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봉인을 깨뜨린 가주(6화)

황궁의 심장을 지키겠습니다

by 강롸롸

황궁은 낮에는 화려한 금빛으로 빛났지만, 밤이 되면 검은 성벽처럼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높게 솟은 탑마다 불빛이 깜빡였고, 순찰하는 병사들의 발걸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을 울렸다.


세레나는 망토를 단단히 여미며 성벽의 그늘에 몸을 숨겼다.

“여길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옆에서 루시안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만 믿어. 이런 일엔 꽤 경험이 많거든.”

“경험?” 세레나는 눈을 좁혔다.

“네가 생각하는 그 경험 맞아.”

그는 윙크를 했다.

“황궁 담을 넘다 잡혀서 죽을 뻔한 경험.”


세레나는 날카롭게 속삭였다.

“전혀 안심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루시안은 가뿐하게 담을 타올라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자, 공주님. 오늘은 잠시 내가 무도회 파트너가 되어드리지.”


세레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성벽 너머로 스며들었다.


황궁의 복도는 고요했지만, 방어는 철저했다.

갑옷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창끝이 반짝였다.


세레나는 촛불 사이로 몸을 낮추며 속삭였다.

“우리 목표는 서고. 거기서 외세와의 내통 문서를 찾아야 해.”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데 네 숙부가 바보는 아니겠지. 가장 깊은 곳, 황실 기록관에 숨겼을 거야.”


둘은 함께 어둠을 따라 움직였다.

그림자처럼 기어가다 문 뒤에 숨고, 병사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면 다시 달렸다.


그러던 중, 세레나는 한 방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안쪽에서 몇 명의 관리들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밀매 기록은 이미 처리했습니다. 북방 사절과의 약속도 곧 실행될 겁니다.”

세레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루시안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지금은 들키면 안 돼. 더 큰 걸 얻으려면 기다려.”


황궁 서고는 깊숙한 탑 아래에 있었다.

금장 문양이 새겨진 두꺼운 문, 그 앞에 무장한 병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세레나는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어떻게 하지?”


루시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간단하지. 주의를 끌면 돼.”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내 바닥에 굴렸다.

순간 수정구가 번쩍 빛을 내며 터졌다.

“뭐야!”

병사들이 놀라며 빛 쪽으로 달려갔다.


세레나는 틈을 타 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서고 안은 책과 두루마리가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천장까지 닿은 선반, 곳곳에 쌓인 서류 상자.

수백 년의 기록이 잠든 공간이었다.


세레나는 촛불을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외세와의 내통 증거…… 어디에 숨겼을까.”


루시안은 선반 사이를 거닐며 책을 훑었다.

“보통 이런 건 ‘평범한 제목’으로 위장하지. ‘농업 보고서’라든가, ‘곡물 수입량 조사’ 같은.”


세레나는 장부들을 하나씩 꺼내 넘겼다.

숫자들이 어긋나 있었다.

황궁의 공식 기록에는 곡물 수입량이 일정했는데, 여기 장부에는 몇 배로 부풀려져 있었다.


“이거야. 곡물 운송으로 위장한 무기 수송 기록……!”


그녀가 책을 꼭 쥐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 누구냐!”


순찰대가 서고 안으로 들어섰다.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세레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루시안은 태연하게 그녀 앞에 섰다.

“시간은 내가 번다. 넌 증거를 챙겨.”


그는 검을 뽑아 번쩍였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서고 안을 가득 메웠다.


세레나는 장부를 품 안에 숨기며 책장을 넘겼다.

또 다른 두루마리, 황제의 인장이 찍힌 문서가 있었다.

“……황제의 인장?!”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 문서에는 북방 사절과의 거래 내역이 적혀 있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날인된 것처럼 위조된 문서였다.


“이게 있으면…… 반역자들이 황제까지 속이려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그때, 루시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세레나, 이제 나와!”


그녀는 품 안에 문서를 꾹 눌러 넣고, 재빨리 문 쪽으로 달렸다.

루시안이 병사 둘을 쓰러뜨리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뛰어!”


황궁의 복도를 따라 두 사람은 달렸다.

뒤에서 경보가 울렸고, 병사들의 함성이 쫓아왔다.


“저쪽이다!”

“잡아라!”


세레나는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복도 끝에 또 다른 병사들이 나타났다.


루시안은 눈빛을 번뜩였다.

“이쪽이야!”


그는 세레나를 끌고 좁은 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어둠 속을 굴러 내리듯 내려가자, 숨겨진 통로가 나타났다.


세레나가 놀라 속삭였다.

“이 길…… 네가 어떻게 알아?”


루시안은 능글맞게 웃었다.

“내가 황궁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거, 아직 안 믿는 모양이네.”


세레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루시안…… 역시 너, 그냥 방랑자가 아니구나.


통로 끝은 황궁의 외곽 담장이었다.

두 사람은 달빛 속으로 몸을 날려 나왔다.

경보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그림자는 숲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숨을 고른 세레나는 품 안의 문서를 꺼냈다.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우린 해냈어. 이제 확실한 증거가 있어.”


루시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능글맞음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이야. 네 가족은 네 적이 됐고, 제국은 불길 앞에 놓였어.”


세레나는 문서를 꽉 쥐며 낮게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이번 생은 내가 가주가 된다.

그리고, 어떤 불길이라도…… 내가 꺼뜨린다.”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 속 서늘한 그림자를 감추지 않았다.

“그럼 나는 네 검이 되어주지. 네가 불길을 끄는 동안, 불길 속에 뛰어드는 건 내 몫이야.”


달빛은 두 사람의 손을 감싸며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순간, 단순한 증거 수집이 아니라,

제국의 운명을 건 전쟁이 막 시작되고 있음을 두 사람 모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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