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봉인을 깨뜨린 가주(3화)

황궁의 심장을 지키겠습니다

by 강롸롸

버려진 별채는 겉으로 보기엔 먼지와 거미줄 뿐이었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자 그곳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촛불 수십 개가 길게 흔들리고, 커다란 제국 지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지도 위, 붉은색 먹물이 국경과 황궁을 짓누르듯 번져 있었다.

중앙 의자에 앉은 사내가 잔을 들어 올렸다.
“오늘, 우리 로엔 가문은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힘찼다.

바로 루카스 드 로엔, 세레나의 숙부였다.

“가문은 원래 내 것이어야 했다.” 루카스는 잔을 내려놓으며 이어갔다.
“그러나 사생아 하나가 황제의 눈에 들어, 우리를 밀어내려 하고 있지. 웃기는 일 아닌가?”

귀족 몇이 눈치를 보며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경. 황제가 변덕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가문은 이미 경의 손에 들어왔어야 했지요.”

루카스는 미소를 지었다.

온화해 보이는 그 웃음은 그러나 서늘했다.
“제국의 심장에 불씨를 심을 때가 왔다.”

그때 앞으로 나선 젊은이가 있었다.
빛나는 금발에 날카로운 눈빛, 그러나 그 속엔 불안과 열등감이 뒤섞여 있었다.

바로 그의 아들, 제라드였다.

“아버지, 준비는 끝났습니다. 첫 불은 이미 붙였죠. 마력초 밭이 절반은 불탔습니다.”
제라드는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그 입가에 묻은 미소는 조급했다.
“다음 불길은 황궁에서 타오르게 할 겁니다. 황제를 공포에 빠뜨리고, 반역의 깃발을 드높이겠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너무 성급한 건 아닌가?”
“하지만 기세는 중요하지.”

루카스는 손을 들어 소란을 멈추게 했다.
“잘했다, 제라드.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불길은 은밀히 번져야 한다. 단숨에 타올라선 곧 꺼질 뿐.”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주먹은 여전히 불만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세레나…… 너 따위가 감히 황궁에 다니. 내가 반드시 무너뜨려주겠다.”

그때, 문이 열리며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제국 사람이 아니었다. 북방의 언어로 낮게 인사를 건네며, 루카스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약속대로라면, 국경에서 우리의 군세가 움직일 때 당신들이 황궁 안에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루카스는 여유롭게 잔을 기울였다.
“물론이다. 우리가 황제를 묶어두는 동안, 당신들은 제국의 숨통을 끊으면 된다.

전쟁이 끝나면 제국의 절반은 당신들의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로엔 가문이 차지한다.”

사절은 차갑게 웃었다.
“좋습니다. 서로의 이익이 명확하다면 문제 될 것 없겠지요.”

귀족들 몇이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외세와 손잡는다는 건 큰 위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달콤한 권력이었다.

루카스는 그들의 불안을 읽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제국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썩어가는 제국을 새로 세우는 것이다. 황제는 더 이상 힘이 없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제라드가 탁자 위에 단검을 내려놓았다. 잿빛 칼날에는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증거는 이미 준비했습니다. 반역을 꾸몄다는 낙인을 세레나에게 씌우면, 그녀는 끝장입니다. 마력초 사업도 함께 무너지겠죠.”

루카스는 아들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좋다. 하지만 잊지 마라, 제라드. 네가 싸워야 할 상대는 단순한 사생아가 아니다. 그녀는…… 결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제라드의 눈이 증오로 번쩍였다.
“그럼 더 재미있겠죠. 무너뜨리는 맛이 있어야 하니까.”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높이 들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쓴다. 로엔의 진짜 주인이 돌아온다!”

귀족들이 잔을 부딪치며 함성을 질렀다.
“로엔의 승리를 위하여!”
“새로운 제국을 위하여!”

촛불이 흔들렸다. 벽에 걸린 지도 위 붉은 먹물이, 마치 불길처럼 번져갔다.
그리고 그 불길은 곧, 세레나와 그녀의 마력초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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