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진핑이 대만을 향한 전쟁 시계태엽을 짱짱하게 감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만을 혼쭐 내서 대륙 본토와 통일시키겠단다. 창업 군주 마오쩌둥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기어코 해내고야 말겠단다. 그런데 생뚱맞게 갑자기 통일 전쟁이라니?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치는 동안 등 따시고 배부른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여가선용이라도 할 심산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집안 단속하기에도 여러모로 버거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 필시 피치 못할 다른 이유가 숨어있음에 틀림없다.
미국이 바로 그 이유이다.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언급함으로써 시종여일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시진핑의 심기를 심하게 긁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마 무시한 능력을 가진 행동대원들을 거느린 항공모함이 대만 해협을 어슬렁거리면서 노골적으로 내 팔뚝 굵다고 무력시위를 해대니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중국몽에서 깨어나기 싫은 듯 여유를 누리고 있는 시진핑을 선잠을 깨워 기분 잡치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시진핑은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겠다면서 대만을 죽사발 만들어 해체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치킨 게임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사이에 투키디데스 함정 Tuchididdes Trap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500년 간 투키디데스 함정은 16차례 발생했는데 이 중 12차례가 전면전으로 이어졌으며 미국과 중국이 17번째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그리스의 패권을 둘러싼 ‘현재 권력’ 스파르타와 ‘미래 권력’ 아테네가 전쟁을 벌였듯이 현재 패권국 미국과 미래의 패권국이 되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 중국 간에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431년 발발하여 404년에 끝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아테네 장군인데 직접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전말을 분석해 8권으로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엘리슨은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전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인 상황을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입시켜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 Tuchididdes Trap이라 칭했다.
국제 정치판의 이단아처럼 좌충우돌했던 트럼프와 힘겨루기 하느라고 여간 힘이 들지 않았던 판에 고맙게도 그를 밀쳐내고 등장한 바이든을 보니 한시름 놓았다 싶었는데 웬걸 그는 트럼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상대가 아니니 시진핑으로서는 참 피곤하게 되었다. ‘더 나은 재건 Build Back Better’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등장한 바이든은 전략만 바꾸었을 뿐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은 오히려 트럼프보다 더 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형색이다.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ism’ 대신 ‘동맹 우선 America is Back’ 전략을 내세운 바이든은 여럿이 힘을 합쳐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주저앉히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으로는 미국—일본 동맹을 강화하고, 서로는 중앙아시아를 탄탄한 거점으로 삼고, 남으로는 미국-인도-호주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 대륙을 토끼몰이하는 마냥 몰아붙이려들고 있고 여기에 더해 중국과 영 사이가 좋지 않은 베트남과도 친구 먹기를 한 후 그동안의 아픈 과거를 묻고 군사. 경제 교류를 활발하게 진전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인도 태평양 지역의 4대 강국들로 구성한 쿼드 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여기에 한국과 뉴질랜드를 참여시켜 확대하려는 ‘쿼드 플러스 Quad plus’, 미국, 영국 호주 세 나라로 구성된 오커스 AUKUS 등은 모두 중국을 겨냥한 작품들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글로벌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 중심의 정책과 전략은 기초까지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미국 행보를 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 우선 입장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쭈욱 변함없을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었으며 국익 앞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은 늘상 찰떡궁합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이라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은 대만을 불쏘시개 삼아 진검 승부를 벌일까? 앨리슨의 진단대로 만약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는 순간 두 나라는 패권을 누려보기도 전에 공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전 지구적 인류 멸망을 초래할 3차 대전 발발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열전을 감행할까? 아니다. 미. 중 간 패권 경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1962년 쿠바 핵미사일 배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케네디는 자국군이 피격당하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했음에도 이에 맞대응하지 않고 꾸욱 참았다. 소련도 마찬가지다. 후르쇼프는 터키에 배치한 미국의 핵미사일이 소련 본토를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이에 대응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후르쇼프와 케네디는 상대를 제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열전을 감행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양국 정상은 자칫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피차 양보함으로써 터키와 쿠바에서 각각 핵무기를 철수하는 것으로 그냥 끝냈다. 핵무기가 동원되는 열전의 종국이 어떠할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전략적 경쟁 관계이지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이나 전쟁을 벌이는 관계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결코 치킨 게임을 벌일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이미 오래전에 거액의 직접투자를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대화 채널을 100여 개 이상 가동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결코 치킨 게임을 벌일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세계 1, 2위가 사라지면 누가 가장 쾌재를 부를까?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중국은 동지 국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신 목청껏 쾌재의 함성을 불렀다는 뒷얘기가 있지 않은가.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이념도 동맹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이 공멸하는 순간 쾌재의 함성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이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오듯이 세계 패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찾아올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치킨 게임을 벌인다고? 누구 좋으라고.
