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두 번 확진이 됐다. 그때 경험담이 도움이 될 분들도 계실 듯 싶어 기록.
1. 첫 감염은 2월 하순이었고 금요일로 기억한다. 아이부터인데 증상은 하나도 없었지만 아이가 가게 될 유치원에 assessment를 받기로 예약한 날이었다. 혹시 몰라 가기 전에, 기왕 집에 PCR급 테스터가 있으니 테스트를 해보고 가자는 생각이었는데 뜬금없이 양성이 나왔다.
무증상이었기는 한데, 그 시점에선 언제 시작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아이는 전에도 종종 가볍게 시작해서 갑자기 나빠져 입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밤에도 두세 시간마다 체크를 했다. 나빠지면 지체없이 대응하기 위해서였는데 힘들었다.
다행히 증상이 없이 끝났다. 월요일엔 신속 항원, 화요일엔 PCR로 음성이 나왔다. 의사의 짐작대로 무증상 감염이었고, 월요일에 끝났던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그보다 좀 전일 텐데, 그 무렵 유일한 노출은 지인 가족과의 식사였고 음식을 섞어 먹었다. 그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보름 전 유증상 감염이었다는데, 그걸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 첫 감염자의 감염 이후, 다른 가족들 (모두 백신 접종자)이 순차적으로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가족 상황과 비슷하다. 나는 아이가 확진된 당일 PCR급 검사를 했지만 음성이었고 증상도 없었다. 결과론이지만 이 금요일은 아이가 감염된 첫 날이나 둘째날이 아니고 무증상 감염이 거의 끝나던 시점이었다. 나는 거기서도 하루 뒤인 토요일에 양성이 나왔다. 아내는 끝까지 음성이 나왔다.
3. 나중에 알고 보니 BA.1 오미크론 기준으로 감염자가 있는 가구 내에서 isolation이나 마스크 착용 등을 하지 않아도 노르웨이에선 약 67% 정도가 감염됐다고 한다. (놀랍게도 100%가 아님) 부스터를 접종한 경우 30%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백신의 efficacy는 오미크론의 경우 부스터를 접종해도 겨우 50 ~ 70% 수준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부터도 부스터 접종자의 경우도 아주 쉽게 오미크론 감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진 않고, 상당히 긴 기간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어야 면역이 뚫렸던 것으로 보인다 -- 정확히 말해 나보다 젊고 건강한 아내의 경우 뚫리지 않았고, 나는 아이가 무증상감염이던 주에 와인을 반 병씩 두 번 마셨다. 거듭 이 뚫릴 확률은 부스터 접종자, BA. 1의 경우 약 30%, 2차 접종자일 경우 수치를 모르는데 더 높을 것이다.
4. 감염은 되었지만 드러난 증상은 내 경우 심각하지 않았다. PCR은 길어야 이틀 동안만 양성이 나왔다. 의사와 얘기해 보니 부스터 접종 감염자의 경우 드물지는 않은 현상이라고 했다.
5. 이 시점에서 가장 걱정이었던 건 long covid였다. 뉴욕타임즈의 어느 기사는 절반 정도가 long covid를 갖게 된다고도 보도했고, 다른 연구는 30% 정도 얘기했다. 어쨌거나 끔찍하게 높은 비율이었고 무증상과 long covid 사이에는 2월 당시엔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
6. 그리고 한참 지나 5월에 재감염됐다. 이번엔 목요일 밤부터 아이가 증상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가볍게 지나간다고 하는데, 글쎄, 그건 무거울 가능성이 없다는 뜻도 아니고 "가볍다"가 "감기 같이"의 동치도 아니다. 우리 아이는 해열제로 통제되지 않는 고열을 앓았고, 토했다. 거의 먹질 못했고 복부 통증과 목 통증, 두통을 호소했고 거의 움직이질 못했다. 이게 근 만 하루 지속됐다.
다행히 원격 진료 바로 보고 조언에 따라 응급실로 갔다. 하루종일 거기 있었다. 한국 같으면 아마 IV에 특수한 해열제를 주고 입원하는 순서였을 것 같은데, 미국서는 응급실에서 motrin 1.5시간 내에 타이레놀을 주고, 다시 2.5시간인지 뒤에 motrin을 줬다. 안 들으면 IV를 준다고 했다. 다행히 열이 38도 중반대로 내려오고 사과 주스를 두 모금 먹으니 집에 가서 해열제 교차해서 주고 사과 주스 같은 거 먹여 보다 나빠지면 오란다. 증상은 나아졌다.
목요일 밤에 증상 발현이 되었으니 아마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발레 학원 아니면 프리스쿨 같다. 이번엔 우리는 따로 집에서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이는 마스크도 안 쓰고 격리도 하지 않았다. 음식물을 공유하고 물을 공유하는 정도만 피했다. 아내는 매일 테스트 중이지만 음성이고, 나는 일요일에만 양성이 나왔다가 월요일부터 음성이다. 토요일도 음성이었고, 양성인 기간은 하루 뿐이었다. 별다른 증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부스터 + 전 감염 + no wine의 효과 같다.
