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항아리를 깨뜨리자!

by 농소

일본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한반도의 남과 북은 각각 미군정과 소군정 3년을 겪은 후 통일 독립국가 건설에 실패하자 결국 따로따로 분단국가를 세웠다. 한데 왜 분단국가를 세웠는지 어이없게 만들 만큼 곧바로 남이나 북이나 각자의 전략과 방식으로 통일 실현을 위하여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한반도에 분단국가를 세우는 데 앞장섰던 이승만은 되지도 않는 북진통일을 노래 부르더니 박정희는 7.4 공동성명을 체제 강화의 기회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전두환 정권을 이어받은 노태우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호시절을 맞이하는 행운과 더불어 과감한 북방정책을 내세워 한반도를 평평하게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를 결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김영삼 정부 시절,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는 핵전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포용과 화해의 따스함을 사방팔방으로 쏟아붓자 250km 휴전선은 금방이라도 걷힐 듯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완전 거꾸로 방식을 택하자 남북 관계는 다시 꽁꽁 얼어붙는 초기화 단계로 되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마치 번개팅하듯 스스럼없는 정상회담 행보를 펼쳤으나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한반도의 평화는 최고의 국정 과제로 서성거리고 있다.


젊은 지도자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한 이래 아들에 아들로 이어지는 조선 정권은 통미용남通米用南 전략을 필요에 따라 풀고 조이기를 반복하면서 풀리지 않은 악연의 나라 미국과 친교 관계를 원하고 체제를 보장받으려 애를 태우지만 제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짜증만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조선은 마주 보고 있는 한국보다 언제나 미국을 우선적으로 상대하려는 전략적 입장을 취하면서 툭하면 한국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애꿎은 비난을 쏟아내기 일쑤다. 미국이 지구적 패권 장악을 위해서 가해오는 압박을 피하기 위한 생존 논리에서 비롯한 것이니 뭐라 할 수는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남과 북의 관계는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종속적 단계에서 맴돈다.


나는 솔로몬 재판 메타포가 가르쳐준 대로 분단 한반도의 생명을 살리는 참 어머니가 되겠다는 고백과 함께 남북문제를 붙들고 씨름한 지 30년이 넘었다. 허나 지금의 남북 관계는 처음 시작때 보다 더 거칠어졌으면 거칠어졌지 덜하지가 않다. 위산이 역류하는 듯한 쓰라림이 속을 휘저어놓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마치 희망을 꼭꼭 숨기고 있는 판도라 항아리와 진배없다. 판도라 항아리! 벼락 지팡이를 움켜쥐고 천상의 권좌에 앉아 온 우주를 쥐락펴락 호령하는 제우스에게 목에 걸린 가시처럼 괴롭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는 나다’라고 외치며 삐딱하게 구는 프로메테우스였다. 제우스가 한때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던 인간들로부터 삶의 원천인 불을 빼앗아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지극히 인간적인 신족神族이었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를 알게 된 제우스는 노발대발, 프로메테우스에게 잔인한 형벌을 가했고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프로메테우스가 애틋하게 여긴 인간들을 불행에 빠뜨리기 위한 책략을 꾸몄다. 바로 미인계였다. 우아하고 격조 있는 고려청자를 굽듯이 진흙으로 빚고 불가마에 구워 완성한 여인, 판도라였다. 키 1미터 55센티, 바스트-웨스트-히프가 40-35-50인 그야말로 절세 중의 절세미인(?), ‘모두의 선물 gift of all’이란 뜻을 가진 판도라는 인간 세상을 무너뜨릴 회심의 색계色戒였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아내로 선물했다.

‘미리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판별하는 자’라는 뜻에 걸맞게 용의주도한 형과 달리 자신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에피메테우스는 세상 만상이 온갖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도록 만든 화근이었다.

‘머리말’을 뜻하는 pro-logue, ‘예언자’를 뜻하는 pro-phet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pro는 모두 pro-meteus에서 비롯했다. pro는 ‘앞선다’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책 마지막에 위치하는 ‘후기’를 뜻하는 epi-logue의 epi는 epi-meteus에서 왔으니 pro의 반대가 분명하다. 쉬어가는 생각으로 잠깐 짚어보는 신화 이야기이다.

