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 책 구경 나선 길에 눈에 들어온 광화문 광장의 진풍경 한 컷.
공사장 현장 한 켠 나름 명당자리(?)에 신통방통한 비닐 천막 두 동이 나란히 딱 붙어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 동을 덮고 있는 비닐에는 “북침 절대 반대... 어쩌고 저쩌고”, 바로 옆 나란히 어깨를 대고 있는 다른 한 동에는 “북침, 멸공통일... 어쩌고 저쩌고”라는 붉은 색 글씨가 어지럽게 갈겨 있다. 각 동 마다 정당 이름이 한글로 쓰여있으니 대한민국 정당임은 맞는데 영 낯선 이름이다. 방송만 틀면 넌더리 나도록 반복해서 눈을 시리게 하고 귀를 어지럽히는, 자기가 대통령이 돼야 나라가 잘 된 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설레발치는 메이저 정당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익숙지가 않다. 여튼, 두 동은 필시 서로에게 극우 꼴통이요 빨갱이라고 명패를 붙일 것임이 분명하다.
앞 전에 ‘우리 모두 테세우스가 되자’고 목청 한번 뽑은 데다 극우 꼴통과 종북 빨갱이 현장을 보았으니, 극우 꼴통은 패스하고 빨갱이 놀이 한마당 둘러보자.
빨갱이라는 호칭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뿌리는 어디에 박혀있을까?
어떤 이들은 1936년 발발하여 3년 간 이어진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프랑코 체제에 저항하던 게릴라 세력을 ‘파르티잔 partizan’으로 호칭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적군赤軍, 적기赤旗 등 저항과 투쟁을 상징하는 핏빛 빨간색으로 표현하는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표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히틀러에 대항했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도 파르티잔이요, 일본 식민통치에 저항하면서 무장 독립항쟁을 벌인 유격대도 파르티잔이며, 대구 식량폭동, 제주 4.3 항쟁, 여순항쟁의 후과로 미군정의 초토화 작전을 피해 지리산으로 들어가 6.25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저항 활동을 했던 자들도 파르티잔이고, 6.25 전쟁 당시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한국인 유격부대도 파르티잔이다. 파르티잔은 신념에 따라 확고하게 어느 한편을 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의미하며 빨치산은 파르티잔의 음운적 변화라고 볼 수 있고 이 빨치산에 빨간색까지 덧입혀져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빨갱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경우 빨갱이라는 호칭은 해방 시 공간에서 반민족 친일행위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찬탁과 반탁운동이 한창일 때 그들은 반탁운동 편에 서서 자신들의 친일 매국 행위를 세탁하고 애국자로 변신하는 음모를 꾀하면서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을 반대하는 찬탁 운동자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으면서 비난에 열을 올렸다.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발생한 제주항쟁 양민학살에 이어 여순항쟁 양민학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 양민학살의 피해자들도 빨갱이 낙인으로부터 피해 가지 못했다. 이때부터 빨갱이는 정권 눈 밖에 난 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면서 닥치는 대로 빨갱이로 모는 일이 벌어졌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 법에 의해 체포되었던 친일경찰 노덕술은 이승만의 비호 아래 풀려난 후 독립운동가였던 김원봉을 체포해서 그의 뺨을 갈기면서 ‘빨갱이 두목’이라고 모욕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빨갱이로 체포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박정희도 빨갱이 낙인을 정권유지 도구로 사용했다.
서글픈 아이러니다.
빨갱이는 이념 갈등 용어로만 쓰이는 단계를 넘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용어로 둔갑했다. 빨갱이 악령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목하 활보하면서 극우세력의 전유물처럼 사용되고 있다.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폄훼하고 비난할 때 붙이는 낙인이다. 지역 색깔까지 덧칠해 전라도 빨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5.18 민주화 항쟁은 빨갱이 폭동이라고 왜곡하기까지 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태어난 뉴라이트 집단은 빨갱이 친척쯤 되는 ‘종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자들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싸잡아서 ‘빨갱이’, ‘종북세력’이라고 비방하는 등 좌충우돌했다. 자신들이 너무 오른쪽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보다 보니 중간쯤도 왼쪽으로 보였나 보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부르는데 나라 안을 들여다보면 쓸고 닦고 풀어야 할 과제들이 구석구석 쌓여있다. 그러한 과제들이 생겨난 근원적인 원인은 분단의 후유증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분단은 남북 갈등만이 아니라 남남갈등을 생산해냈다. 그중의 제일은 빨갱이 이리라.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무식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에서 분단의 찌꺼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한반도 남쪽의 현주소이다. 달려가면 사방팔방이 하루 걸이도 되지 않는 좁은 땅덩어리 위에 살면서 마음조차 시시하게 쭈그려 들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너도 나도 가련할 뿐이다.
다시 광화문 광장 비닐 천막 풍경으로 돌아가 보자.
분주하던 낮 거리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면 온통 정적이 감돌 광장 거리일테니, 이제부터는 빨갱이 동과 극우 꼴통의 세상만 덩그러니 남을 테니, 주인들끼리 소주 한병, 김치전 한 사발 펼쳐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노라면 빨갱이도 극우 꼴통도 정신이 혼미해져 제자리가 어디인지 헤매다 꽁무니를 뺄 것이 틀림없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