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국경선> 출간하다!

-분단 한반도 새로 만들기-

by 농소

‘브런치’에 입장하기 전 오랫동안 집필 작업을 해오던 <휴전선-국경선>을 마침내 12월 16일 자로 ‘부크크’에서 출간했다. 나의 30년 통일 운동사를 담은 글로서 500여 쪽 분량의 적지 않은 양이다. 여기 브런치에서도 책 내용 중 몇 꼭지를 끄집어 내 게재하기도 했다.


단언하건대 대한민국 국민치고 분단의 후유증에서 자유로운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둘로 나뉜 남과 북은 새 생명, 새 삶을 얻기는커녕 어느 사이 서로를 비난하는 몸부림만 해대는 샴쌍둥이로 변해있었다. 설상가상 미국과 중국은 패권 경쟁에 한반도를 이용하려 호시탐탐 하고 있으니 지금은 합치려 할수록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오고 흩어져야 살 길이 보이는 때다. 지금은 통일하자고 몸부림치며 에너지를 흘려버리기보다는 따로 사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남과 북은 더 이상 생명이 위태로운 샴쌍둥이처럼 비실거리며 사는 대신 각각 독자적으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남과 북은 2 국가 2 체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각각 살아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더 나은 방안이다.


긴 시간 분투해 온 때문인가, 홀가분한 맘과 충일한 맘이 뒤섞여 마치 도수 높은 술에 취한 듯하다. 일독을 권할만큼 자신감도 가득하다. 취한 기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어 글을 마친 소감을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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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를 부르는 이름이다. 1990년 2월 14일 밸런타이 데이에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태양계 무인탐사 팀이 지구로부터 61억 km 떨어진 궤도를 지나가던 중 촬영한 필름 속에 푸른빛을 띤 점 하나가 보였다. 칼 세이건은 지구 사진을 본 후 벅찬 감동으로 차올라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하고 같은 제목으로 책을 저술했다. 글로 표현한 그의 감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 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137억 년 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모습을 드러낸 채 지금도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우주 공간 어디쯤에 45억 년 전 둘레가 4만 km에 이르는 거대한 불덩어리 암석이 출현했다. 그 불덩어리는 가스 폭발, 소행성 충돌, 빙하기 등 웬만한 천문학 지식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치열한 생존 과정을 겪고 생명의 터전으로 탄생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도 아닌 처지에 무량수에 이르는 별들로 수놓은 우주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란 언감생심 하늘의 별따기였다. 눈을 부라린 채 크게 뜨고 찾아야 간신히 시선이 닿을 만큼 파란색 볼펜 자국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점은 지금 80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80억 가지나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웅대한 터전이다. 어디 80억 인간뿐이랴. 그보다 더 많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신비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 desire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삶의 원천이자 삶을 다양하게 엮어가는 동력이다. 비난받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다. 인간은 더 나은 삶, 더 많은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체제와 규범, 이념과 사상을 만들어냈고 종교도 여기서 탄생했다. 욕망을 동력 삼아 이어오고 있는 인간의 역사는 처음 문명 발상지에서부터 삼간三間 / 時間.空間.人間을 토대로 진자운동을 하면서 쌓여왔다. 그것은 언제나 작용과 반작용의 순환 반복으로 이루어진 이중성을 갖는다. 전 지구적으로 번져나간 욕망의 역사는 지리적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물길을 따라 흐르고 대륙에 뿌리를 내리며 여러 모양의 역사로 쌓였다. 거기에는 기쁨도, 슬픔도, 애통함도, 즐거움도, 서로 얽힌 채 오롯이 내재되어 있다. 다시 칼 세이건의 감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 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욕망 desire은 탐욕 greed으로 그 모습이 바뀔 때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자아내는지 그것이 꾸렸던 역사가 바로 보여주었다. 탐욕의 화신이었던 신화시대 미다스 왕은 현대 세계에로 살아 돌아와 아프리카에서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하며 피가 범벅된 다이아몬드(블러드 다이아몬드)를 거머쥐느라 여념이 없다. 한반도의 역사도 탐욕의 비극을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탐욕에 빠진 왕조는 외세에 무릎 꿇었고 식민통치를 당했다. 해방되자마자 분단된 것도 모두 강자들의 탐욕이 토해낸 결과물이었다. 이에 부화뇌동하듯 애국을 입에 달고 살았던 지도자들 역시 권력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념을 앞세운 전쟁도 독재통치도 부의 착취도 탐욕의 뿌리에서 솟아난 변종 괴물들이었다. 지금 세계적인 양대 세력이 키재기 시합하듯 충돌하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제 그만 무력 경쟁도 그만두고 경제전쟁도 거두어들이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게 절대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지금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주변 열강들은 한반도에서 제 탐욕 챙기려느라 여념이 없는 중인데 정작 남과 북은 서로를 째려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다. 분단 철조망 사이로 난 샛길은 7천만이 한꺼번에 가고 오는 신작로로 뚫릴 듯 뚫릴 듯했지만 이내 강철 벽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천하에 범사는 ‘때’가 있다 했으니 한반도의 ‘때’는 찢고 갈라지고 싸우고 우는 ‘때’가 아니라 서로 어울려 웃고 먹고 마시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때’를 엮을 수는 없을까? 아름답고 멋진 천도 한올 한 가닥 실로 시작하니 한반도의 ‘때’도 한올의 어울림과 연민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의 반대는 일상이라는데 광장을 짓부수며 증오의 고함을 외치기보다는 길모퉁이 악기점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멜로디처럼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은 과분한 바람일까? 대립하는 것은 상호적이다. 어느 한쪽만 선이거나 악일 수 없다. 한쪽이 볼록하면 반대편은 오목하고, 오목하면 볼록하다. 언제나 서로 마주한다. 두 개의 코리아는 각자가 세상의 중심축 Axis Mundi이 되는 나라로 우뚝 서는 방법을 찾아 실천할 ‘때’다. 새 길을 뚫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을 ‘때’다.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는 대한민국은 추태 같은 위용을 부려왔던 팍스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결이 다른 팍스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지난 30 년 동안 남북문제를 붙들고 씨름해오면서 인간 존재 물음에 더 깊이 천착하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은총이었다. 신 divine과 악마 devil는 신神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deva에서 비롯했다. 고대 현자들은 신에게는 신성 divine과 마성 devil이 공존함을 깨달았다. 개인의 삶도 역시 욕망의 신성神性과 마성魔性이 상호작용하면서 엮어져 인류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중단 없이 진행되고 있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글 짓는 펜을 내려놓으려 한다.


“이 세계는 완벽하다. 그것은 혼란의 도가니이다. 이 세계는 항상 그렇게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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