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봉인을 깨뜨린 가주(2화)

황궁의 심장을 지키겠습니다

by 강롸롸

황궁의 연회장은 여전히 술렁거리고 있었다.

세레나가 황제 앞에서 시연을 마쳤지만, 남겨진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생아 주제에…… 황제가 직접 신뢰하다니.”
“루카스 경이 가만있을 리 없지.”


수군거림이 등 뒤에서 따라붙었지만, 세레나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로운 고갯짓으로 드레스를 정리하고 곧장 황궁 뒷정원으로 향했다.


달빛이 내려앉은 정원에는 은은한 장미 향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 향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담장에 느긋하게 기대 선 남자의 시선이었다.


“늦었군.”

루시안 드 벨로나였다.


세레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곧장 물었다.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었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루시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 순간엔 필요했으니까. 네가 쓰러질 뻔했잖아. 내가 대신 마셨을 뿐이지.”
“네가 죽었다면? 그땐 어쩔 셈이었는데?”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죽지 않았잖아. 달콤했어. 꽤 괜찮은 술 같더군.”


세레나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농담하지 마. 넌 알잖아. 그 병엔 독이 섞여 있었어.”


“알지.” 루시안의 미소가 살짝 사라졌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어졌다.
“하지만 어떤 독은 마셔야만 증거가 되지.

네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보여줘야 해.”


그 한 마디에 세레나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는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다.


“……넌 누구지? 왜 내 싸움에 끼어드는 거야?”

루시안은 대답 대신 정원의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세레나에게 내밀었다.


“이유를 말해도 믿지 않을 테지.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네 곁에 서줄 거야.

네 가문을 지키는 동안, 네 목숨을 대신 걸어줄 수도 있어.”


세레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서며 냉정하게 잘라냈다.


“내 목숨을 담보로 장난치는 건 싫어.

나는 가문을 지켜야 하고,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불길을 막아야 해.

너는… 아직 믿을 수 없어.”


루시안의 미소가 다시 번졌다.

그러나 그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좋아.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조건 하나. 네가 날 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끝까지 네 편이야.”


세레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차가운 바람이 드레스 자락을 스쳤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좋아. 하지만 내 조건도 분명히 해두지. 내 허락 없이 움직이지 마. 내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 순간 네 목숨은 내 손에 달렸어.”


루시안은 세레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묘한 온기가 전해졌다.


“좋아. 네 조건, 받아들인다.”

잠시 손을 잡은 채, 두 사람은 서로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루시안의 눈 속에서 잠깐 스쳐간 그림자가 세레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고독, 그리고 오래된 상처.


세레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정원을 나서는 길, 세레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단단히 자리 잡는 걸 느꼈다.
이번 생은 단순히 가문의 부흥만이 아니라, 제국 전체의 운명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루시안의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따라왔다.
“세레나, 불길은 안에서 번진다. 하지만 꺼뜨리는 것도 안에서부터야.”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번 생은 내가 불길을 꺼야겠다.”

달빛이 정원을 비추었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 순간부터, 은밀한 동맹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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