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한반도, 한국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 둘로 나누어 점령당하는 징벌을 받아야 하는가? 미군은 무엇 때문에 해방된 한국을 그리도 적대시하였는가? 적의를 가득 품은 표정들은 또 무엇인가? 이제 막 해방된 한민족을 애처로운 마음으로 보듬어도 모자랄 판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처럼 무지하고 거칠게 대했는가? 긴 세월 식민 생활도 분할 진대 해방되자마자 독립 국민이 되기는커녕 두 동강 난 채 군사통치 아래 두려워서 떨고 분해서 몸부림치는 한국민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은 주춧돌 한국은 기둥’
미국이 태평양 전략 기지를 세우는 데 있어 인식하는 일본과 한국의 모습이다. 가령 집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진화를 하지 못해 집이 홀랑 다 타버릴 경우 주춧돌은 비록 검게 그슬릴지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지만 기둥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만다. 집을 새로 지으려면 주춧돌은 조금만 손을 보면 되지만 기둥은 완전히 새 것으로 마련해야 한다. 주춧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둥은 필요할 때마다 새 것으로 마련하면 된다.
일본은 앞마당 태평양을 수호하는 완충지대요 한국은 그 완충지대를 사전에 보호하는 경비소이자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지하는 전초기지로 안성맞춤이었다. 자연 지리 환경이 제국주의적 탐욕으로 오염되어 지정학적 요충지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미국은 주적이었던 일본을 동지로 삼고 즉시 일으켜 세우기 작전에 돌입했고 그 주역은 맥아더였다. 맥아더는 일본인들이 천황은 곧 일본 자체라고 믿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양면 전략으로 천황과 일본을 요리했다. 항복 선언을 한 지 40여 일이 지난 9월 27일 천황은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비밀리에 주일 미 대사관을 방문했다. 맥아더는 비서도 아닌 군의관을 보내 천황을 맞이하게 함으로써 그를 개무시하는 방법으로 기선제압을 했다. 시작부터 모욕을 당한 천황은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자신과 일본의 운명에 관한 백지수표를 맥아더에게 위임했다. 전범으로 처형되는 게 두려웠긴 했나 보다. 이때가 바로 명실공히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는 순간이었다.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쥔 맥아더는 천황을 전쟁 최고책임자로 처벌하는 대신 면책받은 허수아비로 만들어 지위를 유지케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으며 신격화된 천황의 신성성에 생채기를 내서 다시는 전쟁을 벌일 생각을 품지 못하게 만들고자 했다. 먼저 자신과 천황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어 일본 전역에 배포하였다. 천황의 차림새는 양복 정장이고 맥아더는 일상 근무복 차림으로 조금은 삐딱한 자세로 찍은 모습이었다. 천황이 맥아더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진도 있었단다. 히로히토는 1946년 1월 1일 성육신 코스프레라도 하듯 인간선언을 발표하였으니 사진을 보고 경악하기에도 정신없던 일본 국민들은 커밍아웃하는 천황을 다시 본 순간 아예 정신을 잃어버렸다. 맥아더의 전략은 적중했다. 히로히토 대신 맥아더가 푸른 눈의 천황이라는 칭송을 받는 어이없는 현실이 발생했다. 그가 일본인들의 신이 되었다. 신을 제어할 자 누구인가!
맥아더는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든 후 이제부터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당시 미국 국민들 70%가 천황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맥아더는 천황을 A급 전범으로 기소될 위기에서 빼냈다. 그는 천황을 전범으로 기소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그 결과는 과소평가할 수 없고 그를 처형하면 일본이 붕괴될 것이기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천황을 살려둘 필요가 있다는 궤변으로 천황을 전쟁범죄로 기소할 수 없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그는 진주만 공격의 모든 책임을 당시 총리이자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에게 돌려 그를 처형하는 것으로 천황의 목숨을 구했다. 심지어 731부대(마루타 부대) 장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문가들이 한국인을 비롯하여 중국인, 소련인, 몽골인들까지 수천여 명을 산 채로 인체실험을 행한 악마 같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맥아더는 실험 데이터를 전달받는 대가로 그들을 기소하지 않고 면책시켜주었다. 전범국가 일본과 전승 국가 맥아더의 미국은 뭐가 다른가!
