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패배도 잘 못하는 사람.

by 아인

이것도 어정쩡하다.

저것도 어정쩡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사냐 난.

글을 쓰면서도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다.

나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글로만 쓰고 보면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린 태엽 풀린 장난감이 따로 없다.

누구나 힘든 시기라 하지만 두 세배의 상처를 가진 젊음의 장을 보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교류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러니 저러니 힘들다 해도 결국 얼굴 보니 그래도 괜찮잖아.”


사실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내 정신력은 이미 여러 번 벼랑에 다다랐다.

우울증 약을 매일 먹고 극단적인 생각은 늘 품에 품고 있었다. 시도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수 번 있었다.

지금이야 담담히 얘기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왕따에 대한 상처는 심각하게 컸다.

그 와중에 나 자신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도망치기 일쑤이니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마저 마음을 넘칠 듯 채웠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괜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벼랑까지 몰린 감정의 벼랑에서 나를 건져준 것도 나 자신의 어정쩡함이었다.

제대로 이겨내는 것도 못했지만, 반대로 완전히 패배하지도 못했다.

내게 대단한 결의가 있던 것이 아니니 안 했다가 아닌 ‘못했다’가 분명했다.


얼마 풀지도 못한 문제집을 버리지 못한다. 치지도 않는 기타를 부수지도 못한다.

늘 색을 잘못 보면서도 화폭을 찢지도 못한다. 목에 밧줄을 걸고 의자를 차지도 못했다.

끝맺음도 못한 채 뜬 눈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로 공책을 채우며 밤을 새우면 어느새 동이 트고 만다.

아침이 밝고 나면 난 또다시 패배조차 못했다며 한숨을 쉬며 다시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나갔다.

아마 돌아올 때쯤이면 다시 모든 걸 끝내고 싶을 것이다. 관계에 절망했건, 내 능력에 절망했건 말이다.


결국 그때는 패배조차 못하는 내가 보기도 싫었지만 그 어정쩡함이 나를 살렸다.

혹자는 그것이 ‘끈기’가 아니냐. ‘인내심’이 아니냐 그거는 잘하는 것이 아니냐 할 것이다.

하지만 난 내 괴로움을 참고 넘기려고 다짐한 적도 좋은 내일이 올 거라고 믿고 기다린 적도 없다.

‘오늘은 정말 포기하자’라고 생각해놓고는 그 생각조차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음날 고민이 하나가 더 늘었다고 울상을 지을 뿐이다.


설명만으로도 답답하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인생, 나라는 사람의 총체인만큼 다른 얘기 이상으로 답답할 것이다.

나는 승리도 패배도 못했다. 잘하지도 아예 못하지도 않았다. 영광스럽게 살지도 못했지만 고통 속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다.

오늘도 살아서 어제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아갈 뿐이다.


결국 난 어정쩡하게 아직 살아남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남들에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전혀 괜찮지 않지만, 속은 곯아있지만, 어쨌든 오늘을 또 살아남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작별하고 싶은 어정쩡함이지만, 조금은 어정쩡함이 고맙다고 느껴진다.


신기하면서도 당연하게도 처음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