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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올로스 Mar 18. 2020

 타인의 해석-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말콤 글레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서로의 머리 속의 생각들을 뱉어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생각의 영토를 넓혀간다. 생각의 공유는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필수 항목이다. 서로의 생각을 보관하고자 글을 만들었고, 그 생각의 전파를 하고자 인터넷이라는 최고의 기계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이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나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만큼 재미있지 않겠는가? 타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넘나들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을 듯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은 자체 방화벽을 갖고 있다. 또한 그 방화벽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 이외에(혹은 자신조차 알기 힘들며), 그 알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전쟁, 정치적 이슈, 경제 이 모든 것들이 어찌보면 서로의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재 코로나 이슈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서 최대 포털 사이트 N사와 D사의 누리꾼들은 극명하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생각 별로 뭉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휴학, 재택근무를 통해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하는 순간에도 종교의 힘을 믿으며 집단으로 모여있다가 이렇게 큰 이슈를 만드는 부류도 있다. (입에 소금물을 뿌리면 바이러스가 죽는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진 집단도 있다.)  전부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 모여도 생각이 서로 다르다.  이 책에 초반에 나오는 미국 경찰관과 피의자의 대화에서도 그 생각의 차이는 나온다. 차선 변경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관에 의해서 길가에 세워지게 되고 그 순간 담배불을 붙이자 꺼라 말아라로 시비가 붙고, 유치장에 갖히고 피의자(나름 엘리트로 책에서는 묘사한다.)는 사흘 뒤 유치장에서 자살한다. 경찰의 명령권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도 다룬다. 신대륙을 발견하던 그 시기 코르테스(에스파냐)와 몬테수마(멕시코 문명)의 대화는 우리에게 더욱 많은 가르침을 준다. 직접적인 통역도 어려워 2개의 언어를 통역하고 또 통역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이루어 졌다. "몬테수마(멕시코 문명)가 에스파냐(코르테스)에 항복한다"로 통역된 의미의 문장은 사실 "몬테수마는 에스파냐의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라는 의미였다. 한국말에도 "제가"라는 단어가 있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양어인데 이것이 부하직원에게도 메일에서 존댓말을 써야 하니 쓰는것도 어색할 때가 많다. 특히 국가간에는 국민에게는 "제가"라는 표현을 쓰던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는 "내가", "나는"라는 표현을 쓸 때는 약간의 어색함을 가져온다. 우리가 처음보는 사람, 비즈니스 미팅에서 굳이 내가, 나는 이란 단어로 서열정리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몬테수마와 코르테스는 그 의미의 차이 때문인지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테노치티틀란이란 도시국가는 파괴되었다. 

 그외에도 영국 총리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보고 이는 전쟁을 일으킬만한 위인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타인의 의도를 잘 못 해석해서 역사적 사건이 된 일화를 다룬다". 

 한국의 일화를 보더라도, 일부로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731이란 숫자를 보면 일본군의 생체실험을 떠올리는데 아베 총리는 731이 쓰여씨는 전투기 위에서 사진을 찍어서 주변 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책에는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도 완벽하게 속이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의도와 다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때로는 뇌과학을 통해서 해부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군인의 예를 통해서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타인을 완벽하게 배척하는것도 인간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며, 타인을 완벽하게 믿고 접촉하는 것도 병리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심리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면서 살고 있다. 보이고 싶은 면만 SNS를 통해 노출을 하고 비싼 고급차라던지, 명품이라던지를 두르면서 타인이 나를 이렇게 봐주었으면 한다는 페르소나를 갖고 살아간다. 패션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당신이 고급차와 명품으로 감고 다닌다고 남들이 당신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제대로 해석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런 언어적, 문자 메시지도 인간의 사상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일정의 규칙에 부합하는 것들만 뽑아낼 수 있는데, 하물며 비언어적 메시지는 오죽할지. 

 인간 사상의 input과 output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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