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접하려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3월 15일 현재 코로나 19 국내 일일 추가 확진자 수가 70명대 까지 떨어지며, 확산세가 안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코로나 19가 끝나는 그 날 우리는 또 웃고 떠들며 이날을 추억할 것이다. 아직 종식을 이야기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가져갈 보석이 있다면 분명 "코로나 19 징비록"일 것이다.
산업 혁명으로 전 세계가 변화하던 구한말,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세계의 변화를 무시했었다. 그 결과 1950년대 전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졌으나, 자본주의에 기반한 팽창 사회의 파도를 너무나도 잘 이용해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분명 세계 경제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2020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한국의 주가는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패닉에 빠져 있다.
우리가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는 배경에는 "자본주의"라는 소프트웨어가 국민 대다수에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북한은 "자본주의"라는 소프트웨어를 배척했기 때문에 현재도 고립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한국전쟁 이후 서로 다른 이념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초로 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보면 이기심을 의미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단 한 번만 언급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철학 서적을 남긴다. 결국 인간의 심성을 좋건 싫건 이기적임을 인정하고 있었고, 비교적 최근에 쓰인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는 "모든 생물은 유전자부터 이기적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많은 종교계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스테디셀러의 자리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분명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을 두고 진화해 왔다. 인적자원 관리, 주식 수익, 마케팅 모든 경영, 경제분야가 인간의 이기심을 잘 이용해서 모두가 배부르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에 기반하면 "행복 = 소유(성취, 소비)/욕망(탐욕, 기대)"라는 공식에서 분자 부분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인류는 채택한 것이다.
인간의 욕심 이상으로 제품은 공급되기 시작했으나 인간의 욕심은 충족되지 않았다. 기존에 가진 것에 대해서 쉽게 싫증을 내고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예쁜 것, 남들이 갖지 않는 더 대단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의 핵심 사상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도 다른 나라 (대표적으로 일본)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한 번 (더) 잘 살아보자는 구호다." 인간의 심리에는 "남들과 비교"한다는 기본적 심리가 깔려있다. 처음에는 보릿고개처럼 배고픔을 넘기자는 목표에서, 세계에서 젤 잘 사는 국가가 되어보자로 사상이 전환된다. (당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일본보다 잘살려면, 미국만큼 잘 살아야 했다.) 이 작은 나라가 그런 큰 꿈을 꾸었다. 겁도 없이... 결국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2020년 현재 일본 턱 밑까지 추격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예전의 일본이 아니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수축 사회로 접어들었으며, 국민성 자체가 사토리(달관) 세대로 불리며, 최소한의 수입과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야 수축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두 자릿수 성장을 하던 대한민국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3% 성장이 대박이며, 2% 성장도 코로나 19로 인해서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금리는 0% 혹은 마이너스 금리로 치부되고 있고, 그나마 좋은 투자처이던 부동산은 국가적으로 오르지 못하게 누르고 있다. 새마을 운동을 하던 그때의 사상으로는 국가가 존립할 수가 없다. 선진국, 중진국 대다수가 겪는 현상이며, 이미 세계 경제 자체가 얼어붙은 것이 사실이다. 확장 사회에서 썼던 타인과 비교해서 잘살아보자라는 사상과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던 세계는 이미 종말 했다. 과거 시대의 흐름을 통해서 성공한 학습효과를 가진 대다수의 노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돈을 벌어서 은행에 넣어도 물가 상승률을 못 좇아가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는 수축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경제가 멈추었다. 특히 대구시 쪽은 재래시장 등 모든 생산 소비활동이 멈추었다. 1930년대 대 공황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업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공적 마스크 판매량에 대해서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는 분위기다.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개인의 이기심을 줄이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어느 국가나 재난이 창궐하면 사재기는 일어난다. 하지만 대구를 비롯한 한국은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거나 패닉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본인의 이기심을 조금씩 버리는 것이 결국 본인도 생존하고 모두가 생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재기와 같은 행동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믿음이 결국 안정화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직까지도 매우 불안정한 믿음이다. 특정 종교집단처럼 본인들의 믿음만을 강조하며 집회를 진행한다던가 또 다른 돌발행동을 하면, 그 믿음은 언제 깨질지 모르고 사회적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특히 시스템 적으로는 의료보험 체계가 다른 국가처럼 통제불능의 상황을 막은 것에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는 공적 부조 형식이라서 소득이 있는 사람이면 의료보험료를 안 낼 수 없다. 필자 역시 의료보험료에 대해서 매우 불만이 많았지만, 이번과 같이 공적부조가 탄탄한 국가가 결국 사회적 신뢰도가 높고 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임을 배웠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극대화될 때 성공신화는 10년 전에 가능했다. 앞으로는 우리가 수익이 생겨도 의료보험료를 내듯, 불가피하게 그 수익의 전부를 가져갈 수는 없는 시대가 왔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경증 환자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연수원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공헌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되었으며, 그 개인적 이기심보다 사회적 공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 국민들은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일부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수수료 면제, 건물주들의 임대료 삭감 등의 활동을 통해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폴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에서 분모 부분을 극한으로 줄인 사상이 불교적 사상이다. 또한 인간의 이기심을 더 줄이고 의료보험과 같이 공적부조와 같은 기능을 100%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 공산주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고(이기심이 극대화된)를 갖고 성장해 왔다. 이 글을 읽는 세대보다 휴대폰에 서툰 그분들은 그 사고가 더욱 견고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부조와 같은 기능을 주장하면, "빨갱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축 사회는 시작되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적절히 통제될 때, 우리의 가장 큰 목표인 "생존"이 가능해짐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연습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과 집행, 공정성, 그리고 극도의 이기심보다는 서로를 향한 배려라는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경험하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 불교적 욕심 버리기가 우리 사회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어딘가의 이데올로기로 정치 경제적 성향은 갈 것이고, 개인은 사토리 세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욕심을 많이 버리는 이데올로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미 높은 세율을 바탕으로 수정 자본주의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 그들의 사회적 안정성에서 오는 북유럽 감성이 한국에도 정착되기 시작했다.)그래야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의 면역력을 길러주는 예방주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