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새지 마라 평양의 밤아

by 농소

1999년 9월 16일(목), 오전 8시, 김포공항. 베이징행 대한항공 851편이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아내의 모습을 뒤로하고 활주로를 차고 날아오른다. 육중한 비행기가 오늘따라 경쾌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초가을 찬란한 하늘이 따스하게 감싼다. 원래 방북일은 6월 15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서해서태가 발생했으니... 참 공교로운 일이다. 맨 땅에 박치기하기라던가. 평양 가는 길을 여는 과정이 바로 그랬다. 길지 않은 시간, 너무도 많고 긴 사연들이 틈새 없이 쌓였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왔다. 초봄에 시작하여 뜨거운 여름을 지나 초가을 문턱에 이르는 동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비화들, 숱한 우여곡절들, 험난한 난관을 넘어 드디어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래 가보자, 도대체 평양이 뭔데 그토록 호기심을 유발해왔는가.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찾아보자.


9월 17일(금) 비자 발급을 위해 베이징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사관 현관에 들어서자 대동강변에 함께 서 있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화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신청하고 10분 기다리니 발급된다. 평양행 비행기표도 샀다. 드디어 준비 완료. 이제 정말 가는구나. 대사관에 동행한 아태위 김참사관이 말을 건넨다.

“남조선의 여러분들을 만나봤지만 정선생 같은 열정을 가진 분은 처음 만났습니다. 함께 손잡고 진정으로 통일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북남 관계가 경색된 정황에서도(지난 6월 15일 서해 북방한계선 근방에서 발생한 남북 해군 교전사태를 말한다.) 이처럼 빠른 시일 내에 정선생 팀의 조국 방문이 성사된 것도 바로 정선생의 열정 때문입니다.” 들을수록 기분 좋다.


숙소에 돌아와 아내에게 전화하니 기자들, 국정원, 시경 등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불났단다. 왜 안 그랬겠는가. KBS, MBC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우리의 방북을 보도했단다. 현재의 남북 관계 상황을 고려할 때 공개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위하여 방북하니 언론에서 그냥 놔둘 리 없을 것이다.


9월 18일(토) 베이징 공항. 평양행 고려항공 JS 152편. 조금은 촌스럽지만 순박해 보이는 스튜어디스들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중동지역, 미주지역 출신 승객들, 친척 방문차 가는 재미교포 아주머니들 비롯하여 100여 명의 승객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으니 밥과 닭다리 튀김으로 준비한 점심 식사가 나온다. 메뉴는 투박스러운데 맛은 멋진 선물 같다. 한 시간 여를 나니 마침내 평양 상공이 시야에 들어온다.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착륙하여 다리를 건너 구비길을 돌아 터미널에 도착.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와 평양이란 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시골 읍내 같은 평양 공항. 입국 수속도 짐 찾는 것도 세관 검사도 공항 모습도 근무자들의 모습도 참 시골스럽다. 우리 일행을 초청한 민족화해협의회 직원과 적십자 직원이 마중 나왔다. 공항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한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메고 호기롭게 걸어가는 청년의 모습이 새삼 이제껏 세뇌당한 나의 인식의 뒤통수를 건드린다.


고려호텔 1호 27층 01호. 한 주간 묵을 숙소이다. 예상보다 비싼 숙박료에 비해 시설은 보통 수준이다. 뜻밖이면서도 마음 아픈 사실 하나. 국제 전화 안내부를 펼쳐보니 조선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미국,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주요 나라들과 국제 전화가 가능하도록 구비되어 있는 반면 서울과는 통화가 불가능하다. 호텔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평양 시내 풍경이 지나치게 한가롭다. 마치 멋지게 설계한 건축물 같은 도시 풍광인데 반해 건물마다 도색이 되어있질 않아 우중충한 색조가 첫 발을 디딘 마음을 우중충하게 만든다. 호텔 커피숖에서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평양에서 이 노래를 들을 줄이야!


