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자막 번역 질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end game’을 오역한 것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의 오역이 있었는데,
그중 빌런인 타노스가 아이언맨에게 자신과 같은 ‘지식의 저주’에 걸려있다는 부분에도 오역이 있다고 한창 시끄러웠다.
그 오역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지식의 저주’라는 개념이 다시 한번 새롭게 와 닿았다.
지식의 저주 (The curse of knowledge),
다른 사람이 다 자신만큼의 지식을 알 것이라 생각해 일어나는 인식의 오류.
‘당연히 아는 것’이라는 인식이 소통의 부재나 갈등을 낳는다.
윤택한 삶을 위한 지식이 역으로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만다.
문득 나도 지식의 저주에 걸려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나는 지식의 저주에 걸려도 이해가 될 석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얄팍한 지식만이 머릿속에 밀물 썰물로 기억되고 망각되는 조금 더 나쁜 의미의 ‘지식의 저주’.
내가 가진 지식의 저주가 있다면 아주 어쭙잖은 지식의 저주다.
예전부터 궁금한 것을 머릿속에 때려 넣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했다.
클래식을 듣게 된다면, 그 곡의 역사, 작곡가의 생애, 연주한 주자의 테크닉 등을 알아내고 싶었고,
뉴스에서 사건 사고를 보게 되면 그와 관련된 사건까지 전부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중학교 시절에는 그 자체를 이해하고 싶어 심리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어느새 프로이트부터 범죄심리학까지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마치 굶주린 아귀처럼, 한글을 뗀 그 순간부터 온갖 지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마냥 좋은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산더미 같이 책을 쌓아놓고 읽고, 알아낸 것을 자랑하는 아이는 칭찬받을 만한 아이니까.
지식이 전혀 영양가가 없고, 소화도 되지 않은 지식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첫 과외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논술 과외를 맡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인터넷 신문에 기사를 투고하고 있었기에, 여러 부모님이 아이를 맡겨주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나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지적 호기심을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읽고 논지를 펴기 위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고,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아이도 없었다.
억지로 책을 읽혀보려고 했지만, 짧은 단편조차 읽게 할 수 없었다.
이후 여러 과외를 맡았다. 역사 과외도 맡아봤었고, 수학 과외도 맡아봤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떻게 해도 아이들의 흥미를 끌게 가르칠 수 없었다.
1년 남짓한 과외 경험은 내게 철저한 지식의 저주를 느끼게 만들었다.
대학생활, 군생활, 회사생활을 거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것을 책을 뒤적이며 찾는 것은 나뿐이었고, 그것이 별종 취급받기 일쑤였다.
대화에는 벽이 생겼고, 말을 고르다 지친 나는 어색한 웃음과 침묵과 함께 대화의 방관자가 되기 일쑤였다.
단지 부르면 간간히 정보를 알려주는 ‘시리’ 정도의 대우만 받으면서.
가진 지식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이 생긴다면, 차라리 정통하면 좋을 텐데.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토니 스타크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자신의 분야라도 정통하면 좋을 텐데.
정작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지식의 저주를 몸으로 느끼면서, 아는 지식은 무릎에 찰랑이는 수준이었다.
결국 출판되어 있는 도서와 일회적인 검색으로만 이루어진 지식,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정작 쓸모 있는 지식도 없었다.
어떤 분야의 지식도 정통한 분야가 없이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식을 삼켜만 온 것이다.
조금 이야기가 맞는가 싶다 보면 금세 오류로 가득한 내 지식의 밑천만 드러나고 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럴 때면 다른 주제를 통해 얘기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대화는 관계의 끝을 알렸다.
‘진짜’ 박학다식한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일반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느샌가 정말 ‘저주’에 어울리는 어정쩡한 지식만을 가진 나만 덩그러니 소통의 회색지대에 놓였다.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도, 아예 모르는 척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나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지식을 삼킨다.
페이스북에서는 지인들이 관심이 가는 이야기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고 있다. 나는 낄 수가 없다.
잠깐 재밌어 보여 댓글을 남겼다가 틀린 곳이 있을까 검색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답글이 달리기 전에 지우고 만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오늘도 예쁜 고궁 한편에서 사진을 찍은 동기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예쁘다’ 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들이 원하는 대화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즐겁게 이루어지는 대화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좋아요만 누르고 도망치듯 인스타그램을 끈다.
‘머리를 비워낼 수 없으니, 어떤 한 지식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
이도 저도 아닌 지식의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고 싶지 않아 다짐하지만, 오늘도 그 분야와는 다른 분야의 지식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내 뇌 속 빈 공간에 지식을 우겨집어넣는다. 어디 쓸 수도 없는 지식을.
그냥 대화가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아니면, 조금은 칭찬을 받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뭘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