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올로스 Jul 20. 2020

[서평] 죽은 자의 집 청소

죽음을 알아야 삶을 인정할 수 있다.

#특수 청소라는 단어를 들어 봤는가? 일반 청소가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청소를 하는 직업 분야를 의미한다. 책 제목처럼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경찰이 사자의 시신을 치우고 난 이후, 해충, 악취를 제거하여 위생적으로 안전한 상태를 만드는 직업을 말한다. 


사실 이 책의 서평을 처음에는 거부했었다. 마케팅이 잘 된 책이라 굳이 내가 홍보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없었고, 제목에서 이미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는 '프로 독서러' 특성상 이미 아는 내용이었을 듯해서 읽지 않았다. 이미 책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나는 듯하고, 굳이 서평을 쓰는 곳에 그로테스크, 고어 물과 같은 내용을 적고 싶지 않았다. (책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사진이 없는 게 다행일 정도다.) 하지만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코로나 19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건져 올리려는 의료진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언급한 대로 삶을 이해하려면 죽음을 이해한다는 문구,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분 중 하나인 서울대 법의학 유성호 교수님의 추천이 있다고 하길래 이 책을 잡았다. (유성호 교수님이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이 책을 먼저 읽는 것도 '삶'이란 철학적 주제를 이해하게 만든다.) 


 김완이라는 저자는 실제로 특수 청소 업체의 사장이다. 또한 국문과를 졸업했다고 하는데 글이 매우 매끄럽고, 묘사력이 뛰어나다. 그 뛰어난 묘사 덕분에 정말 불쾌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보통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 잉크 냄새가 향기로 느껴질 뿐,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잉크 냄새가 소독약 향으로 느껴졌다. 


 콘돔이 생명의 탄생을 막듯, 자신의 고무장갑이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을 막아주는 확신으로 시신이 있던 방문을 연다는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 책 속에 바이러스를 '문자'라는 방어막으로 처리하여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열었다. 

 예상대로 방 전체에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 돼지고기 기름기와 같은 미끈거림, 검붉은 색의 사람 모양의 핏자국 예상한 대로 이 책 속에는 끊임없이 이러한 내용들이 넘쳐난다. 

 사자의 유품들을 보면서, 반대로 사자들이 얼마나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는가를 알 수 있었다. 치열하게 직장을 구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려고 했으나,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가 모두 끊기고, 수도세를 내지 못해 물이 끊기자 위생처리를 위해 한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들을 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살려고 발버둥 쳤다는 사실들이 보였다. 정확히 "죽고 싶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다"를 몸소 실천한 것이 아닐까? 

 또한 고독사 현장을 보면서, 그들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은 자가 있던 공간 보통 고시원, 원룸과 같이 우리가 "이렇게 살기 싫었다"라고 하는 극한의 경제적 좌절감에 내몰린 사람들의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보통 집주인이라고 한다. 그 집주인들은 소문이 날 경우 집값 하락, 월세 임대인들의 집단 이탈로 인하여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질 것을 우려하여, 조용히 처리해 주기를 신신당부한단다. 

(결국 돈 때문에 죽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한 채 죽는데, 산사람의 재산권이 상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이 책을 잡는 것이 두려웠듯,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가능한 한 멀리 두려고 한다.

인권 변호사로서 최장기 민선 서울시장으로서 좋은 업적이 흠집 없이 죽어서도 계속해서 뻗어나가길 바라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책의 시작처럼 콘돔의 얇은 막이 생명의 탄생을 막 듯, 우리의 죽음도 불완전한 얇은 막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뉴스를 보니 어떤 노인이 병세(전립선 암)가 악화되자, 죽어서 오는 장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을 추진했다고 한다. 부고장은 초대장으로, 장례식은 파티가 되어서 살아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별의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매우 유쾌했단다.) 진정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에서 죽음을 "소풍 끝나는 날"이라고 표현했었다. 김광석 "서른 즈음에"는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며 삶과 죽음을 묘사하기도 한다. 

 내가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책과 <죽은 자의 집 청소>, 위의 시와 노래를 완벽히 이해 못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이고,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함은 동의를 하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삶은 길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서열로 인생을 평가받고, 대학 졸업 때는 입사한 회사의 규모로 인생을 평가받았다.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성공한 인생인지 모르겠다. 다만 꾸준하게 길게 보고 살아온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다. YOLO (You Only Live once)는 맞다. 하지만, 인생이 짧으니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아라 보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고, 내일이 없을 것 같이 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최소한 저항이라도 해볼 수 있는 금전적 여유(의료 보험), 그조차도 못 버티고 죽었을 때 최소한 인간이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고독사 방지 방안)에서 부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구에 잠시 머무르는 사이에 최소한으로 챙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어찌 보면 쉽게 죽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보험"을 들어야 하고, 내일이 없을 것 같이 사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비즈니스 아이디어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