9월 19일(일) 평양에서의 첫새벽 5시. 느릿느릿 울려 나는 애조 띤 음악이 평양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잠을 깨운다. “지새지 마라 평양의 밤아...”로 시작하는 “평양의 밤”이라는 노래란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들리는 새벽을 알리는 닭의 노래 소리가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평양의 거리를 채운다. 호텔 정문에서 몇 년도 식인지 모를 만큼 구식 벤츠가 우리를 맞이한다. 일주일 동안 우리를 싣고 다닐 녀석이다. 썩어도 준치? 허!


대동강변에 우뚝 솟은 170m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평양 시가지는 솜씨 좋은 작품처럼 질서 정연한 느낌을 준다. 색조가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것만 빼면 빼놓을 게 없는 장관이다.

쑥섬 통일 사적지.

1948년 5월 통일국가 건설을 위하여 56개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개최되었던 곳. 김구 선생과 김일성 주석이 자리를 함께 했던 현장. 김책과 임꺽정의 홍명희 선생도 함께 했다. 사적지에 세워진 통일전선탑에 김구 선생 이름이 생생하게 박혀있다. 샷시로 보호막을 쳐놓은 회담 장소 앞에서 리 선생, 차 선생과 함께 옛날의 그들을 생각하며 사진 한 컷. 회담 후 함께 배를 타고 대동강을 유유히 노닐었다는 역사를 상상하며 우리도 그분들이 탔던 바로 그 배를 타고 통일국가 건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대동강 바람이 얼굴을 상쾌하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남산현에 자리 잡은 인민대학습당으로 향했다. 엄청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평양의 중심부라 할 수 있다. 문답실에서는 김일성대학 철학 교수가 공부하는 중에 질문해오는 학생들에게 답해준단다. 해서 여기서 잠깐 휴식시간 겸해서 주체사상,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인간의 본능 그것의 집단적 통제 사이의 상관관계 및 해법 등에 관하여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교수는 주체사상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전제하고 시작하니 합리적 토론이 되질 않는다. 절대선(絶對善)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는 게 가능할까.

금수산.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곳. 유훈 통치의 현장을 지나가는 시내 거리마다 온통 구호로 덮여있다. “위대한 수령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 “강성대국”, “모두 다 준마를 타고 구보로 달리자”, “모두 다 가을걷이 전투에로!” 등등. 왜 구호 천지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국가 원수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찬 발언들이 쏟아지는데 왜 이처럼 구호들을 사방에 펼쳐 놓을까? 사상적 공허감 때문일까? 체제 보위가 아무래도 위태롭게 느껴져서일까? 참 궁금하다.


어느새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말하고, 강조했지만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생활고는 아무리 말을 하지 않아도, 아무리 꼭꼭 숨기려 해도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처럼 여기저기서 솔솔 눈에 비쳤다. 평양 시내 밤거리는 불빛이 너무 어두워 2미터 앞사람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부족하고 부족한 전력 사정은 계속되는 가뭄과 버무려져 식량난과 생활고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광경 하나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표정은 두고두고 가슴을 후벼 팠다. 우리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저들의 표정들,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호기심도 아닌, 질시도 아닌, 외계인을 보는 듯한 표정도 아닌, 멍한 표정도 아닌, 움푹 파인 시선들로 바라보는 저들의 표정 앞에 그냥 무너져 내린 마음을 온전하게 붙들기란 너무너무 힘든 일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까지 귀로 듣고 글로 배운 ‘그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수시로 겹치며 지나갔다. 아무리 오랫동안 갈라져 살아왔어도 같은 민족임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나 에피소드들을 겪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저절로 번졌고 서로가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분단 세월의 잔인함을 토로해야 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경직된 모습들을 보는 순간에는 알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으로 무너져내렸다.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상상 이상의 경제적 궁핍 상황은 가타부타 따질 겨를 없이 식량이나 생필품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함이 온 마음을 두들겼다. 불쌍한 건 주민들이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세상의 어떠한 이념이나 체제도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무슨 체제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주저 없이 폐기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먹는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9월 25일(토). 새벽녘 일찍 잠이 깬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주섬주섬 짐을 싼다. 그새 정들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다시 오마는 약속도 함께.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평양 공항을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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