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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Feb 03. 2021

95.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없다. 

아무리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해도 누군가는 나를 미워한다.

아무리 내가 만족하는 글을 써도 어느 누군가는 자기가 본 최악의 글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나조차 나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완벽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내 행동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손가락질당할 수 있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무지갯빛 환상을 보여줄 수는 없다. 

정말 무지갯빛 환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빛깔이 선명하지 않다며 흠잡을 수 있다.

알고 있다. 인류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는 이들도 그들의 사소한 것 하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깎아내리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할 거라면 눈 딱 감고 도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더라도 내 본연의 모습을 조금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 누군가는 내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게 취향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보란 듯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면 거기에 응답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욕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욕할 테니 처음부터 머리에서 치워버리면 된다.


참 잘 알고 있는데, 그게 마음처럼 안된다. 

또 누군가에게 나를, 내 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 자꾸 세상에 없는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어 진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를 비하하는 느낌으로 보이지 않을까?'

'너무 생각이 짧아 보이는 게 아닐까?'

'너무 이야기를 꼬아서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보지도 못한, 있는지도 모를 가상의 인물들이 불어난다. 모든 것이 예민하고 화가 나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상처 입힐지 궁리라도 하는 듯한 사람들이다. 글을 한 문장 쓸 때면, 내가 무언가 선택을 할 때면 꼭 나타나 칼로 생각지 못한 곳을 후벼낸다.  

'이런 것도 고려하지 못하면서 어디에 선보이겠다는 거야.'

쓰고 있던 모든 것은 백스페이스 뒤로 묻힌다. 다시 써내야 한다. 그래도 아까보단 모두가 만족할 글을.


모두가 상처 받지 않게 고려하는 글은 무미건조하고 적당하게 읽히고 까먹히는 애매한 글이 될 뿐이다.

가슴을 울리고 뒤흔들만한 글은 누군가는 맘에 들지 않아야 한다. 다 안다. 몇 번을 반복하고 있고, 다짐하고 있어서 알만큼 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너무 큰 검열관으로 여전히 마음 한가운데를 막고 서있다. 모든 문장을 검열하는 인물들은 결국 모두 나이고, 칼로 내 글을 난자하는 것도 모두 나일뿐이다.

나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만족시킨 적이 없다. 나에게만 지극히 날 선 잣대를 가진 마음속 내가 모든 글을 자와 칼로 재단한다.


'이런 글로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어.'

내 글은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쳤다가 한 문장이 지나면 말끔하게 정돈되고 한 문단이 지나면 둥글어진다. 

결국 나 하나를 제대로 만족시키고 싶어 이리저리 만진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모난 곳 없이 그냥 둥그런 글. 날 선 듯 하지만 그냥 네모반듯한 그런 글이 되어버렸다.


맘에 들진 않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누구에게 지적은 당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남에게 선보인다. 

리플로 의견이 달린다. 그 의견의 작은 지적이 내 마음속 나를 삽시간에 다시 불러낸다.

이제는 칼도 아니고 채찍을 들고 와 내 등을 후려친다. 

'거 봐, 더 확실하게 다듬고 가야 할 글이었잖아. 이깟 쓰레기는 내리고 처음부터 다시 써.'

지금까지의 모든 글이 불쏘시개가 되는 기분이 등 뒤를 타고 오른다. 한 사람의 단순한 의견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혹평처럼 들리게 된다. 

다시는 내가 쓴 글을 보기 힘들 정도로 무력감이 손가락 하나하나를 늘어트린다.


답이 없다. 타인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그건 알고 있고, 눈 딱 감고 쓸 수 있다. 

그까짓 거 도발적인 글, 내 냄새가 가득 담긴 그런 진한 글 못 쓸리 없다. 써버리면 된다.

그런데, 나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난도가 높다.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벼려낸 예술작품 중 대부분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나서서 내 글의 열렬한 비 판가 가 되는 나를  늘 글을 쓸 때마다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나를 눈감고 넘어가게 할 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작은 의견에도 흔들려 내 글을 불태우려는 나를 막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마음속 나 자신의 아우성을 무시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비약이라도 있는 것일까.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방법이 있는지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다.

내 모든 버려지고 잘린 빛나는 글 자투리들을 대신해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참고 넘어갔는지.


오늘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심지어 나 조차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그 단순한 게 가장 어렵다.

자신 있게 내가 만족하며 글을 선보일 수 있는 경험, 그 한 번을 갖는 게 가혹할 정도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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