에피메테우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항아리 하나를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후 ‘외부인 절대 접근 금지, 절대 접촉 금지, 절대 열어보기 금지’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아내 판도라에게도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허나 하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판도라는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항아리 뚜껑을 열어 제꼈다. 그 순간 시기, 질투, 미움, 복수 등등 놀부 심보 같은 성정들을 비롯하여 당뇨, 고혈압, 비만 등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질병들은 물론 요즘 온 세상을 공포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별종 오미크론까지, 별별 희한하고 고약한 못된 것들이 행여나 뒤질세라 앞다투어 쏜살같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기절할 만큼 놀라 자빠진 판도라가 후다닥 항아리 뚜껑을 덮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모두 튀어나가고 난 항아리 맨 밑바닥에는 미쳐 튀어나가지 못한 ‘희망’만이 절망감으로 가득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쭈그리고 앉아 있다. 해서 희망이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희망이 곧 절망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베트남 회담이 빈 손으로 끝나자 부글부글 끓던 속을 마침내 터뜨렸다. 그는 2020년 6월 16일, 2018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개성에 세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렸다. 한껏 치솟고 부풀어올랐던 자긍심도 도리 없이 가라앉는 건물이 토해내는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남북관계의 실시간 모습이다.


남북 간 화해와 신뢰의 관계를 쌓는 것은 아래 벽돌을 빼서 위에 얹는 모양새의 반복이었다. 남북끼리 애써 쌓은 화해의 탑도 외세가 개입하는 순간 맥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이었다. 그렇다면 향후 관계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는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아닐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정쟁은 점점 추해지고 민심은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지나온 과정이 그랬으니 또 그럴 것이라고 예단해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힘의 논리가 끌고 가는 국제 정치판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요 한반도 문제에 있어 조-미 축이 먼저요 한-조 축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적도 아니지만 영원한 친구도 될 수 없는 주변 열강들의 냉혈한 같은 눈길을 오롯이 견디면서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과 북의 주민들은 언제쯤이나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나라를 가질 수 있을까?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그것은 판도라의 항아리인가? 판도라 항아리 열기는 가능한 불가능성 possible impossibility인가?


만약 남북관계의 본질을 미리부터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십수 년 이어온 남북관계가 롤러코스터 타듯 요동쳐왔던 원인을 알았더라면, 미국에 대한 조선의 입장과 태도를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조선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태도를 옳게 파악했더라면, 조선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태도를 긴 호흡으로 알아챘더라면, 그들 사이에 낀 한국의 역량과 한계가 어디쯤인지를 냉철하게 깨달았더라면, 열려하면 할수록 오므라드는 한반도의 판도라 항아리를 붙들고 헛심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그러하니 남과 북은 한민족이기에 하나 되어 살아야 한다는 고집은 힘의 역학에 좌우되는 국제정치 현실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순진한 생각의 발로다. 남과 북이 화학적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에는 무망한 일이고 가까운 미래는 물론 더 먼 미래까지도 불가할 수 있다는 암울한 생각은 지극히 당연하다. 열려하면 할수록 꽁꽁 닫히는 판도라 항아리이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겪어온 국내외 정세 경험을 비추어볼 때 이제는 통일이 아닌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생명이 위태로운 샴쌍둥이처럼 비실거리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여 남과 북은 오도 가도 못하고 가로막고 있는 분단선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국경선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처음 그어진 분할선이 분단선이 되고 휴전선이 되었는데 국경선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판도라 항아리가 열리지 않으면 아예 깨뜨려버리자!


* 휴전선-분단선이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해서 글을 올린 후 열세 개의 글로 압축한 분단 한반도의 현실이 바로 희로애락을 펼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의 콘텍스트 context이다. 탈고가 거의 가까웠으니 오프라인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때처럼 다시 성서와 그리고 성서의 원재료라 할 수 있는 신화를 재료 삼아 이러한 삶의 콘텍스트에서 자유와 상생의 삶을 살아보려는 바람을 펼쳐보려 한다. 성서와 신화는 5대양 6대주에 80억 가까이 되는 인간들이 가득한 채 이러저러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데 주도적 영향을 끼친 잣대들 중의 하나이기에 재료의 질감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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