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남의 편

#1. "네가 뭐라고 자꾸 안 하려 하냐.".


내 베트남 통장에 돈이 똑 떨어져 남편에게 돈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베트남 동을 출해줄 테니 은행 가서 통장에 입금하란다.

말도 안 통하고 대기 많은 은행 업무를 보기 싫어서 그냥 송금 앱(수수료 있음)으로 내 한국 통장에서 송금하겠다 하니 들은 말이다.


내가 뭐 대단한 존재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무언가에 적응하느라 긴장의 연속인 요즘.

그런 상태가 좀 고단하여 편한 방법을 선택한 거였다.



#2. "왜 이렇게 일을 딱 끝내질 못하냐."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 머신이 여기 오니 작동하지 않는다. 해운 업체에 보험 처리가 되는지 물어봤더니 현지 as센터에 문의하고 수리한 뒤에 연락 달라고 한다. 여기에 그 브랜드는 아직 안 들어온 것 같은데. 일단 as 센터가 있는지 찾아보겠다 하고 연락을 마무리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제미나이 등으로 찾아봐도 공식 as 센터가 없다네. 이런 얘길 했더니 남편이 한 말이다.

말을 꺼낸 그 날 일이 마무리 되어야 확실한 일처리가 되

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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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스르륵 스며들어 가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누타고나길 그러지 못한 사람이다. 실제로 내 사주엔 土가 4개나 된다. 엄청난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굳건한 신뢰성을 지녔지만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물(水)과 나무(木)를 가까이 해야 한단다.

단단한 땅의 천성을 갖고있으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물같은 천성을 꿈꾸다보니 그 사이에 고군분투가 심하다.


어쩜 그래서 남편에게 그렇게 끌렸던건지 모르겠다. 남편은 단단한 금속(金)같기도 하지만(고집이 셈) 한편으론 틀에 갇히지 않는 물(水)의 모습이 많다(계획성 부족함). 어디에든 잘 적응하는 말랑한 성향 탓에 어떤 틀에 들어가도 맞추는 남편이다. 그래서인지 해외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고 오히려 꽤 재밌어 한다.


그에 반해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나는 베트남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춰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닥치면 그때그때 해나가는 유연성이 부족하여 미리 루틴이 정해져야 맘이 놓인다. 그래서 달라진 베트남 상황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일과 등을 요리저리 맞춰보는 중이다.


혼자일 땐 그 부딪힘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었다. 멋진 결과가 아니어도 시도했다는 자체만으로 스스로를 괜찮게 생각했다. 단단한 땅을 좀 말랑하게 만들어보고자 좀 변해보자고 내 스스로 물의 역할을 한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 책모임, 글쓰기 모임 등을 스스로 찾아가 본 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 사회에선 나같은 안정형보다 빠르게 변화는 사회에 휙 적응할 수 있는 물같은 사람이 유리하다. 그래서 좋은 학벌과 괜찮은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적응이 어려워 자주 넘어지는 나보다, 나보다 부족한 학벌이지만 빨리 적응하는 남편이 사회적으로 훨씬 잘 나간다. 그런 남편이 보기엔 책 많이 읽고 똑똑하다는 아이가 현실에서 자꾸 버벅거리니 왜 이러나 싶기도 했을거다. 언제부턴가 일처리가 신통치 않은 게 맘에 들지 않는지 나에 대한 불평이 늘었다.

남편 덕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만들었고,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결해 주고, 힘들었던 회사 생활을 잠시 쉬면서 바라던 해외 생활도 해볼 수 있으니 고마운 존재 맞지.

하지만 앞으로 달려가는 남편을 보면서 뒤로 가는 듯한 사회인으로서의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에게 이런 생각을 갖는 게 맞냐 할 수도 있지만, 부부이기 전에 나도 혼자 오롯이 서야 하는 존재니까.


나의 조력자이면서 내가 뛰어넘어야 할 허들같은 사람.

나와 다른 남편은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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