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입 닫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서.

by 아인

험담은 싫다.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다.

듣고 있으면 맞장구쳐야 하는 그 분위기가 싫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의 나쁜 점을 보게 되고 - 그게 정확한 사실인지도 모르고-

'맞아, 그 사람은 여러모로 좀 그래'라고 맞장구치며 동의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도 싫다.


내가 뭐 대단한 인격자라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입을 맞추어 한 사람의 나쁜 점을 들추어내면 그걸로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내가 그 입방아 위에 오를 것이고, 내가 하지 않은 것까지 내게 강제로 씌워질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내 결백을 증명할 시간도 없이 사람들이 뒤에서 뿌리는 먹물에 범벅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으로도 싫다.


그러면 나는 험담을 하지 않느냐. 당연하게도 아니다.

나는 결백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수없이도 누군가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데 일조했다.

당장 저번 주만 해도 나는 회사 사람들과 다른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었다.

‘정말 그래요?’라며 적당하게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말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다.

‘정말 그래요?’하고 맞장구를 치다 보면 ‘맞아 그 사람은 정말 그래’라고 말하고 있게 되고, 어느샌가 다른 때면 생각도 나지 않을 험담의 주인공에 대한 서운한 점을 찾아낸다.

결국 나에게 어떤 나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도 험담이라는 수십 분을 거치고 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어느샌가 나에게 미소를 짓던 사람이 참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그 시간이 너무 싫다.

그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싫다. 결국 나도 뭔가 당한 것처럼 말하는 나까지 싫어진다.


그렇게 싫다면 입을 싹 닫으면 될 것이다. 그게 가장 편하고 당연한 방법이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하고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하며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 자리가 말 한마디 안 하는, 주제를 억지로 돌리려 하는 나로 인해 어색해지고, 내가 곧 이 안건에 대해 부외자임을 인식시키지만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부외자이면서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 회사에서 얘기하는 분위기에 다른 곳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 나는 스파이 취급을 받는다.

우리 편도 아니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느냐는 비꼼이 한 두 마디 섞여 대화를 탄다.

이윽고 자신이 정말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아예 싫어하는 건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약삭빠른’ 누군가가 참 싫다고 얘기한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곧 험담의 과녁은 나로 변경될 것이다. 아마 내가 가장 싫은 사람으로 꼽히며 새로운 공격이 시작되겠지.


어느샌가 내게 과녁이 돌아오는 것을 피하고 싶어 나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도 어정쩡한데 더 어정쩡하기 싫은 것일지, 어정쩡하게 소통을 따라 하다 나온 결과인지.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웃고 어색하게 끄덕이게 된다.

마음 한가운데에는 공허한 맞장구와 험담이 공명해 죄책감이 자란다.

‘차라리 나쁠 거면 아예 나쁜 놈이 될 것이지, 왜 순교자가 되는 척 숭고하게 구는 걸까.’

수없이 나를 비판하는 소리가 몸을 울린다. 내가 할 말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혐오하는 짓을, 누가 봐도 나쁜 짓을 내가 한 것이니까.


그저 대화에 끼고 싶었을 뿐인데, 오늘도 다시 난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말았다.

여러 화법 책을 보고, TV에 나오는 여러 연사들과 MC들의 말 기술을 보아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저 사람들도 동료들의 험담에 대처를 하겠지. 분명 나처럼 무책임하게 험담에 참여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어색하게 입을 다무는 것과 여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만 있는데, 언제나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해오는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고민을 하는 것조차 참 싫다. 결국 내가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한 채 덩그러니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어서 일어난 일인 텐데,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고 있잖아.

말 하나를 하는 게 여전히 어색한 내가 참 우습다.


가장 우스운 건 이런 고민을 하면서 결국 또 내일이면 어색하게 험담에 참여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무리에 섞여있는 내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험담을 하면서 한켠에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부터 결국은 철저하게 바깥사람인 것이다.

나쁜놈도 좋은놈도, 이 편도 저 편도 되지 못한 채 험담 가운데 앵무새처럼 험담의 뒷부분만 따라할 것이다.

나쁜짓도 참 어정쩡하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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