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얘기를 하자.
얼마 전 회사 워크숍에 다녀왔다.
대표와 팀장들이 운전부터 여러 일을 도맡아 하며 즐거운 워크숍을 만들어주었다.
고기를 굽는 것 역시 대표와 팀장들이 다른 사원들은 불에 손도 못 대게 하며 식사를 대접해주었다.
그렇다고 불편한 분위기도 아닌 아주 자연스럽고 편한 분위기의 식사였다.
물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선배들의 이야기고, 한창 막내인 나는 당연하게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날도 익은 고기가 나오면 다시 잘 쌈을 싸서 팀장과 대표의 입에 넣어주고, 술잔이 빌 때마다 새롭게 술을 섞고, 더러워진 상은 정리하고. 실로 막내답게 부산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이들은 날 기특하게 여기는 듯했다. 뒤에서 등을 쳐주기도 하고 계속 나와 엮은 화제를 던지며 내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생각해줬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시간, 즐거운 술자리가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눈치를 볼뿐, 제대로 이야기에 끼지는 못했다.
나를 위해 만들어주는 대화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 에피소드를 생각해야만 할 것 같게 느껴졌고,
간간히 나오는 사업적 얘기는 내가 듣고 메모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동료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나에게 큰 의미를 요구하는 듯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부산하게 일을 만들어하며 내가 무언가 쉬지 않고 빠릿빠릿하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말의 화살이 돌아오지 않도록.
4시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8시가 될 즈음. 나는 눈치를 보다 탈진했다.
새롭게 술자리를 시작하자며 마트에서 장을 봐오는 팀장의 차를 기다려 짐을 옮긴 후, 더 이상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다.
조금씩 얻어먹은 술은 들어갈수록 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고, 다들 거나하게 취해 도울 일도 없어진 채 이야기 꽃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졌다. 어떤 이야기부터 신경을 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별 것 아닌 이유를 들어 몇 번 펜션 밖을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다가 2층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깨우지 못하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참 이해 못할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막내가 당연히 긴장하는 것도, 그런 자리가 눈치 보이는 것도 당연한 건데, 왜 과하게 생각하고 탈진하는 걸까.
내가 하는 사회생활은 사회생활을 흉내 낸 것이라 그렇다.
그저 다른 이들이 하니까,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러니 내 사회생활의 제1의 목적은 나를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정보를 얻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지, 사회에서 만난 이들과 진심으로 유대감을 가지고, 좋은 추억을 가지려는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
사회에서 다시 따돌림당하기 싫어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는 것이다. 동시에 공격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과 말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약점'이 될 것을 몸으로 느껴왔으니까. 너무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해보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눈치를 보지만 어울릴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신경을 쓰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만다.
결국 뒤돌아서면 나에게 남는 것은 '힘들었다'라는 기억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애매하게 흉내를 내며 '나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이면서 공격당하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그러면 나도 눈치는 적당히 보며 서로 즐겁게 어울릴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잔뜩 지친 채 얼굴을 파묻었다.
같은 층 구석에 일찌감치 자기 먹을 식사만 먹고 올라온 선배가 있었다.
늘 회사에서도 자기 할 일만을 충실히 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일절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올라온 것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배가 챙기세요.'라고 내가 배구를 건네준 것 말고는.
문득 그가 부러웠다.
적어도 그는 나처럼 억지로 사회생활을 흉내 내지는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도 없고, 나보다 눈치는 적게 보겠지. 억지로 웃으며 전전긍긍하지도 않을 테고.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어떤 사회생활을 해온 걸까.
어떤 의미로는 동질감을 느끼고 어떤 의미로는 세간이 보기에 '인기 없는' 그 선배가 참 부러웠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것도 어쩌면 내가 공격당할 빌미가 될까 봐.
섞일 수 있던, 아예 섞이지 않던 둘 중 하나만 확실히 하고 싶은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나를 찾는 1층의 소리가 멀어졌다, 내가 빠진 이유에 대한 이런저런 가설이 돌았다.
아, 결국 난 다시 공격당할 빌미를 만들었나 보다. 더 열심히 어울렸어야 했는데.
잠결에도 눈치를 보고 말았다.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밤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