불가능했다.

문제를 일으켜도 싫은 소리를 못했고, 힘든 일을 차마 시킬 수 없어 올려 보내고 짐을 매고 철책을 올라갔다.

용사들은 날 좋아했다. 하지만 존경할 상급자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쉬어도 뭐라 하지 않는 편한 사람이어서 좋아했다.


상냥한 리더도 좋은 리더감이 아니냐 할 수 있다.

맞다. 상냥하고 존경할만한 리더가 많다. 내 부대의 선배 중대장들은 참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는 달랐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고, 힘든 일을 시켜도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들을 보면서 큰 벽을 느꼈다. 진짜 좋은 리더는 어떤 일을 시켜도 기분 좋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나는 그냥 일을 시키지 못해 혼자서 안고 앓는 ‘착한 사람’ 그뿐이었다.


리더가 맞는 옷인데 내가 아직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15살부터 27살까지 12년 동안 타의로도 자의로도 리더를 했지만 한 사람도 나를 리더로 인정하게 하지 못했다.

스물일곱. 나는 장기 심사에서 불합격하고 전역했다.

당분간 사회에서 일을 하더라도 리더를 할 일은 금방 돌아오지 않으리라.

물 먹은 옷을 막 벗어낸 듯 상쾌했다.


리더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어쩌다 보니 계속 입게 된 불편한 옷.

마지막으로 그 옷을 입고 거울에 서볼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어쩌면 이번에는’이라고 생각하며 어정쩡하게 리더라는 옷을 입고 버티는 일은 피했으니까.


또 두 세 해가 지나고 다시 리더라는 옷을 타의로 입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억지로 잘하려고 혼자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어울리는 옷이 아닌것을 확실히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어정쩡한 스물일곱 해, 전역 날은 가장 깔끔한 마무리를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