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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Dec 03. 2020

33. 상상이 커진다. 어둡게 커진다.

상상력이 좋다는 것은 장점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크게 상처 입히기도 한다.

마치 눈덩이 같아서 행복한 일을 겪으면 끝없이 행복한 상상을 하고, 성공을 하면 끝없이 성공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반대로 실패를 맛보면 마치 끌어들여지는 것처럼 어떤 성공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상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나약한지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긍정적인 상상을 하는 것의 서너 배는 빠르게 빠져든다.

행복한 상상은 찰나 잠시 힘든 것을 잊게 하는 정도에 멈추지만, 아무리 행복한 상황에서도 슬픈 상상은 사람을 몇 날 며칠을 괴롭게 만든다.

성공의 경험을 대여섯 번 해 겨우 한 두 번의 긍정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면, 단 한 번 실패의 언저리에 가기만 해도 매일 밤 실패의 두려움에 가슴을 부여잡고 끙끙대게 된다.


이상하게 가정에서 하는 일이 조금씩 수틀려 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분명히 잘 될 일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상황이 안 좋아지는 일이 많았다. 금빛 미래를 꿈꾸다가도 혹독한 현실을 마주 볼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이런 나날은 내 상상력을 나쁜 쪽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다시는 좋아지지 않을지 몰라.’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어쩌면 뭔가 실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최악만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버지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가 영영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두려워 몇 번씩 전화를 하며 문 앞에서 기다렸었다.

물건을 몇 번 잃어버리곤 혹시 물건이 흔들리다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옷과 가방을 두 번 세 번 뒤지는 것은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습관이다.

몸이 아프다 보면 정말 못 이길 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연신 아픈 몸에도 책을 펼친 적도 부지기수였다.

피곤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자신이 자처했다. 막을 수 없는 상상력이 나에게 그런 생활을 선물했다.


부정적인 상상과 함께 피곤한 동거를 하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어느샌가 마음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상상으로 들어차게 된다.

‘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어.’

‘저 사람이 나를 잘 봐줄 리가 없어.’

‘이 돈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

점점 ‘몰라’는 ‘분명 그럴 거야’로 바뀌게 된다. 상상은 점점 믿음이 되어간다. 그 확신이 내 생활을 더욱더 통제한다.


걱정이 낳은 사소한 습관들이 어느 순간부터 타인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니 언제나 누구도 믿지 않고 냉소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언제 실패할지 모르니 언제라도 일에서 빠질 수 있게 준비하고 더욱 소극적으로 변해져 갔다.

언제라도 돈이 없어질지 모르니 누구에게도 베풀지 않고 돈이 나가는 일이면 가시 돋친 반응을 보였다.


누가 이런 사람을 좋아하겠나. 누가 이런 사람을 호감을 가지며 대하겠나.

내 상상은 점점 부정적으로, 그 부정적인 상상은 확신으로. 그 확신이 다시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어갔다.

뭔가 어떤 것도 잘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이 덩그러니, 한무더기의 어두운 상상력 가운데서 태어났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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