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어.

by 아인

누군가를 소개한다고 생각해보자.

딱히 큰 장점도 못 찾겠고, 그렇다고 학을 뗄 정도로 싫은 사람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소개해야 한다면 백이면 백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

진실도 거짓도 아니다. 누구에게는 정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테니까. 말하는 사람은 아무런 판단을 안 해도 된다.

그렇게 몇 번 그 ‘좋은 사람’을 타인에게 소개하다 보면 어느샌가 자신도 믿게 된다.

저 사람은 어쨌든 ‘사람은 좋다’고.


문제는 그렇게 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순간 ‘좋은 사람’의 다른 모든 특징은 사라지게 된다.

얼굴도 적당히 호감을 가질만한 얼굴일 테고, 성격도 적당하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성격이겠지.

필연적으로 일자리는 적당한 회사에서 다니는 괜찮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좋은 사람’은 어느샌가 소개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얼굴도 체격도 없는 마네킹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좋은 사람’의 가치는 거기서 끝난다.

삶이 바빠 ‘좋은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어느 순간 카카오톡에 뜬 ‘좋은 사람’의 생일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이 뭐하던 사람이지?’

‘정말 사람이 좋은 그 사람’은 그렇게 ‘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정말 할 일을 마친 마네킹처럼 카카오톡에서 지워진다.

이후 한 때 ‘참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던 이는 그 좋은 사람을 영원히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건 누구에게 ‘좋은 사람’인 걸까?

나는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다.

보통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다.

그래서 어정쩡한 재능을 갈고닦지도 못한 채 멈춰 있는 나를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이 사회에서 적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싫어한다.


차라리 ‘그 사람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도 독특한 사람이야’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보통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뜻이던 나쁜 뜻이던 나란 사람이 나를 소개하는 이의 뇌리에 남아 지울 수 없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한창 안 보다가 길에서 다시 만나도 ‘어 저 사람’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극단적인 시도를 하던 평범한 고등학생 때였다.

피부가 벌어져 피가 나기 전까지 긁어가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그때 문득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죽어도 나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의 평범한, 조금은 조용한 학생으로 끝나리라.

누구도 내가 왜 죽었는지는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에게 ‘좋은 학생’이었던 나는 몇 번의 조문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출석번호는 당겨질 테고, 나를 이유 없이 괴롭히던 아이들은 나를 잊고 다른 먹잇감을 찾을 것이다.

어디에도 내가 산 흔적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냥 ‘좋은 사람’으로 삶을 매듭짓는다면 그럴 것이라는 게 참을 수 없이 억울했다.


적어도 억울하면 그 억울함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했다.

내가 살았다는 것이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타인의 공격으로 힘들어할 때, 내가 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힘들어했던 것처럼 내 삶의 힘듦이 누군가에게 공감되길 바랐다.

삶을 매듭짓더라도 최소한 그 자리에 작은 그을림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지워지지 않을 그을림을.


그런 생각들이 어정쩡한 내 삶을 한층 고뇌 속에 빠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데 만족했다면, 그냥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만족하면 지금처럼 어정쩡함에 괴로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다 사라지기 싫었던 그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 나를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를 살렸다.

어정쩡한 오늘을 한숨이라도 쉬며 버티게 하고 있다.


어쩌겠나. 어정쩡한 나는 밤새 가슴을 잡고 괴로워해도 기억되고 싶고, 아직은 살고 싶다.


학교에 나간 어느 날, 학교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인아, 넌 내 세계에 너무 빠져 있어’

선생님은 나를 걱정해준 것이겠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나를 정의해준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나는 적어도 그 선생님에게만큼은 ‘좋은 학생’으로 기억되다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것만으로 한참을 행복했다.


내가 좋든 싫든 나를 아는 사람에게 나를 새기고 싶다.

그냥, 좋은 사람으로 잊히기 싫다.


그래서 나는 어정쩡한 내가 싫다.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사는 내가 싫다.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