자신이 곧 일본 자체인 천황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명했고, 군부는 결코 해서는 안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정부와는 완전히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군부는 자신들만의 욱일기를 휘날리며 오직 천황의 명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조직이다. 바로 이러한 천황의 지위와 군부의 위상을 안다면 미국이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금방 드러나는 일이다.
맥아더는 1947년 평화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천황과 일본 길들이기 전략의 정점을 찍었는데 그 핵심 요지는 천황의 정치적 권한 박탈, 전쟁 포기, 군대 포기이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일본 평화헌법 제9조 ①항)”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일본 평화헌법 제9조 ②항)”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일본 길들이기 전략은 성공적이었으며 패전국 일본은 군정사령관 맥아더의 지휘 아래 사회 제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개혁을 이루어냈다. 6.25 전쟁 동안 미국은 일본을 전쟁물자 생산공장으로 풀가동했다. 무려 5천만 톤의 군수물자를 생산해 전쟁터로 열심히 실어 날랐다. 부산지역이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3개월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일본에서 부산하게 실어 나른 군수물자 덕분이었다. 한국은 가까스로 살아났고 일본은 더 살아났다. 불과 5년 전 궤멸되어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되어버렸지만 6.25라는 전쟁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당시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가 13% 가까이 되는 경제성장을 만들어낸 현실을 보고 감격에 겨워 내뱉은 말이다. 자기가 벌인 전쟁으로 망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다시 살아났다. 역사적인 팩트이기는 하지만 착잡한 기분은 가시질 않는다.
일본의 만들어진 행운은 멈출 줄 몰랐다. 1951년 태평양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48개국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여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군정 치하에서 벗어나 공식적으로 주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미국 패권의 주춧돌이 되는 순간이다. 이로써 일본은 냉전시대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되는 발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맥아더의 음덕으로 살아난 전범들은 훗날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로 부상했다. 예컨대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전쟁 당시 상공대신으로 군수물자를 조달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을 강제동원해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쟁범죄자 중 한 명이었는데 1957년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외할버지이다. 일본 지도자들과 극우파들의 낯 두꺼운 언행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바로 미국과 맥아더의 일본 살리기 전략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헛 물 켰고 일본은 살아났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일본 열도에 소련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의 절반을 내주었다. 꿩 대신 닭인가! 해방된 한반도의 운명은 그랬다. 한반도가 그리됐다. 미국의 저울은 언제나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 동쪽 바다 이름으로 갈등을 겪을 때에도,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우길 때에도 모른 체하거나 한국 측 주장을 그냥 어물쩡 뭉개버린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소련이 해체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작동한 미국 원탑 패권 전략은 지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는커녕 나라 경제를 거덜내고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게 했다. 설상가상 중국이 새로운 패권 경쟁자로 부상하자 미국은 전략을 슬그머니 바꾸어 직접 행동에 나설 동맹을 확장하면서 일본을 끌어들였다. 미국이 주도해서 일본으로 하여금 전쟁 포기를 강제하도록 규정한 평화헌법을 이제는 오히려 재무장하도록 개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호기를 만난 일본은 평화헌법을 폐기함으로써 보통국가로 변신하여 군사대국으로의 부활을 추진하는 중이다.
트럼프 정부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호출되어 금방이라도 네오콘 세상을 만들 듯이 요란 떨던 네오콘 중의 네오콘 존 볼턴은 임명된 지 1년 반 만에 백악관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 백악관 회고록. 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을 썼다. 그 책에 따르면 ‘한미보다 미일동맹이 우선한다.’고 했다. 한국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그동안 미국이 취해 온 태도를 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미국에 일본은 주춧돌임이 맞다. 한국은? 부러지거나 썩으면 새 것으로 교체하면 그만인 기둥이다.
정신이 퍼뜩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