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꿈을 꾸게 된 걸까.
언제부터 높은 곳을 보게 된 걸까.
언제부터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걸까.
비디오에 나온 머리가 희끗한 지휘자의 흔들리는 턱시도 자락을 본 순간이었을까.
엄마를 따라 간 미술관에서 바라본 르누아르의 붓터치를 본 순간이었을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대서사시를 우연히 도서관 책장에서 꺼내게 된 순간이었을까.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는 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순간순간은 내게 불꽃을 지펴주는 부싯깃이었지, 내게 장작을 넣어준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의 없어지지 않는 꿈을 향한 장작은 언제부터 쌓여온 것일까.
'어떻게 그걸 했니?'
어머니는 아직도 나의 어릴 적을 말씀하시면서 말씀하시곤 한다.
나는 책을 거꾸로 들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의 지휘법을 통으로 기억해 따라 했다고 한다.
마치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했다고 한다.
천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분명히 뛰어난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 나도 내가 그럴 줄 알았던 것 같다.
'잘한다'라는 말이 좋았고, '어떻게 했냐'며 놀라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행복했다.
나의 작은 재능은 내 작은 세상을 크게 놀라게 했고,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보고 놀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자랄수록 빠르게 팽창해갔다.
내 작은 세상은 온데간데없었고, '어떻게 했어?'라는 감탄은 곧 '왜 아직도 그걸 못해'라는 나무람이 되었다.
세상이 팽창해가는 속도에 맞춰 나는 빠르게 범재가 되어갔다. 어디나 있는 그냥 그런 사람.
밀려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일까. 그럼에도 난 아직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능력에 대한 자만은 아니었다. 그냥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높은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고 나서는 세계가 팽창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파도에 쓸려가는 나룻배처럼, 라인이 끊어진 채 우주에 표류한 우주비행사처럼.
이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세계가 팽창한 자리에는 어둑한 현실이 넘실거리며 차올랐다.
어떤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현실을 맞닥뜨린 나는 허우적대며 겨우 하루를 연명한다.
보통, 현실과 타협하고 오늘 가장 행복한 것을 찾을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이 목에 차오르면서도 나는 아직도 저 멀리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다.
아직도 버리지 않은 목표가 있다.
좋은 소설을 한 편만 써보고 싶다. 잔잔하게 작은 소극장에서 관객을 맞고 싶다.
그런 작은 목표처럼 보이는 그 뒤에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아직도 계속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올 한 해도 계획만 수정하며 겨우 하루를 살아가며 버텼으면서 다시 내년을 계획한다.
올해로 몇 번째 계획의 수정일까. 잘 모르겠다.
포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내 또래의 아이들이 이 글을 쓰는 내내 TV에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쟤들은 나하고는 다르구나, 부럽다 라며 그냥 인정하고 바라보면 좋을 텐데.
아직도 쟤들만큼 나도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저히 포기가 안된다. 꿈을 버릴 수가 없다.
정말 어릴 적 박수 때문일까?
이제는 그것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꿈과 커지는 세계 사이에 표류했다.
내가 꿈을 꾼다는 사실, 꿈을 포기한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만 어렴풋 느끼고 있다.
결국 오늘도 꿈을 꾼다. 글을 쓴다.
내 옆사람도 놀라게 하지 못할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