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주 두꺼운 책을 본 적이 있다.
성경책보다 두껍고 무거운 책. 그 책에는 강렬한 사자의 얼굴이 표지로 새겨져 있었다.
‘나니아 연대기’. 어떤 꾸밈도 없는 역사서 같은 제목이었다.
책 속에는 일곱 가지 정도의 굵직한 서사시가 독특한 세계관과 기독교적 은유 위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고, 인물들은 옆에서 움직일 듯 섬세하게 그려졌다.
도서관에서 처음 그 무거운 책을 본 순간 너무 큰 크기에 매료되어 빌려왔지만, 책장을 덮게 된 이후에는 책 속 세상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니아의 창조를 보고, 옷장 너머 나니아로 간 아이들의 이야기, 아슬란의 죽음과 부활, 수많은 전쟁들과 최후의 대전쟁.
토요일 아침을 먹고 읽기 시작한 책은 저녁놀에 그림자가 늘어질 즈음 책을 다 읽었고, 마치 내가 나니아에 다녀온 것 같은 비현실감을 느꼈다.
나니아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책을 보고 몇 년쯤 있었을까, 영화관에서 그 사자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에서 2편에 해당하는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영화였다.
내가 지금껏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가장 마음 깊이 남은 영화였다.
옷장을 넘어서 있는 판타지 세계, 눈 속에서 형제를 배신하고 먹는 터키쉬 딜라이트. 햇빛에 불타는 듯 흔들리는 사자 ‘아슬란’의 모습.
‘나니아 연대기’가 창조한 세상이 다시금 내 마음에서 살아났다. 책 속 세계가 색깔이 입혀져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책을 볼 때 잠시 느꼈던 그 비현실적인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이후에도 ‘나니아 연대기’ 영화의 후속작은 계속 나왔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처럼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매력적인 세계를 눈 앞에서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군마 소리가 영화관을 가득 채웠고, 철썩이는 파도 속 항해에서는 활자 속 아이들의 막막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 소식이 없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판권을 사서 다시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잊었던 중요한 세계가 다가오는 듯한 행복한 두근거림을 받았다.
마치, 다시 해가 질 때까지 책 속 나니아에 빠졌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나의 큰 세계가 거의 10년에 걸친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큰 세계는 만들어진 지 50년이 넘은 소설이었다.
50년 전 ‘나니아 연대기’가 만든 세상이 이렇게 커질지 작가는 상상했을까?
자신이 죽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세계에 홀리듯 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다시 그 세계를 확장시키리라고 생각했을까?
작가가 어떻게 상상했더라도 그 끊임없는 세상의 확장 -작가의 손을 떠나서도 계속 커지는- 은 내가 지금도 ‘나니아 연대기’를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 한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가 계속해서 확장되는 작품들을 나는 이후로도 중독된 듯 찾아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상상의 나래로 끝나지 않고 바통을 이어받듯 인물들은 바뀔지언정 세계가 가진 매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눈부시게 빛났다.
팬들도 펼쳐진 세계에서 각자의 상상을 펼쳤고, 어떨 때는 팬들이 그 세계의 창작자가 되었다.
어릴 적 열광했던 디지몬, 포켓몬도 그랬고 반지의 제왕과 셜록 홈즈도 여전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마블코믹스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다.
한 편으로는 끝내기 아쉬운,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들이 너무 많다. 그런 세계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100일을 더 얘기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 행복하게 놀다 오기 좋은 세계, 세계의 한 켠에서 자신만의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를 나는 어릴 적 만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다. 내가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