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소금물에서 태어나 소금에 기대어 숨 쉬며 소금을 먹고 살아간다. 소금이 수명을 다하면 마침내 인간의 숨도 멈춘다. 인간은 ‘금’ 없이는 살아도 ‘소금’ 없이는 살 수 없다. 무슨 소리냐고?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엄마 뱃속의 양수는 염도가 0.9%다. 심장은 염통鹽桶, 즉 소금통이다. 염통이 멈추면 도리없이 죽은 목숨이다. 암은 신체의 모든 곳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소금덩어리 심장은 예외다. 혈액의 염도도 0.9%요 링거 박사가 멈춰버린 심장 박동을 되살리기 위해 발명한 생리식염수도 혈액의 염도와 동일한 0.9% 소금물이다. ‘링거액’이라는 이름은 박사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사라진 입맛도 되살리는 샐러드 salad, 소스 sauce, 소시지 sausage 등도 모두 소금 sal에서 비롯했다. 짭짤한 맛이 입맛을 확 돌게 한다. 짭짤한 감자튀김, 또 짭짤한 베이컨, 그리고 싱싱한 달걀 스크램블에 커피 한잔이면 환상의 조합이다. 조찬회의 때면 어김없이 찾는 나의 애찬이다. 짜게 먹지 말라고? 아니, 짠 음식을 짜게 먹지 말라하면 맹물에 헹구어서 먹어야 하나? 아둔한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혈압도 지극히 정상인데.
사랑에 빠져 정신줄 놓고 흐물흐물해진 사람을 salax라고 하는데 이것도 역시 그 출발은 소금이다. 소금에 팍 절여진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상당히 야한 춤 살사 salsa도 소금 sal에서 비롯했다.
인류 문명 발상지도 소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역사의 발원지인 수메르 문명도 바로 소금이 나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서 시작되었고 나일 문명, 황허 문명, 인더스 문명도 소금이 있어 가능했다.
소금을 잘 다스린 나라는 번영을 누렸고 소금을 잘못 다스린 나라는 망했다. 예컨대 1789년 발발한 프랑스혁명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소금을 잘못 다스린 때문이요,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역시 영국이 소금을 잘못 다스린데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이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만큼 강성하게 된 이유는 바로 소금 때문이었다. bc 4세기 경 소금 운반을 위해 로마로 통하는 길을 건설하고 이를 ‘소금길,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이라고 불렀으며 이 길이 훗날 로마 군대의 원정로로 이용되어 로마 제국의 부흥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관리나 군인에게 지급한 급료를 ‘살라리움 salarium’ 이라 했는데 바로 소금이다. ‘샐러리 맨 salary man’이 여기서 유래했고 ‘solider’도 소금 sal이 어원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 역시 소금 때문에 번성을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마포 나루터는 소금 집산지로 유명했으며 마포구 염리동, 강서구 염창동 같은 염鹽자가 들어간 동네는 소금 장수들의 거주지, 소금 보관 장소 등에서 비롯했다.
소금은 종교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귀신을 쫓는다고 소금을 뿌리고, 재수 없다고 뿌린다.
이처럼 소금은 모든 인간사에 연관되지 않은 적이 없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다. 약방의 감초도 이 정도로 끼지 못할 것이고 대추나무 연줄도 이 정도로 걸리지는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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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은 처음부터 짠물이 아니었다. 그냥 민물이었다. 원시 지구의 바닥에 깔려 있던 암석에서 염분이 용해되어 점차 짠물이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깊은 산속의 싱싱한 물, 가정의 생활 폐수, 공장에서 쏟아내는 폐수 등, 세상의 온갖 물들이 흘러 흘러 바다로 모여드니, 바다는 좋은 물이든 나쁜 물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냥 짠물 정도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잡雜물이 함께 모여 넘실거리는 짠물이다.
짠물이 세월만 오래됐다 해서 그냥 소금이 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빛을 쪼이는 길고 험한 담금질 과정을 거쳐야 탄생한다. 해서 억겁의 세월 동안 세상의 모든 애환을 받아들인 바닷물에서 탄생한 소금은 숱한 경험과 지혜가 담긴 정수요 그 자체가 가르침의 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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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시대를 막 열기 시작한 로마의 압제 아래서 예수는 세 세상을 만들겠다고 따르는 민초들에게 그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라 선언했다.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를 쥐락펴락해 온 소금이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소금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영광을 넘어서는 더 큰 책임감이 들어있다.
왜 그렇게 선언했을까?
비록 무지렁이 민초들이지만 소금으로 번성한 로마 제국에 견줄만한 존재들이라는 배짱을 가져라는 외침이다. 주눅 들지 말라는 부르짖음이다. 비록 식민 통치를 당하고 있는 처지지만 당당하라는 외침이다. 반드시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규다. 세상살이에 절대 필요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가지라는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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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상살이도 잡雜물이 함께 모여 넘실거리는 짜디짠 바닷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권력과 명예, 높음과 낮음, 부와 가난, 탐욕과 관용, 권모술수, 길흉화복, 희로애락 등, 세상의 온갖 삶이 짜디짠 바닷물처럼 넘실거린다. 짠물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가져온다. 짠물이면서도 소금인 듯 행세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독일뿐이다.
소금은 온갖 잡雜스럽고 짜디짠 물이 출렁이는 세상살이에서 오직 혹독한 담금질을 통해서만 탄생하는 것.
하여
우리는 이미 소금이 ‘된 being’ 존재가 아니라
소금이 ‘되어가는 becoming’ 존재.
소금이 될 수만 있다면 이보다 큰 영광이 어디 있으랴.
소금이 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