6. 하여튼. 공유하고 싶었던 내용은 몇 가지 있는데, 첫째 재감염은 생각보다 쉽다. 기-감염은 충분한 면역을 제공해 주지 못하거나, 혹은 충분히 긴 기간 지속되지 않는다. 한국도 방역 당국이 허리띠를 푸는 이유가 워낙 감염자 수가 많았던 탓 같은데, 우리 식구들 경우를 보면, 그거 두세달 지속될까 말까일 것이다. 더구나 오미크론 내에서도 이미 변이가 있는데, 그게 BA.1 기 감염으로 인한 면역을 일정 정도 회피한다고 한다.
반면 부스터의 방어 효과는 생각 이상인 것 같다. 우리처럼 그냥 같은 공간, 같은 공기를 온종일 마스크 없이 공유해도 아내는 감염이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내는 이 시국에도 계속 몇 시간씩 실내에서 수십명의 타인과 지낸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 감염이 되었지만 두 번 다 며칠씩 지연됐고, 증상은 흔한 감기보다 가벼웠으며, 지속 기간도 짧았다.
백신 2차 접종의 경우 효과가 시일이 지나 더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오미크론 대비 중증 이행 방지 효과도 50% 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스터는 당시 80 ~ 90%대) 연세가 있거나 지병이 있는 분들은 부스터를 맞는다고 완전히 안심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서,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부스터, 마스크, 그리고 상식적인 방역 (음식/물 등 같이 입대고 먹고 마시지 않기, 손 씻기 등)인 것 같다.
7. 미국에서 사람들이 백신에 큰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 그러니까 치킨 팍스와 다른 이유는 아마 아이들이 걸려도 크게 아프지 않아서 같다. 나도 이번에 애가 두 번 앓고 나서는 인식이 다소 바뀌었다. 최소한 이거 걸린다고 죽지는 않겠구나 확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long covid는 unknown인데, 백신을 접종하면 long covid로 갈 가능성이 낮아지고, long covid 상태인 사람도 더 일찍 종식된다는 연구가, 비록 성인 대상이지만 있었다. 부비동염 걸린다고 죽을 일은 없지만 오래 앓고 있기 번거롭고 귀찮은 질병인 것처럼 long covid가 반가울 일은 없다. 둘째, 아이는 가볍게 앓지만 덜 퍼뜨리진 않고, 부스터까지 맞아도 취약한 인구층이 있으며, 이해가 안 되는 이유로 부스터를 맞지 않은 성인들도 많다. 그네가 무지 때문이든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든, 그네들 사이에서 사망자 수가 올라가는 일도, 내 쪽의 비용이 거의 없이 피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싶다.
8. 오미크론이 "감기" "우리가 잘 아는 그 감기"라고 깔짝거리던 한국 남성분이 기억나는데.. 유감스럽게도 2월 당시 남아공 자료로도 intrinsic severity는 delta 대비 75% 수준으로 제법 높았다. 아직 피어 리뷰가 안 됐지만 의사들이 종종 인용하는 미국 연구는 샘플 크기가 미국인 13만명인데, intrinsic severity가 델타보다 더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미크론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이유는 주로 인구의 상당수가 이미 알게 모르게 감염이 되었거나 백신 접종을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백신 없이, 기 감염 없이 걸릴 경우, 기대만큼 가볍지 않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 더구나 지금 미국 자료를 보면 백신에 부스터를 맞아도 노인들, 지병이 있는 분들은 여전히 사망할 수 있고, 그게 아마 한국 당국이 2차 부스터를 권하는 이유의 일부 아닐까 싶기도 하다.
9. 여담이지만 독일에 누군가가 안티백서한테 접종 증명서 파느라 87번 접종을 하고 마침내 잡혔단다. 아직 안 죽었고 잘 살고 있다. 일본 노인은 4회 접종을 했고 잘 살아 있다. 인도네시아에선가 비슷한 이유로 10회쯤 접종한 사람 기억이 나는데, 그분도 괜찮고.
미국은 다시 COVID-19가 surging하는 중이다. CVS (약국 체인)에 가보니 종합 감기약이 전멸 상태다. 부분적으론 전국민 절반이 감염된지 몇 달이 지나 기-감염 면역의 효과가 많이 내려온 것 같고, 부분적으론 오미크론 내 새 변이가 유행종이 되어서 같다. 아마도 한국의 근미래 같은데, 한국분들은 현명하게 잘 준비하셨으면 좋겠다. 아이는 언제라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백신을 맞고 걸리는 게 long covid 예방에는 낫지 않나 싶고, 성인은 booster를 맞고 걸리는 게 훨씬 낫다. 특히 40대 이하의 다른 지병 없는 분들은 booster를 맞으면 감기 비슷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복수의 미국 의사가 이야기했다. 적어도 본인들의 진료 범위 내에서는 그러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