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중학생 이후로 꽤 있었다.
내가 맞지 않다며 힘겨워하던 리더의 자리도 내 여러 면면이 인정을 받았기에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 잘하더라’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여러 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인정은 나를 노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 능력이 부족함을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어쩌면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인정을 받을 때면 그 사람들이 내 진짜 실력을 보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했기에 더욱 나를 채찍질했다.
대학에 올라올 즈음부터는 나를 향한 기대와 인정이 더 많아졌다.
어떨 때는 단순한 인정이기도 했지만, ‘네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듯한 인정도 있었다.
내 뒤에 대체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그나마 기대해볼 만한 사람 이어서인 때도 있었다.
그냥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인정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너밖에 없다. 다음번에도 잘해줄 거라 생각해.’ 같은 말들은 점점 나를 옥죄어왔다.
난 잘하지 못했다. 단지 때가 맞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내 능력은 내가 잘 알았다. 그렇게 다음을 기대할 만한 능력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내게 맡겨진 일을 두고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나와 내가 만든 결과물이 아닌,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꾸준히 보통 이상의 결과를 내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단순히 인정받는 사실만으로 나는 나를 몰아붙여왔다.
단순한 인정이 아닌 모종의 기대가 섞인 인정은 더욱더 나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인정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내 능력이 부족함을 들킨다면,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모종의 기대가 섞인 인정을 보낸 이들에게 내 능력의 부족함을 들킨다면 그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나를 원망하고, 허물어트리고 비아냥댈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하던 이들의 미소는 어느새 일그러진 경멸과 호통으로 바뀔 것이다.
‘기대한 최소한도 못하는 한심한 놈’으로 비칠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한 채 완전히 지쳐있는 나를 발견하는 횟수가 늘었다.
거울 속에는 생기 없는 눈과 처진 다크서클만큼이나 노력이 아닌 당장 어디선가 하루 이틀 잠만 자고 싶은 소망만 가지는 내가 있었다.
인정해주시는 분들에게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 인정 뒤에 숨겨진 기대를 따라갈 수 없어진 것. 그뿐이었다.
어딘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인정도, 기대도 없이 그냥 내 하고 싶은 것만 소박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강의실에서 강의가 끝나고 부탁받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자랑스럽게 어디 돈 받고 팔 실력도 아니었지만, 어떻게 알게 된 분의 의뢰로 그려야만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내 그림을 보고 얘기했다.
‘그림이 예뻐요.’
그림을 의뢰받은 이후 몇 차례 가져다주었지만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역시 기대했던 만큼 해주신다.’, ‘다음에는 더 잘 부탁드린다.’, ‘믿고 맡긴다.’
의뢰로 그림을 주면서 듣던 말이다. 내 그림이 순수하게 좋다는 평가가 아닌 원했던 만큼은 해주는 나에 대한 기대. 그에 대한 인정뿐이었다.
순수하게 그림이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은 참 오랜만이었다.
동기였던 그 아이는 그 말을 하기 전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학회에서 노래를 같이 하자고 한 아이였다.
내가 노래를 하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냥, 나하고 노래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같이 하면 재밌지 않겠냐고.
내가 없다고 안 돌아가는 학회도 아니었고, 이미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학회라 사람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전까지 노래를 같이하자는 얘기는 파트에 사람이 없어서, 아니면 늘 해왔으니까 이번에도 잘하겠지 하는 식의 얘기가 많았다.
부족함 없이 내가 없어도 되는 곳에서 노래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유가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던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그 아이와 다른 동기 몇몇과 학회 합창제에서 잘하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한 때를 보냈다.
나에게 주어진 그 어떤 기대도 없었고, 당연히 ‘역시 네 덕분이다.’하는 인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합창제가 내가 무대에서 노래했던 많은 경험 중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나중에 그 아이에게 이유가 진짜 그것뿐이냐고 물으니 이렇게 얘기했다.
‘목소리가 노래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목소리였으니까. 노래를 듣고 싶어서.’
내 노래를 그냥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 날 처음 생겼다.
내 파트가 필요하다느니, 내 경험을 살려달라느니가 아닌 그냥 내 노래가 좋아서 듣고 싶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합창제가 끝난 그 날. 우리는 늦은 밤 코엑스에서 길을 잃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저 행복했다.
나도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인정해주지 않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