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하다는 것의 가장 괴로운 점은 팔방미인이라는 점이다.
정말 뭐든지 잘하고 매력 있는 팔방미인이 아니라, 그 또한 어정쩡한 팔방미인 말이다.
뭘 시켜도 적당하게 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모든 분야에 기본적인 소양이 있다.
교양 있고 무던한 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나한테 있다. 평범하고 어정쩡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것은 다 잘 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잘하고 싶은 것이 늘어난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사회에서 원하는 능력 중 관심 가는 것만 최대한 추려도 못해도 수십 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또 수십 건. 매일을 여가가 아닌 자기 계발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하다.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봐도 그 많은 분야를 통달하는 건 사람이니까 불가능하다.
결국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조금씩 알기만 하는 사람으로 한 발짝 완성되어간다.
결국 다 지쳐서 이룬 것 없이 1년을 보내버린 자신을 보면 탄식부터 나온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왜 1년 동안 하나도 이룬 게 없을까?’
거짓말 없이 참 열심히 살았는 데 말이다.
글도 열심히 썼고, 그림도 없는 시간 쪼개 그리려 해 봤고, 취직도 했다.
노래 연습도 시간이 나는 대로 불러보고, 직무에 맞게 UI/UX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공부도 했다.
일본어 공부도 틈이 날 때마다 했다. 그런데 정작 결과물이 없다.
결과물이 없는 채 1년의 끝자락이다.
올 한 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필요 없는 노력만 한 것 같아 허무해진다.
시간은 유한하다.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간다.
100세 시대니, 정년 없는 커리어라든지, 청춘은 40대까지라던지 희망찬 이야기를 하는 책들도 많지만 모두 알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적절한 단어를 머리에서 뽑아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손은 굼떠진다. 매일 아침 일어나 활자를 읽는 것도 피곤해진다.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말이다.
그래서 두렵다. 그전에 무언가 하나라도 정말 잘해야 하는데 하나를 잘하지 못한다.
나이가 먹고 조금 손이 굼떠져도 이미 잘하는 것은 크게 쇠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배워둔 지식과 기술은 날이 갈수록 더 크게 쇠퇴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한 가지에 전력투구만 해도 잘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손 한가득 달성해야 할 일들을 끌어안은 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바보 같은 일이다. 그게 이도 저도 아닌 보통 사람이 되게 만드는 지름길인데 말이다.
나는 왜 포기를 못할까.
고민은 검색으로 이어진다. 꽤 대단한 입지를 가진 듯한 연사들이 말한다.
‘이 시대는 AI 기술의 융합을 이해하는 인재가 살아남습니다.’
‘최근 공기업 경향에서는 다각적인 방면의 능력 평가가 돋보입니다.’
‘코딩을 이해하지 못하면 업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상을 껐다.
세상 탓을 하기 싫지만, 좀 가혹하지 않은가 싶다.
20년 동안 공만 던져도 150km의 직구를 원하는 곳에 늘 뿌릴 수 없다.
그런데 너도 나도 이것도 저것도 더 많이 배워야 세상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게 필수라고 한다. 내 성향이랑 맞지도 않지만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 되기 싫으면 배워야만 할 거 같다.
결국 코딩 관련 교양서적을 몇 개 더 사버렸다.
내년에 이뤄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추가되고 말았다.
뭔가. 이 중에 뭔가는 포기해야 하는데.
뭐를 내려놓아야 괜찮을지 더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