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북핵 문제의 해법은 외통수다-

by 농소

세상사는 정말 모를 일이다. 예상치 못한 꼬투리로 발생한 탄핵의 징벌을 받은 박근혜가 축출당한 청와대는 문재인의 차지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뒤집힌 것을 다시 뒤집기 하려는 마음으로 조급했을까? 권좌에 오르자마자 손을 댄 일이 남북문제였으니 남들은 한 번도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정상회담을 2018년 한 해에만 무려 세 차례나 치를 정도로 남북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열정은 너무도 뜨거워 냉전 상태가 아무리 차가워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릴 듯했다. 여기에 더해 조미 정상회담에 옵서버 격으로 함께한 회담까지 계산하면 실로 실무자 회담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열정을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천명했다. 해가 가기 전에 종전선언도 할 것을 밝혔다.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실질적인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키고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였다. 문재인은 평양 5.1 경기장에 모인 15만 군중 앞에서 기립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내는 연설까지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합의도 했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더니 한반도 팔자가 바로 시간문제인 듯했다.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지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북의 젊은 지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워밍업을 한 후 트럼프와 일합을 겨뤘다. 그는 2018년 6월 12일-13일 양일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트럼프와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조미 양측은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조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 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고 이에 따라 2018년 7월 27일에는 미군 전사자 유해 200구를 송환했다. 김정은은 자기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도 해내지 못한 거사를 제대로 치렀다. 마침내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려 사달이 나버렸다. 2019년 2월 27일-28일 양일간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2차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트럼프의 예기치 못한 일방적 태도로 말미암아 합의서 도출에 실패하였다. 조미 양측이 최종 합의한 내용은 영변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전 해제 교환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상회담 현장에서 판을 깨버렸다. 영변 외 다른 지역의 핵시설까지도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조선의 비핵화와 조-미 국교 수교 맞교환을 최대 의제로 삼고 진행되던 미국과 조선 사이의 정상회담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듯이 요동치더니 결국 허탕으로 끝났다. 한반도는 다시 초기화되어버렸다. 남과 북 정상들이 마치 데이트하는 것 마냥 연출한 회담도, 백두산을 함께 올라 한민족의 기개를 과시하던 행보도 참으로 뻘쭘하게 되어버렸다. 남과 북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국이 개입하고 훼방 놓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조-미 축이 상수요 한-조 축은 종속변수임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회담 장소인 메트로폴 호텔은 베트남 전쟁 때 가수 존 바에즈가 투숙하여 반전 운동을 했던 장소이다. 그는 두 달간 머무는 동안 ‘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Where Are You Now, My Son?’를 녹음했다. “나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들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노래 가사의 일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미국과 베트남은 이 호텔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성하는 대화모임을 가졌고 이로써 양국 간 화해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조미 정상회담은 화해는 고사하고 다 된 밥그릇을 걷어차 버린 무도한 짓을 했으니 역사적인 장소도 도리가 없었다. 잔뜩 기대에 부푼 채 열차를 타고 만리가 훨씬 넘는 길을 이틀 하고도 반나절이나 걸린 대장정을 감행했지만 완전 빈 손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젊은 지도자의 분노로 이글거릴 속내가 어찌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은 소위 ‘북핵’ 문제로 수십 년에 걸쳐 미국과 갈등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 끝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조선에게 있어 원자폭탄은 국가적 생존게임을 벌이는 벼랑 끝 전략 수단이다. 최악의 경제적 곤경에 처한 나라가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나라를 상대로 생존투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조선의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비핵화와 양국 간 수교를 동시에 맞교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미국은 두 나라가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적으로 조선이 먼저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비롯한 핵무기를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게 해체하는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방식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은 동시 타결을 주장한 데 반해 미국은 순서를 정해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말을 그대로 따라 했던 리비아의 가다피가 어떤 종말을 맞이했는지를 똑똑히 본 조선이 미국의 주장에 선선히 응할 리가 있을까? 조선의 원자폭탄은 체제보장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치-외교적 수단과 전략이다.


교과서적인 질문을 해보자. 원자폭탄은 특정 국가들만 소유할 수 있는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가? 원자폭탄은 좋은 무기인가? 나쁜 무기인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원자폭탄은 좋은 것이고 조선의 그것은 나쁜 무기인가?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원자폭탄은 좋은 핵무기인가? 국제정치는 힘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답하면 그만인가? 조선은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이요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채 험난한 압박에서 시종여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조선이 보유한 핵무기는 결코 좋은 핵무기가 될 수 없다.


조선의 ICBM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다고 치자. 하루 24시간 내내 신의 눈을 장착한 최첨단 정찰기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을까? 핵 선제공격으로 싸움판을 벌인 조선의 결말은 어찌 될까? 조선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휘발유통을 안고 불섶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핵무기의 양이나 질, 그리고 국가 경제력 면에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무슨 목적으로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를 향해 싸움을 걸까? 미국은 왜 중국이나 러시아의 ICBM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려 할까? 세 나라 간에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바로 아마겟돈의 시작일 텐데 말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의 핵무기는 외면하면서 어린애 손목 비틀기 정도의 조선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엄하게 강요할까? 그럴수록 조선은 외골수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조선에 핵폭탄을 투하하려는 훈련을 1년 12달 한 달 30일 하루 24시간 내내 실행해 온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단순히 6.25 전쟁 경험만으로 조선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미국이 톡톡히 망신당한 것은 조선이 아니라 중공으로부터였다. 마오쩌둥의 참전으로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한반도 통일이 무산되었고 미국은 초라하고 처절하게 후퇴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미국도 한국도 중국과 적대 관계를 넘어 수교를 맺었고 지금은 서로에게 절대 필요한 경제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든든한 뒷배였던 러시아(구소련)와도 수교를 맺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조선과 수교를 맺지 못할 이유가 무언가? 양국 간에 수교를 맺은 즉시 북핵 문제는 봄눈 녹듯 스르르 풀릴텐데도 굳이 외면하는 데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이 조선에 대해 비핵화 압력을 가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조선으로부터는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 급진적으로 말해보자면 북핵 문제 해법은 한반도가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시니카가 충돌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하하거리며 만나는 장면을 보고 있던 시진핑은 배탈이 난 듯 김정은을 풍광 좋은 해안가로 불러 어깨동무하는 모습으로 우애를 지나치게 과시하는 모습을 연출하지 않았는가.

만약 조선이 팍스 시니카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대항하여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형제 관계를 영구적으로 이어간다면 북핵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은 골칫거리 일 뿐이니 조선을 위협하여 중국을 때리는 미국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장을 요지부동으로 견지할 것이며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참담한 후퇴를 유발시킨 ‘항미원조보가위국抗米援朝保家衛國’ 전략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조선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의 굴기를 틀어막고 전 지구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펼치려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체결하는 순간 조선의 핵무기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그것들과 동등하고 동일한 가치와 효력을 가지게 된다. 폐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한 좋은 핵무기가 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미국의 핵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데 있다.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이 넌지시 보인다. 파키스탄이 러시아나 중국을 틀어막고 미국의 패권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는 기꺼이 우호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중국으로 기울자 이번에는 단칼에 적대 관계로 돌아서버렸다.


결국 북핵 문제의 해법은 외통수다. 미국과 조선이 수교를 맺으면 된다. 조미 수교는 김대중 정부가 시도해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룩한 햇볕정책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단초가 되어 마침내 지긋지긋한 북핵 스캔들을 봄 눈 녹듯 풀어헤쳐버릴 것이다. 이때 떠오르는 속담 하나는 분명하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작가의 이전글지새지 마라 평양의 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