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현대사를 공부하는 동안 분단 배경에 관하여 수도 없이 들여다보고 파보면서 어이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속 끓인 날이 이어졌지만 다시 들여다보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속이 끓어오른다.
끓는 속을 누르고 누르면서 저 강철 벽처럼 강고한 분단 철책을 걷어내 보겠다고 통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솔로몬 재판 메타포를 도구 삼아 한반도를 살리는 참 어머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남과 북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투신하기로 맘먹었다.
헌데 날벼락 같은 재앙이 닥쳤다. 1990년대 중반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밀어닥친 자연재해에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더해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조선의 비극은 금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언론이나 평양을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조선 인민들의 생활고는 말로만 듣기에는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세계식량계획 WFP. World Food Programme의 보고에 따르면 1997년 기준으로 조선의 식량은 2백만 톤 이상 부족하며 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양은 6백-8백 그램인데 반해 주민들은 하루 1백-2백 그램의 식량만 배급받고 있단다. 조선 식량난은 어린이 60여만 명을 굶어 죽도록 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소아마비. 실명. 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단다. 노인들은 손자 손녀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아무런 불평 없이 조용히 죽어간단다.
나는 “북한 식량난 실태 중국 국경지역 조사단”의 일원이 되어 1997년 8월 26일-30일 5일간의 일정으로 연길, 개산툰, 도문, 훈춘, 용정, 화룡, 승선, 무산, 삼합-회령(북), 부유-유선(북) 등 두만강변 지역을 탐방하면서 조선 주민들의 재해 현장과 식량난 현실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머리에 뿔이 나지 않은 것은 7년 전 도쿄회의에서 이미 확인했으니 무지한 호기심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도대체 굶주림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를 않아 조바심 가득 안은 마음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문 해관에서 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처음인 광경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떴다. 도문 강둑에서 망원경으로 건너다본 남양 해관에는 겨울옷을 입은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여름철인데도 웬 겨울옷인가 했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중국 친지로부터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난겨울에 와서 이제껏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흘러간 옛말이다. 무산 광산 등 여기저기에서 흘러들어온 폐수로 인해 오염될 대로 오염돼 불그스름하고 어떤 곳에서는 회색빛도 띠는 두만강 물에 발을 담근 채 하염없이 강 건너를 바라보는 중에 바로 눈앞에 시신이 하릴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다 익사한 주민들이 많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두만강에서 건진 거북 모양의 수석 하나가 나의 책장 선반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를 볼 때마다 마치 북녘땅에서 일어난 길흉화복을 빠짐없이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드러낸다.
무산지역 80여 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10여 명이 굶어 죽었다고 했으며 굶주림으로 허덕이다 정신이상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소문도 들릴만큼 인심이 흉흉하다고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손에 꼽을 만큼의 사람들만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고 있고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꽃제비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다고 한다.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이들을 막기 위해 두만강변에는 50m 간격으로 군인 초소를 세워 지키고 있고 여성 탈북자들은 종종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팔려가고 탈북하다 잡힌 사람들은 정상참작이 되어 생명을 부지하기도 하지만 총살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들은 절규하고 있단다. “딱 한 번만 배부르게 해 먹으면 죽어도 원한이 없겠다고.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라고. 우리 조국과 인민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우리를 살려달라고.” 어떤 시인은 절규했다. 지금 당장 한 그릇의 밥이 되어 달려가지 못하는 그 모든 가치 있는 것, 그 모든 옳다는 것, 그 모든 성스럽다는 것은 다 헛것이고 위선이고 죄악에 다름 아니다. 지금 당장 밥이 되어 달려가지 않는다면!
벌거숭이로 변해버린 산은 산사태를 일으켜 재해가 반복되고, 비료와 농약은 턱없이 부족하고, 옥수수, 콩, 보리 등 농작물 작황도 좋지 않고, 농민들은 노동 의욕을 상실했고, 생산성은 떨어지고, 공장은 가동을 멈춘 지 오래고, 주민은 물론 군인들에게도 식량배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관료들은 부패가 심각하여 나라가 거의 와해 직전의 상태에 직면해있으며, 연간 부족한 식량이 수백만 톤이라는 사면초가 소식을 듣고 있자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잿빛으로 변해버린 가슴을 부여잡는 것뿐이었다.
배를 곯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일까? 갖가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는 것을 예삿일로 하는 이들의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굶어서 죽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세상인가! 평화가 무엇이고 통일이 무언가! 통일은 고사하고 동맹보다 우선한다고 외친 민족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이미 오래다. 파자해보자. ‘평화 平和’? ‘밥 禾’을 나누어 먹는 口 것 아닌가 禾+口=和‘! 그것도 ‘공평하게 平’. 밥 한 상 온전히 차려놓고 칠천만 식구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왁자지껄 배부르게 즐기는 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떤 시인은 절규했다. “지금 당장 한 그릇의 밥이 되어 달려가지 못하는 그 모든 가치 있는 것, 그 모든 옳다는 것, 그 모든 성스럽다는 것은 다 헛것이고 위선이고 죄악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 당장 밥이 되어 달려가지 않는다면!” 권력이 뭐고 탐욕이 뭔가! 부질없는 짓거리일 뿐. 자본주의 건, 공산주의 건 국가 지도자의 최우선 책무는 넉넉한 먹을거리를 보장하고 공급하여 국민 개개인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념이고 체제라면 그게 무슨 대순가!
세상의 모든 것을 잴 수 있는 저울로도 결코 잴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먹을거리와 어머니일 것이다. 먹을거리 하나만 저울 위에 올려놓아도 우주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것이며 어머니는 무겁다 못해 어떤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신의 대리자 같은 존재다.
어머니!
거기에는 어떠한 이념이나 체제도 넘어설 수 있는 존엄성이 존재한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하다. 자신은 곯더라도 식구들을 먹이는 거룩함 자체이다. 분단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고 자유와 상생을 누리도록 먹을거리를 주는 어머니라면 어떨까?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떠났던 여정은 평화-통일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가 될 것을 다짐하는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