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중에 뭐할 거야?’
간혹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이에 자주 듣게 되는 흔한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참 힘들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기대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다.
‘커리어를 쌓아서 어떤 회사를 노리고 있다.’
‘돈을 좀 모아서 이민을 준비한다.’
‘요즘 어떤 지역이 뜬다는데 재테크를 해서 조금이라도 사보려고 한다.’
‘무슨 가게를 내보고 싶다.’
구체적이고 누구나 한 번씩은 상상해볼 만한 미래다.
그런 대답을 사람들은 원한다. 자기도 공감할 수 있고, 다시 얘기를 이어갈 수 있는 대답.
‘야, 내가 알기론 요즘은 거기 말고 다른 곳이 좋다더라.’
그런 현실적인 추세를 곁들인 미래 이야기 말이다.
‘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
라고 내가 대답을 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저 대답을 한다면 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버벅거리며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하거나, 어색하게 대화가 마무리된다.
이후로 이런 상황을 겪은 이들은 다시 나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 한다.
전혀 생각 안 해본 대답, 이상한 혼자만의 미래계획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여러 번 그런 상황을 겪고 나서 이제 나는 내가 그리는 미래를 얘기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한다.
‘빨리 돈이나 모아서 어디 집이나 사고 싶어요.’
‘나중에 그냥, 책이나 몇 권 써보려고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부동산은 어디가 좋다던가, 카카오페이지의 전망이라던가 요즘 뜨는 웹소설이라던가 하는 얘기를 노래하듯 쏟아낸다.
잘 된 일이다. 저 사람들은 나랑 보는 방향이 다르니까.
저런 얘기를 하는 게 훨씬 기운이 날 테니까.
하지만 역시 억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저들이 하는 미래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돈 버는 것은 물론 좋아하지만, 내 미래가 돈을 어떻게 벌고, 어디에 땅을 사고 일은 언제 퇴직하고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그건 단지 미래를 향한 과정일 뿐이다. 그 자체가 미래가 될 수 없다.
어디에 산다던가, 이민을 간다던가 하는 것도 그렇다. 다른 환경에서 살면 거기서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텐데,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게 많은 이들에게는 미래의 모든 것이 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미래’라며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돈은 그냥 누구나 벌고 싶고, 누구나 좀 한적한 곳에 살고 싶고, 지겨운 회사는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은 것이지 않은가.
그건 나만의 미래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원하니 나는 오늘도 참아가며 그들의 장단에 맞춰준다.
‘그럼요, 요즘 4기 신도시가 어디라던데...’
‘요즘 카카오 페이지에서 떴으면 다 뜬 거죠 뭐. 저도 언젠가 써보고 싶네요.’
그렇게 언젠가 이뤄지면 좋고 아닐 거면 말고 정도의 이야기나 하며 얼른 그 얘기가 끝나길 바란다.
그게 억울한 거다. 왜 나는 내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못 찾는 걸까.
나는 사람들의 장단에 맞추어 내 이야기를 열 번이면 열 번, 백번이면 백 번, 바꾸어 이야기하는데 왜 한 번의 내 진짜 미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도 사람들은 당황해하며 대화를 끊을까.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그냥 조금 내 대화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 많이 어려운 걸까?
그 정도로 내가 보는 시야가 많이 다른 걸까? 사람으로서 공감하기 힘들 정도인 걸까?
나 혼자 ‘어린 왕자’인 걸까?
나는 ‘내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얘기를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아 언제까지고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를 해서 베스트에 올라보고 싶어요. 이왕이면 드라마도 좋고요’라고 얘기해야 하는 걸까?
‘그것 참 멋진 꿈이구나!’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언제까지고 내 진짜 이야기를 숨기고 대화해야 하는 걸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잘 아는 말이다.
서로가 사회를 이루어 공감하고 공감받으며 유대를 쌓아가는 동물이 사람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기에 나는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근데 이제 좀 많이 질린다.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고 공감도 안 가는 이야기를 하며 ‘나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도 사회적 동물로서 공감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사회에게 공감을 해준 만큼은 공감받을 만하지 않은가.
언제까지고 B612에서 내 양을 혼자 마음에 품고 있을 수는 없다.
나도 내가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이왕이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고 싶다.
아직 이룬 것 하나 없이 어정쩡하게 살아가지만 지금은 그게 내가 꿈꾸는 미래다.
내가 공감받고 싶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