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돈의 시대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의 시대다.
부동산은 눈을 감았다가 뜨면 두 배 세 배가 그냥 뛰어올라있고 청년들은 주식 시장에 뛰어들지 못해 몸이 달았다.
‘뭐가 될래’라는 대답에 ‘돈을 많이 벌래요’ 가 당연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돈이 싫다라던가, 돈은 빼고 꿈을 좇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매일매일 가계부를 봐도 맘이 놓이지 않고, 매일 투자의 동향을 봐도 공부할게 끊이지 않는 평범하게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하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평생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수단이 뭐가 돼도 상관없고, 내가 꾸는 꿈의 종착점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가치를 매기는 저울이 있다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돈이 더 무겁게 달릴 것이다.
돈을 벌 기회가 있다면 다른 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그게 그렇게 원하던 내 꿈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
솔직하게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과 있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여유롭지는 못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힘들더라도 자식들은 부족함 없게 해 주려고 노력하셨지만, 어린 내 눈에도 보일만큼 여유롭지 못한 나날이었다.
마트에서 먹고 싶은 것을 바라보면 사주려고 하실 것을 알고 억지로 눈을 피하며 먹고 싶지 않다 하는 내가 몹시 속상했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실 만큼 나는 우리 가족의 상황을 잘 알았다.
버스비 600원 정도를 아껴보겠다고 왕복 6킬로미터 정도를 중학교 시절 걸어 다녀도 봤고,
고등학교 때는 밥값을 직접 받아 급식을 신청하지 않고 매 끼니를 편의점에서 때우기도 했다.
없는 살림에 재수를 할 때는 매일 점심 불닭볶음면 하나로 버텨도 봤다. 2010년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부모님이 싫다거나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사는 분들이었고, 난 그 뒷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 때문에 가족 전체가 힘든 것은 좀 속상했지만, 싫거나 부끄러운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두 분은 내 자랑이었다.
늘 안되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자신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여주는 분들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두 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와 친해진 이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듣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부모님의 자랑일만큼 난 두 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번듯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내 마음 깊숙이 뿌리내렸다.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잘 자라고 있어서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부모님이 내 자랑이었듯, 날이 갈수록 키가 커지고 조용히 자신이 할 것을 하는 나는 두 분의 자랑이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 기대와 자랑은 여유롭지 않은 가정환경과 맞물려 ‘나만큼은 번듯하게 잘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되었다.
생각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는 단단해져 그 생각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해선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변모했다.
사춘기가 조금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나만큼은 잘 살아야 해, 나만큼은 성공해야 해, 나만큼은 돈이 부족하지 말아야 해.
그 생각은 내 꿈에 스스로 제동을 거는 큰 추가 되었다.
그야 타고난 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예능적인 면을 물려받았고,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도, 지금까지 꿈꾸는 것도 예술을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동시에, 두 분이 보여준 삶은 멋있지만, 처절하게 힘든 삶임을 알았기에 꿈을 향해 달리다가도 금세 멈춰 섰다.
‘예술을 할 거면 돈이 되는 예술을 해야 돼.’, ‘예술은 내가 살 수 있게 된 뒤에 해도 돼.’
다른 많은 이들처럼 방 한 칸에 박혀 하고 싶은 것에 모든 힘을 다하려다가도 어느 순간 ‘번듯하게 살아야 해’라는 생각이 내 고삐를 잡아챘다.
어쨌든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번듯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을 잘 벌며 살아야 했다.
군생활도 이왕 할 거면 가장 돈을 벌 수 있는 학군 장교를 선택했다.
전역 후에도 쉴 생각은 하지 않고 바로 취직을 했다. 내가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는 미지의 기업이었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합리적인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큼 번듯하게 잘 살았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번듯하게 살아야 돼’라는 명목은 곧 뭘 할 때든 저울에 돈을 올려놓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내 개인적인 소망은 나이가 들수록 쪼그라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가사를 쓰는 시간도, 글을 쓰는 시간도.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누군가는 지금 주식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요 근래 부동산 투자를 적은 돈이라도 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 UI라도 배워야 하는데’
‘3개 국어도 모자라다는데 러시아어를 더 잘해야 하는데’
정작 어느 하나 그렇게 관심이 없는 일이지만, 돈을 벌 수 있다니까. 더 번듯하게 살 수 있다니까 홀린 듯 투자 책, 외국어 책, 자격증 책을 산다.
내가 사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내가 보고 작법을 배워보고 싶은 한 소설가의 소설인데, 내 꿈과는 무관하게 내가 움직였다.
‘꿈은 돈을 벌고 나서 할 수 있잖아’ 그렇게 되뇌었다.
먼저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었다.
꿈보다 돈을 벌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좀 더 나을 것을 찾았다.
그리고 남은 건 꿈도 현실도 어정쩡해진 나였다.
꿈꾸던, 하고 싶었던 것들에는 시간을 들일지 못해 초라하게 쪼글어들었다.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으니 공부하던 것들은 머릿속에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사회생활에서도 계속해서 겉돌게만 되고 제대로 된 아이디어 하나 내지 못하고 있다.
번듯하게,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했던 일들은 어느 하나 나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냥 오늘도 일에 절어 눈 밑이 까매진 회사원만 남았다.
그림도 글도 음악도 다 조금씩 어정쩡하게 하고,
커리어도 그냥 발에 채이는 수준의 전역장교 출신의 문과.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사람도 아닌 딱 그 정도의 회사원이 되었다.
번듯하게 살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면서 내 꿈을 이루고 싶었다.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내 꿈은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과욕이었나 보다.
내 꿈은 온데간데없고, 번듯하지도 않은. 그저 조금 있어 보이는 척 포장된 채 푸념하는 피곤한 회사원만 남았다.
돌아가는 길에 로또나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