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외국계 기업, 다시 대기업에 와서 느낀 마케터의 삶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케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가장 명확한 정의는 예전 오래된 대학교에서 경영, 경제학과를 합쳐 부르던 학과 이름. “상과”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본다. 요새는 “상고”라는 이름도 안 쓰지만, 정확히 상업에 관련된 모든 학문이 “마케팅”으로 축약이 된다.
나는 브랜드 포지셔닝 그 자체가 “고객의 머리 속에서 벌이는 영토전쟁이라고 본다” 개념과 인식을 갖고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싸운다. 답도 없는 것을 갖고 어마어마하게 싸운다. 그런데 싸움에도 원칙이 있고, 룰이 있다. 앞서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과정들을 기반으로 싸운다. 시장 현황이 어떠한지 증명하기 위해서 예전엔 표본을 뽑아 확인하던 통계학을, 요새는 전수조사를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를 들고 증명해 가며, 무엇이 맞는지 치열하게 싸운다. 시장 조사도 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다 보면 PPT 장표가 Excel 수식이 도배가 된 사업기획 수준의 장표가 만들어 지기도 하고,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숫자로 표현하기를 원하는 회사들도 있다. 스케일을 키우면, 마케팅 팀을 어떻게 조직화 할지, 디자이너를 갖고 갈 지, 제품 기반으로 팀원을 구분할 지, 시장 기준으로 팀원을 구분할지 고민하게 된다. 마케팅은 완벽한 개념 싸움이다. 그 보이지 않는 개념을 구성원이 어떻게 이해를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낼 지까지 계산한다면 인사관리 개념 또한 필요하다. 회사 전체가 어떤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각 제품을 Cash Cow로 볼 지, Rising Star로 볼 지에 따라 마케팅 전략이 달라지기도 한다. 자기가 Cash Cow에 있다고 Rising Star에서 일하는 부서 애들 월급 주고 있다고 설치는 애들도 보았다. 그 계획에 맞추어 일을 하다 보면, 마케팅 부서임에도 사업 기획 팀 수준의 기획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케팅에는 “경험치”라는 항목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빅데이터가 나오고 수치화 한다고 해도, 어떤 것에 가중치를 둘지, 조직 구성을 어떻게 나눌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예전 생필품을 만드는 모 대기업에 85년 생 최연소 여자 상무가 마케팅 부서 임원으로 뽑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폭언으로 인한 보직해임이 되었다고 한다. 팀원이 잘 못했는지 상무가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념을 갖고 싸우는 조직에서 어지간히 잡음이 심했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신입사원의 발언이 존중되기를 바란다면서, 숫자 이야기가 나오고, 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배시시 웃으며, 넘어가길 바라고, 본인을 이해시켜달라고 발언을 계속하고, 대학생 리포트 수준의 기획 안을 갖고 와서 반영이 안되면, 무시하고 독단적인 일처리를 한다고 뺴액거리는 친구들을 보고, 마케팅 팀이 백조인 줄 아는 무궁무진한 지원자들을 보면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경영학원론 책을 열면, “경영학은 학제간 과학으로서…” 이 문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여, 객관적으로 증명을 하는 학문이란 뜻이다. 금융권에 들어가려고 재무를 공부하던 친구, 회계사가 되려고 회계학을 치열하게 공부하던 친구들, 노무사가 되려고 인사관리 공부하던 친구들 못지 않게 끝도 없이 공부하고, 경험해야 하는 분야가 마케팅이다.
경영학원론 책을 읽어보니 10년 넘는 회사 생활이 스쳐지나 간다. 내가 그 때 이것을 목적으로 이렇게 했었지, 혹은 우리회사가 이런 상황이었지, 혹은 그 때 내 상사가 주문한 내용이 이것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은행원, 회계사, 노무사 만큼 전문직은 아니지만, 채용시장에서는 분명히 어떤 자격과 경험치를 요구하는 것을 보아서는 전문직에 준하는 공부와 경험을 해야 하는 학문이 마케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