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봉인을 깨뜨린 가주(7화)

황궁의 심장을 지키겠습니다

by 강롸롸

서고는 겨울 새벽의 냉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두꺼운 장부 더미 위로 햇살이 엷게 스며들었다.
세레나는 장부를 정리하다가 한 봉투 앞에서 손을 멈췄다.

왁스 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붉은색. 그러나 단순한 붉음이 아니었다.

표면에 아주 미세한 톱니가 새겨져 있었다.

장식이라기보다, 정밀한 장치의 일부처럼 보였다.


“가주님.”
집사 마르셀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이런 봉인이 찍힌 문서가 여러 차례 발견됐습니다. 공식 도장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황궁 명령이라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세레나는 봉인을 손끝으로 눌렀다.

순간, 귓속에서 낮고 둔탁한 울림이 올라왔다.

퉁—

눈앞이 붉게 번졌다.


불길. 무너지는 탑.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모님.

그리고, 자신이 손을 뻗었지만 끝내 닿지 못했던 기억.

세레나는 의자 팔걸이를 꽉 쥐었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가주님!”
마르셀이 허둥지둥 다가왔다.


“괜찮다.” 그녀는 낮게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요동쳤다.

세레나는 봉투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위조가 아니야.”

“무슨 뜻이십니까?”
“어딘가에 맞물려 돌아가는 열쇠 같은 것…….”

마르셀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때, 문이 가볍게 열렸다.
“이 시간에도 깨어 있다니, 참 성실하군.”

루시안 드 벨로나가 들어왔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마르셀은 자리를 피해 문 밖으로 나갔다.


“밤새 비를 맞았군.”

세레나가 무심히 말했다.
“네 생각에 빠져서 길을 잃었지.”

그는 장난스레 웃다가, 탁자 위의 봉투를 보고는 웃음을 거두었다.


“……이 인장.”
그가 봉투를 들어 빛에 비췄다.

“황궁 지하의 장치에 쓰이는 인장을 흉내 낸 거다. 사제단 기록에서 본 적 있어.”


세레나는 손끝이 떨렸다.
“황궁 지하…… 심장.”


루시안은 그녀의 눈빛을 읽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봉투를 내려놓으며 담담히 말했다.


“도망칠 수 없는 일이 있지. 너도 알잖아.”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봉투를 잠그고 서고를 나섰다.


그날 밤, 세레나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억지로 눈을 감자, 금세 꿈이 찾아왔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었다.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붉게 젖은 돌 바닥 위에 부모님의 모습이 쓰러져 있었다.

“아빠! 엄마!”
세레나는 손을 뻗었지만, 불길은 더 높이 솟구쳤다.

그녀의 손은 끝내 닿지 못했다.


비명 속에서 탑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붉게 삼켜졌다.

“안 돼…… 제발……”

세레나는 비명을 삼키며 깨어났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창가 너머, 달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쥔 채 낮게 속삭였다.
이번 생은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

“또 악몽이군.”

세레나는 고개를 들었다.

창가에 기댄 루시안이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 얼굴 절반만 보였다.


“무슨 권리로 남의 방에 들어오는 거지?”
“문이 잠겨 있지 않더군.”

그는 건조하게 웃었다.

세레나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전생에…… 나는 가족을 잃었어. 불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루시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나도 잃은 게 있다. 황궁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가족은 나를 버렸다. 하지만…… 상처가 남았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겠지.”

세레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의 말은 위로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덮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단단했다.


루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창밖으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커튼이 흔들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 있었다.

한쪽은 가족을 잃은 가주, 한쪽은 황궁에 버려진 황자.
두 그림자가 나란히 드리워졌다.

달빛 아래, 서로의 상처가 묘하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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