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가장 인문학적으로 철학적인 접근
<폭력의 위상학> 제목부터 매우 어렵다. 도대체 위상학이 무엇인 줄 알아야 접근이 가능할 듯하다. 위상학을 검색엔진에 물어보아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단어들이 나온다. 간략하게 위상학에 대해 정리를 하자면, 공간 내에서, 위치의 관계를 설명하는 학문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위상학이란 단어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인과관계의 도식화"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재독학자 한병철 교수가 과거의 쓴 <피로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 철학적인 고찰을 담고 있다. <피로사회> 역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지만, 나 역시 읽으면서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글을 베스트셀러로 등극시켰는지 의아해했을 정도다. 하지만 독일인들이라면 자라면서 헤겔, 하이데거, 칸트와 같은 서양철학의 한 획을 그은 분들의 사상을 배워왔을 것이고, 그런 배경 지식이 있다면,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논리구조가 단단하다. 논리 구조가 단단하는 점은 인과 관계가 명확하여 다음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적 접근 방법을 따라가는 것도 철학적 내공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부에서는 폭력이 무엇이며, 그 결과 우울감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철학적인 접근 법을 통해 설명한다. 폭력이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적 행위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폭력은 물리적 타격을 넘어서 개인의 의사에 반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모든 행동을 지칭한다. 그런 폭력은 더욱 증폭되어 큰 폭력을 만들고 현대 사회에서는 지나친 경쟁과 "어제보다 더 나은 나" 개념과 같이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하는 경쟁자로 설정하고 이기지 못할 경우 그 분노가 자신 스스로를 향할 수밖에 없는 폭력적인 현대사회에 대해서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다. 물리적 폭력은 많이 줄었지만, 직장 내 갑질과 같이 무형의 폭력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 폭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고 자기 지신을 향할 뿐이다. 그것이 우울증이며, 공격성이 타인을 향할 경우 살인이 되고, 자신을 향할 경우 자살이 된다.
2부에서는 제목에 가깝게, 폭력이 만들어지는 원인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돈을 이용하면 사람을 사서 쓸 수 있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돈을 미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공격성이 돈으로 변질되었으며 자본주의는 그 인간의 폭력성(=이기심)을 방조한다. 그런 사회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정보의 투명화를 요구하며 사실상 관음증에 가까운 방식으로 타인을 관찰한다. 피 관찰자는 자신이 보이고 싶은 가면 (페르소나)을 쓰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SNS에 퍼진 날씬한 몸매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좋은 호텔에서 투숙해야 하며,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이상적 자아에 접근할 수 있다. 만일 이상적 자아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그 분노는 자신을 향하고 우울감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이 우리 사회의 병적 현상과 그 결과로 국민들의 우울감이 증가하는 이유를 서양철학에 기반을 두어 잘 설명하고 있다.
폭력이 폭력을 낫는다는 점에서, 국가는 개인의 자율성 침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경찰의 공권력(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폭력) 투입, 구속영장 발행 여부, 간통죄 폐지와 같은 내용들이 한 교수가 말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 법학을 준비하거나 행정학을 준비한다면, 법조항의 근거가 되는 배경 철학들이 잘 설명되어 있으니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