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오는 주제가 있다.
'정말 쓸모없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능력' 같은 주제 말이다.
주머니에 매일 조금의 잔돈이 생긴다던가,
절대 신발끈이 풀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런 사소한 특별함 말이다.
이상하게 현실적이지만 불가능한 일이라서 '시간을 멈춘다'던가, '평생 살이 안 찐다던가' 하는 이야기보다 상상하는 게 더 쉽고 이야기가 더 잘 풀린다.
그리고 나는 왠지 그런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아마 누군가는 다 가지고 있을 법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나랑 같은 사람은 없다.
정말 아주 작은 특별함. 가져서 뭐해 싶은 그런 특별함이다.
그중 하나는 속독이다.
속독을 할 수 있다는 책은 많이 봤다. 속독을 가르치는 학원도 한 때 유행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속독을 하는 사람은 적게 봤고, 그중 속독을 나보다 빨리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많은 책을 쉬지 않고 읽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두껍기로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는 천천히 읽어도 하루면 읽을 수 있다.
내 속독이 더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속독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속독을 배우려 한 적 없이 그냥 어느 순간 생긴 거라 당연한 거라면 당연하다.
속독이라 하면 문단 전체를 확인하며 전체적인 주제를 파악하고,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읽고 나머지 중요도가 낮은 언어들은 '통과시키는 듯' 읽는 방법이 유명하다.
수능 독해 지문, 영어 지문을 읽을 때 많이 배우는 그것 말이다. (한 때 내가 하는 것이 속독인가 싶어 찾아보았을 때, 찾았던 방법이다. 지금의 속독이라는 개념과는 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주제를 처음에 찾으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릴 뿐이다. 그게 너무 빨라 다른 이가 보기에는 문단을 통으로 읽는 듯 보인다.
왜 이렇게 빠르게 읽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설명할 수도 없다.
당연히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있던 거니까.
그리고 그냥 '책을 많이 읽으면' 다들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능을 치기 전까지 이 '정말 빠르게 읽는 속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억지로 빨리 읽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한 번 더 읽고, 기술에 파묻혀 문제를 틀릴 때 나는 그냥 읽으면 됐다.
국어의 경우 모의고사 때는 부담이 없으니 15분 정도의 시간은 남았고, 영어 시간은 지문을 3회에서 4회는 읽을 시간이 있었다.
혼자서 학습을 하기에는 아주 작지만 참 좋은 능력이었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 이 능력은 점점 나태한 사람, 혹은 무능한 사람으로 비치는 능력이 됐다.
논술 과외를 몇 차례인가 맡으면서 내가 가진 속독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술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많은 책을 읽고 넓은 식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빨리 읽도록 지도했다. 많이 읽다 보면 나만큼은 아니라도 빠르게 읽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수백 권을 읽혀봤자 아이들의 책 읽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속도에 매몰되어 중요한 내용을 전부 잊어버리곤 했다.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도 드물었다.
결론적으로 책을 잘 읽지도 빨리 읽지도 못하는 이전보다 안 좋은 상태의 아이들이 되었다.
완전한 실패였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업무를 할 때도 나는 오해를 많이 사게 됐다.
분명히 매뉴얼을 세 번, 네 번 읽었다. 단순 텍스트 업무 등도 서너 번 다시 오탈자를 확인했다.
나는 자신 있었다. 이미 숙지할 만큼 숙지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상사들은 숙지하는 것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들여 숙지하는 모습에 만족을 찾았다.
그런 그들에게 남들 절반이 안 되는 시간에 책을 읽고 남는 시간에 다른 업무를 하는 나는 꼴 보기 싫은 모습으로 보였다.
오히려 무능하고, 잰 채하며, 남들 하는 만큼 안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일쑤였다.
참 작고 능력이라고 하기도 힘든 능력인데,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이 능력은 오히려 나를 멋대로 재단하는 능력이 되었다.
'대단하다'라는 말은 듣지 못해도 괜찮았는데, 오히려 '왜 그러냐'라는 말이 되어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보며 다른 짓을 시간을 때우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작은 능력으로 핀잔을 듣지 않아도 됐다.
아주 작은 특별함조차 없애면서 안도하는 내가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보통의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는데.
내 작은 특별함이 미웠던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