투키디데스 함정의 함정
미국과 중국은 상대를 직접 겨냥해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주변의 말랑말랑한 나라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자기편에 줄 서기를 강요함으로써 패권 확장을 위한 경쟁을 이어갈 것이다. 엘리슨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나라의 명운을 거는 싸움의 진원지는 대만이나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한반도나 대만이 미. 중 간에 벌어질 투키디데스 함정을 발생시킬 함정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시진핑이 미국에 보란 듯이 대만을 쓸어버리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반도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이미 두 번씩이나 투키디데스 함정의 함정을 경험했다. 분단된 한반도의 남과 북도 그들 눈에 말랑말랑하게 보일까? 한국은 어찌해야 하는가? 셈법이 별로 많지 않을 테니 골치깨나 아프게 생겼다. 한국은 서로 자기편에 서달라고 강요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난처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한국에게 중요한 나라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국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든다. 북쪽의 젊은 지도자 역시 무거운(?) 몸을 이끌면서 수를 계산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한국은 1997년 IMF 지배를 받았던 사태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의 함정을 겪었다. 한국이 중국과 브로맨스 같은 시절을 열자 이를 눈여겨보던 미국이 선제공격을 했던 것이다. 내용인 즉 이렇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서로 간에 묵은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수교를 맺었다. 두 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역을 비롯하여 투자와 관광 등 서로가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동맹국 미국은 한국과 중국이 급속도로 밀착하는 현실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설상가상 1997년 7월 세계 금융의 허브인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시기가 다가왔는데 홍콩 반환은 중국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미국은 즉시 홍콩 달러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나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당시 한국 금융계는 홍콩에서 단기 외채를 빌려 중남미 지역에 고금리 이자 장사로 재미를 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던 미국은 홍콩 공격 실패의 분풀이를 풀기 위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미국 정부와 금융계가 행동에 나서자 한국에 대출했던 단기 자금이 삽시간에 빠져나갔다. 미국 금융계의 행동대원이라 할 수 있는 IMF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의 부동산과 주식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미국계 자본가들에게 통째로 먹히는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그 결과는 우리가 이미 겪었고 아는 바대로다. 숱한 기업이 도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은 풍비박산 나고 팔자에 없는 홈리스 신세로 전락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흔적은 지금도 여전히 도심 여기저기에서 안타까운 시선을 빼앗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한중 밀착 관계를 훼방하기 위해 IMF를 이용해 한국의 숨통을 짓눌러버렸던 것이다. 중국과 수교를 맺은 지 5년 후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당시 대다수 전문가들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외환위기 발생의 근본 이유는 소위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했지만 그 진실은 판이하게 다른 이유, 바로 미국의 압박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 배치 문제 때문이다. 2011년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자 후진타오는 한국에게 중국과도 FTA를 체결하자고 요구하였고 마침내 2015년 한. 중 FTA가 체결되었다. 이로써 한중 간 무역거래의 미래는 그야말로 온통 장밋빛이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방해꾼이 등장했으니 바로 미국이었다. 한. 중 FTA 체결 바로 다음 해인 2016년 미국은 북한 핵 방어라는 구실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북한 핵 방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진짜 목적은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미국 스스로 인정했다. 중국이 반발한 것은 당연지사. 결국 한중 관계는 급속하게 식어버렸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사드 배치 갈등은 문재인 정부 5년이 거의 끝나가는 중에도 여전히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 봉쇄를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확대하면서 앵글로색슨족 나라들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다섯 나라로 구성한 ‘파이브 아이즈 Five Eyes라는 감시망 체제에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인도, 독일을 포함시키겠다고 자기 맘대로 결정했다. 그러자 중국은 자기 나라를 감시하는 눈이 다섯 개든 열 개든 모두 남김없이 창으로 찔러 멀게 만들어버리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참으로 부랑아들이 벌이는 뒷골목 싸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작태들이다.
왜 강자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싸우는 대신 다른 나라 영토를 전장으로 삼는가?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볼모 삼아 열전 같은 냉전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그냥 넋 놓고 있어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심기가 불편해지지만 강자 중심으로 전개되는 국제정치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1극 패권을 누리다가 혼쭐난 후 가히 혁명이라 칭할만한 셰일가스 출현으로 다시 패권 엔진을 가동한 미국이나, 미국이 깔아준 세계화 멍석에 올라타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나 마냥 순풍에 돛 단 듯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깥세상을 향해 탐욕을 뿜어내기 전에 자신들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나지 않은지 제대로 진단하고 치유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존중하며 사는 방법을 서로에게 건넬 때이다. 그래야만 주변 나라들에게까지 애먼 불똥이 튀지 않을 테니까.
대한민국은 그들이 동네북처럼 만만하게 다룰 수 있을 만큼 말랑말랑한 나라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패권 확장을 위해 한반도를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외교를 펼쳐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다. 위기를 기회 삼아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점검하고 그 대책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우리 역시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그들을 상대해야 하며 따라서 반드시 어느 한편만을 고정적으로 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분단의 찌꺼기에 파묻혀 외세가 끼어들어 이래저래 간섭당하는 나라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