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봉인을 깨뜨린 가주(1화)

황궁의 심장을 지키겠습니다

by 강롸롸

새벽녘의 밭은 차갑고 맑았다.

밤새 불길을 막아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지만,

살아남은 마력 초들은 여전히 은빛 잎사귀를 흔들며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레나는 무릎을 꿇고 잎을 만져보았다.

불길에 그을린 가장자리조차 다시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역시. 이 풀은 단순한 약초가 아니야.”

등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불 속에서도 살아남은 풀이라니, 대단한데? 이름값을 하네, 마력초.”


세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차가운 새벽 공기와 맞먹을 만큼 서늘했다.


“감탄할 시간은 없어. 오늘 납품 시연이 있다. 이 풀을 황궁에 공식적으로 바칠 거야.”

그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가문의 사생아에서 가주로 변신하는 쇼무대가 되겠군. 기대되네.”
“쇼가 아니야.” 세레나는 단호하게 잘랐다. “이건 증명이지. 내가 살아남는 방식.”


황궁의 연회장은 수많은 귀족과 상단주들로 붐볐다.

세레나는 단정한 드레스 차림으로 입장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수정병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지난밤을 견뎌낸 마력초에서 추출한 진액이 담겨 있었다.


귀족들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저 아이가…… 로엔 가문의 사생아라지?”
“말로만 듣던 약초라는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수군거림이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세레나는 흔들림 없이 황제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폐하, 미약하오나 로엔 가문에서 바친 약재를 시연하겠습니다.”


황제는 흥미로운 듯 턱을 괴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보여주어라.”


호위병이 앞으로 끌려 나왔다.

전투 중 입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세레나는 수정병의 마개를 열고, 진액을 상처 위에 떨어뜨렸다.

순간 푸른빛이 번지며, 벌어진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갔다.

연회장에 탄성이 터졌다.
“말도 안 돼……!”
“상처가 사라졌어!”


황제의 눈빛이 빛났다.

“흥미롭군. 로엔 가문에 이런 보물이 있었단 말이냐.”


그러나 바로 그때, 군중 사이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하, 감히 말씀 올립니다!”


세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촌 제라드였다.

그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붉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 약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자칫 독초일 수도 있습니다!”


귀족들이 술렁였다.

황실 시종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또 다른 약병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로엔에서 유통되는 진짜 약입니다. 제가 직접 확보했습니다.”

세레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저건…… 그녀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황제가 시선을 좁혔다.
“그럼 시험해 보자.”

시종이 약병을 열려는 순간, 루시안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폐하,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대신 시험하겠습니다.”

세레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 안 돼!”


그러나 그는 이미 병을 빼앗아 단숨에 들이켰다.

순간 연회장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루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손등을 닦았다.
“달콤하군요. 독이라면 진작 쓰러졌겠죠.”


황실 검사관이 나서서 확인한 결과, 약병 속 액체는 인위적으로 변질된 가짜 약이었다.
제라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황제의 음성이 차갑게 울려 퍼졌다.


“로엔의 사생아를 모욕한 것도 모자라,

황궁 납품식을 속이다니……

네 죄를 어찌 다스려야 하겠느냐.”


세레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폐하, 이건 단순한 오해가 아닙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제 가문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그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황제가 잠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대의 결심을 지켜보겠다.”


시연이 끝난 뒤, 세레나는 황궁의 뒷정원으로 향했다.

밤공기가 서늘하게 뺨을 스쳤다.


그곳에는 이미 그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위험한 짓을 했군.”

세레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는 웃으며 대꾸했다.
“덕분에 너는 황제의 신뢰를 얻었잖아. 빚은 갚아야지.”

“내가 빚을 졌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나? 네가 원한다면 내 목숨을 다시 걸어주지. 대신……”

그는 미소를 거두고 낮게 속삭였다.

“좋아. 내이름은 밝히지. 나는 루시안 드 벨로나. 네가 진실을 찾는 동안, 난 네 곁에 서겠다.”


세레나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마음 깊은 곳까지 흔들렸다.
루시드는 능글맞은 방랑자일 뿐일까,

아니면…… 그녀가 아직 모르는 더 큰 비밀을 품은 자일까.

달빛은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세레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가문의 부흥은 이제 시작일 뿐.
그녀 앞에 놓인 길은 제국 전체를 향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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