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

by 농소

2011년 SBS의 <생활의 달인, 298회>에서 방송한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 님’의 사연이다.


“157센티 58킬로의 왜소한 체격으로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5번씩 설악산을 오르는 일을 38년째 이어오고 있단다. 먹고살기 위해 16살 때부터 시작한 일이란다.”


“등짐의 무게가 보통 40kg에서 120kg이다... 최고 200킬로까지 져봤단다.”

“짐을 배달한 후 산 위에서 먹는 점심은 커다란 스테인레스 그릇에 김치 조금 넣고 그냥 밥에 물 말아 먹는 것이 전부다. 한달 수입은 성수기 때는 100만 원, 비수기때는 60만 원을 번단다. 지지대가 되어버린 왼쪽 무릎은 굳은살이 촘촘히 박혔다.”


“힘들지 않냐? 는 물음에 ‘가족을 위해서, 짐을 기다리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약속이 한번 깨지면 신뢰를 잃게 된단다.”


“이렇게 힘들여 번 돈으로 18년째 주위의 장애인과 홀로 사는 노인 등 불우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단다. 매달 20만 원어치 과자를 사들고 장애인 시설을 찾고 독거노인을 찾은 지 18년째. 장애인 아내와 장애인 아들 때문에 장애인을 비롯한 주위의 불우 이웃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단다.”


그의 약속의 무릎, 신뢰의 무릎에 촘촘히 박힌 굳은 살은 세상의 어떤 영광의 메달도 견줄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의 나이테요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약속과 신뢰의 거름이다.

돈푼깨나 있다고, 알량한 권력 좀 얻었다고 수치스럽고, 추잡스러운 짓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자들은 결코 깨달을 수도, 범접할 수도 없는, 지게를 짊어진 애처로움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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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렁이 인생들을 위해 평탄치 않은 세월을 살아온 예수.

세상 죄 짐을 짊어진 어린 양이란다. 약하디 약한.

밥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게 일상이다.

그의 주변에는 온통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 병들고 억압당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때로는 오병이어 기적으로 때로는 치유의 기적으로 그들을 돌본다.

여우도 동굴이 있고 공중 나는 새도 쉴 곳이 있지만 어린 양은 쉴 곳이 없단다.

너무나 힘에 겨워 허물어져내리는 심신을 어찌할 수 없어 피하고 싶어 하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에서 울려 나는 신의 음성에 기꺼이 순응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십자가를 지고 거친 숨 몰아쉬며 깨진 무릎에 지탱한 채 몸을 질질 끌다시피 형장으로 향하는 길 위로 세상을 위한 피와 땀이 범벅되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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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지게꾼의 모습과 세상 죄 짐을 지고 가는 예수의 모습이 번갈아 겹쳐진다.

지게는 ‘있는’ 자가 아닌 ‘없는’ 자,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의 도구이다.

지게를 짊어진 아버지는 약한 자이지만 강한 자의 표상이다.


그렇다.

설악산 지게꾼이 짊어진 짐, 예수가 짊어진 짐은 고통이나 고난의 삶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 되게 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공감共感, sympathy의 짐 이었다.


네덜란드 왕립학술원 신경과학연구소 소장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말한다 : 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울 뉴런 mirror neuron’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며 우리와 타인의 연결을 돕고 좋건 나쁘건 우리를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우리 마음속에 공감을 깊이 새기는 데 영향을 끼친단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도록 그리고 공감하도록 설계되었단다. 그것이 곧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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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共感, sympathy

그것은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마음 길이요, 신뢰로 가득 찬 세상을 이루는 통로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겠다고 ‘나요 나!’를 외치며 거리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이 TV 화면을 온통 뒤덮는다. 과연 그들은 약속과 신뢰의 지게를 짊어질 수 있을까? 헌신의 지게를 짊어질 수 있을까? 희생의 굳은살이 박히는 걸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까? 공감 共感, sympathy의 무게가 짓누르는 지게를 짊어질 힘은 있는 걸까?


속는 셈 치고,

진정으로 대한민국, 대한 국민의 짊을 짊어지려거든 모두가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공감共感, sympathy의 지게를 중단 없이 지는 삶을 수양하라는 충고를 얹어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안전 창에 새겨진 김국래 시인의 ‘아버지의 지게’를 그들 한 후보 한 후보 모두에게 단단히 쥐어주고 싶다.


<아버지의 지게>

외양간 옆

빈 지게를 등에 지어본다.

등태를 타고 전해지는

삶의 무게에

속으로 삭였을 황소울음

바작에 걸터앉은 무정한 세월

눈을 털 듯 가슴을 내어보아도

품어 안을 수 없는

누렁이 앞서간 산모퉁이 굽잇길

외양간 옆

아버지를 등에 업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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