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입이 조금 걸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나는 심리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부모님과의 상의하는 동안 정신건강의학을 하는 것으로 변해 어쩌다 보니 이과에 가게 되었고, 2학년 때 선생님을 만났다.
이과반의 국어 선생님이었으니, 수업시간에도 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기보단 주로 공부 스트레스에 지친 아이들을 살짝 거친 농담으로 웃게 하는 선생님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이었던 선생님은 롯데가 진 다음날이면 구수한 욕을 하며 씩씩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거친 듯하면서도 본질은 국어 선생님다운 섬세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 툭툭 던지는 말이 본질을 꿰뚫는 선생님이었다.
대청소가 있는 날이었다. 다들 이곳저곳을 맡아 시끌벅적하게 먼지를 걷어냈다.
나는 2층 창문에 매달려 바깥 창을 연신 닦았다.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굳이 나를 말리는 사람도 없고 청소를 해도 티도 안나는 빗자루질은 하기 싫었다.
목표로 했던 반의 바깥 창을 모두 닦고 나니 교실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에 나 혼자 매달려있던 탓에 옷이 석탄이라도 문댄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몸을 털기 위해 화장실로 가던 길에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은 날 잠시 바라보더니 언제나처럼 툭 한마대를 던지고 반으로 들어가셨다.
“너는 너무 세상이 달라서 힘들 거야.”
무슨 의미로 던지신 말인지 모르지만 나를 남이 규정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세상이 다르다’. 이후로 살면서 가끔 비슷한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를 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도 자주 들었다.
내가 다르다고 듣는 것은 예전부터 늘 바라 왔던 일이니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보통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동반되었다.
도통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의 표정과 몸짓으로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보면 나 혼자 유리관 속에 갇혀있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세상과는 격리된 아예 다른 존재로 태어났다는 기분이었다.
이해받지 못할 기인이 된 기분은 모순적으로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 무엇이 그렇게 달랐던 걸까.
왜 힘들 거라고 한 걸까. 선생님은 왜 그런 말을 하신 걸까.
어느새 어디선가 드문드문 아저씨라고 불려질 나이에 가까워지고 나서 문득 알게 되었다.
나랑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지 않구나.
맨날 밥 벌어먹기 쉽지 않다면서 꿈을 바라보며 자신을 괴롭히고자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 동시에 특별해지고 싶어서 온갖 행동을 하는 사람.
작은 의미라도 있었다면 힘들었던 행동을 좋았던 일이라 말하며 소중하게 끌어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보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보통 사람들보단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태어났다면 뭔가 의미를 찾고, 의미를 남기고 싶어 할 줄 알았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루 이틀 월급을 받다 보니, 태어난 김에 사는 것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많았고,
꿈보다는 눈 앞의 사람과의 행복이 더 중요한 이들이 더 많았다.
매일 점심 수다로 꽃을 피우며 힘들었던 일을 불평하며 저녁을 보내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보는 세상이 달랐던 것이다.
그냥 달랐던 거다.
세상의 과반수는 나와는 조금의 시각도 공유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이제야 그 사실을 좀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힘든 듯 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보는 세상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태어난 카테고리, 종이 다른 수준인 것과 비슷하다.
내가 보는 세상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태어났으니까.
반대로 내가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그들에게 선명하게 보였겠지.
그렇다면, 내가 늘 되뇌던 더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던 것이다.
이미 다른 존재로 태어났으니 더 이상 특별해질 수도, 특별한 것을 인정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너는 너무 세상이 달라서 힘들 거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저 위험한 곳에서 창문을 투명하게 만들려고 하는 제자를 보며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과 같은 ‘세상을 보는 게 다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선생님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힘든 ‘다른 사람’이었을까.
아마 전자였을 것 같다. 내가 보는 방향이 어디인지 알 것 같으셨으니. 본인도 어떤 의미에선 ‘다른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학교에 계실지 모르지만 문득 찾아뵙고 싶다. 그리고 여쭙고 싶다.
선생님이 볼 때, 나는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어 했는지.
지금은 고등학생 때 내가 보고 있던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보는 방향이 선생님이 보기엔 괜찮았는지.
그냥 ‘보는 세상이 다르다.’가 아닌 나를 공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